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점은 이건희 회장에 맞춰졌다. 장남 이재용 전무와 심복인 이학수 부회장까지 특검에 나가 조사를 받은 마당에 남은 것은 의혹의 정점에 있는 삼성그룹 수장 이건희 회장의 소환뿐이다. 삼성 특검 측은 실제로 이건희 회장의 소환시기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 회장이 이번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1차 수사기간 종료 이전에 조사해야 하는지 아니면 충분한 사전 조사가 이뤄진 뒤 2차 수사기간에 조사해야 하는지를 놓고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특검 측의 소환에 순순히 응할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2004년 X-파일 사건이 터질 때도 이 회장은 치료를 이유로 해외로 도피해 소환을 피했다. 이번에도 특검 소환이 임박하면서 이건희 회장의 와병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특검도 결국 이 회장이 치료를 이유로 소환에 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연 특검팀의 창과 삼성의 방패 중 어느 것이 더 힘이 셀까. 한편 본보가 몇 차례 보도했던 이재용 전무의 해외비자금 조성의혹도 특검의 수사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 해외비자금이 이번 삼성 비자금 의혹을 푸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별취재팀> |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소환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재용 전무,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의 소환도 결국 이 회장의 소환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특검팀은 지난달 28일 이 전무를 소환조사하면서 경영권 불법 승계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며 이 회장의 소환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또한 지난 4일에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소환해 관련 의혹들을 집중 추궁했다.
건강이상설 솔솔
이와 관련해 최근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와병설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삼성 소유의 모 병원에 이 회장이 입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그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19일 열린 고 이병철 회장의 20주기 추모식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이 회장은 이전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검찰의 조사를 받지 않은 전력(?)이 있다. 그는 경영권 세습을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편법 증여한 혐의로 조사가 시작되던 2005년 당시 조사가 시작할 시점에 미국으로 출국한 뒤 5개월 만에 귀국하면서 휠체어를 탔다. 이 회장은 귀국 후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이 사건은 유야무야 돼버렸다. 만약 소문대로 이 회장의 병원행이 현실화될 경우 특검팀 소환 일정과 방법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삼성 수사가 한창일 때 모든 의혹 중심에 서 있는 이 회장이 병상에 눕게 될 경우 어떤 말들이 쏟아질지는 불 보듯 뻔하다. 건강상 문제로 소환이 불가능해 서면조사로 대체된다거나 제3의 장소에서 대면조사가 이뤄질 경우 ‘소환 회피용’이란 비아냥거림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일단 1차 소환에 응한 뒤 병 치료 목적으로 입원하는 수순을 조심스럽게 예측하기도 한다. ‘이 회장 소환 불가’ 공식이 깨진 것만으로도 특검팀이나 이 회장 측이 피차 명분을 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월 9일로 예정된 특검 1차 조사기한의 연장이 확실해 보이는 만큼 이 회장 소환이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병원행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또 다른 관심사항은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의 소환 여부다. 현재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소환보다도 홍라희 회장의 소환대비에 더 분주하다고 알려져있다. 삼성 측은 특검팀이 비자금이나 차명계좌보다는 미술품 비자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비자금 사건으로 인해 한 번 소환된 적이 있었으나 홍 여사는 처음이어서 대비책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2005년에도 건강이유로 도피
삼성 총수일가 중 특검팀의 직접 조사 대상이 어디까지 확대될지도 호사가들의 관심사항이다. 최근에는 이재용 전무와 더불어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보유한 이건희 회장 딸들,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도 소환대상으로 특검팀 주변에서 거론되고 있다. 특검팀은 이 전무 소환에 앞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시점인 지난 1996년 그룹 비서실장이었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을 소환해 전환사채 배정과정에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와 이건희 회장 지시가 있었는지를 조사했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 대해서도 이 전무에게 에버랜드 개인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줬다는 의혹을 파헤치는 중이다. 전환사채 배정 과정의 최대 수혜자는 그룹 경영권 승계 기틀을 닦은 이재용 전무겠지만 에버랜드 3대 주주 반열에 올라선 이부진-이서현 자매에 대한 특혜 시비 역시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끊이지 않아왔다. 현재 삼성에버랜드 지분구조에서 삼성카드(25.64%)가 최대주주로 있으며 이부진-이서현 자매는 개인 최대주주인 이재용 전무(25.10%) 다음가는 8.37%씩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수혜 당사자인 이 회장 딸들에 대한 특검팀의 소환조사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소환조사 폭이 ‘범 삼성가’로 확대될지도 관심거리다. 삼성의 차명의심계좌로부터 이건희 회장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계좌에 300억 원 뭉칫돈이 유입됐다는 이야기가 퍼져 신세계 측이 비자금 연루설을 극구 부인한 바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과정에서 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해 이재용 전무를 개인 최대주주로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끝까지 에버랜드 지분을 지킨 CJ, 그리고 범 삼성가 장손인 이재현 회장에 대한 특검팀의 관심도 지켜볼 만한 사안이다. 삼성 비자금 차명계좌 논란과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에 이명희 회장의 비자금 연루 여부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배정 과정 당시 이재현 회장의 주변 상황, 홍라희 씨 미술품 구매 과정 등을 4월 중순에 마무리될 특검 수사 기간 내에 모두 손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삼성 특검이 ‘끝이 아닌 시작’이 돼 삼성을 장기간 동안 곤혹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특검 수사 완료 이후 기소될 인사들에 대한 재판과정이 단기간 내 마무리될 수 없을 것이며 검찰이 재수사에 나설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까닭에서다. 친 기업 성향을 표방한 새 정부 또한 삼성 파문 장기화 가능성을 의식한 듯 수사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항간에는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 중 한 명이 삼성 파문 전담 업무를 맡게 될 것’이란 이야기가 퍼져 있기도 하다. 한편, 본지가 몇 차례 보도한 이재용 전무의 해외비자금 조성의혹도 특검의 수사대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전무가 은밀하게 해외로 빼돌리다 본지의 보도로 알려진 이 사건은 경우에 따라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전망이다. 과연 이건희 부자를 향한 특검의 수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