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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 - 소설가 이문구

이경희330 2008. 6. 21. 11:08
 

 

분단의 비극 속에 남겨진 한 소년.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문학을 택하고
문학을 위해 시대에 저항한다.


한 소설가의 삶 속에 투영된 두 줄기 역사


한국 현대사에 있어 이념의 대립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의 문단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설가 이문구는 이런 문단의 지형도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해방 뒤 반공우익 문단의 좌장이었던 김동리의 수제자였고, 유신체제에 비판적인 ‘자유실천문인협회’ 결성의 주요멤버로 2003년 타계하기 전까지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또한, 역사적, 이념적으로 화합하기 어려운 문학단체의 문인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그의 장례식이 문인협회, 작가회의, 펜클럽 등 세 문인단체 합동으로 치러진 것은 한국 문학사에 처음 있는 일로서, 아마 다시 그런 일이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관촌수필’로 본 소설가 이문구


‘북에 홍명희, 남에 이문구’라 할 만큼 아름다운 문장이요, 우리말 특유의 가락을 살린 유장한 문체와 해학을 통해 시대를 넘어 ‘한국문단의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받는 소설가 이문구. 만연체와 구어체, 토속어와 서민들의 생활언어가 결합된 그의 독특한 문체는 한글이 얼마나 수려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문.구. 이름 석 자는 그의 문체만으로도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기록될 만하다.


그가 자신의 가족사에 그림자를 드리운 분단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대신, 한 평생 두 다리 뻗고 자지 못한, 민초들의 고난한 삶을 담은 주름진 이야기가 바로 관촌수필이다.


시대 저항적인 문단활동의 중심에 서다.


그의 삶은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6.25 전쟁 시기 남로당 간부인 부친과 두 형이 포승에 묶여 산 채로 고향 앞 바다에 수장되는 아픔을 겪었다. 어린 시절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심한 심리적 압박 속에 살았다고 한다. 문학가가 되는 길- 그것은 그에게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


자신의 보호막으로 김동리를 택했던 젊은 시절, 그러나 유신체제로 인한 암흑시대에 이문구는 자신의 가족사적인 굴레에도 불구하고 ‘자유실천문인협회’(자실)를 통해 독재정권에 맞섰다. 자실의 활동이 ‘민족문학작가회의’로 30여년의 전통을 이어가며 진보문학 진영의 산실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념적 대립을 화합으로 이끈 이문구가 있었다.


념과 계파를 넘은 문학동네의 진정한 어른


한국 현대사의 비극 한가운데를 살아왔던 이문구. 김동리로 대표되는 보수적인 태도와 동료문인들과 함께 한 저항적 자세 중에서 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반공과 용공, 보수와 진보 같은 이념적 선택이 아니었다. 이념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한데 어울려 사람답게 사는 세상. 그것이 바로 그가 일구려고 했던 세상이다.


분단과 이념 대립의 한가운데를 살다 간 이문구. 그는 시대를 포용으로 이끈 우리 동네의 진정한 촌장이었다.

 

 

[출처]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 - 소설가 이문구  작성자 네스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