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journal사회

윤봉길 친필 '월진회' 회원명부 첫공개

이경희330 2008. 4. 24. 00:42
기념사업회, 충남 예산서 벌인 농촌부흥운동 79주년 행사
 
김오달 기자
 
윤봉길의사 탄신100주년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는 4월 23일 윤 의사가 농촌부흥운동 차원에서 설립했던 월진회(月進會) 79주년 창립일을 맞아 윤 의사가 당시에 직접 작성했던 37명의 월진회 창립 회원 친필 명부를 처음 공개했다.
 
그동안 이 친필명부를 소장하고 있던 윤주 기념사업회 부회장은 자료 공개에 앞서 "월진회는 이름 그대로 날로 앞으로 나아가고 달마다 전진하자는 목표 아래 실력 배양과 경제 부흥을 통하여 조국독립을 이룩하고자 설립된 조직으로, 윤봉길 의사의 이러한 월진회 정신은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시대정신"이라고 전제한 뒤,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국민통합과 경제도약 그리고 조국 선진화는 80여 년 전에 이미 윤봉길 의사가 전개했던 전진운동을 계승, 실천하면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윤봉길 의사가 직접 쓴 월진회 창립 취지서.     © 김오달 기자

월진회는 1929년 4월 23일 윤봉길 의사가 중국으로 망명하기 직전 자활적인 농촌진흥을 목표로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세운 민간단체. 자신이 직접 벌어들인 돈만으로 매월 10전씩을 납부, 부업을 희망하는 농가에 새끼 돼지 한 마리씩을 나눠주고 기르게 했으며 양계에도 힘을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산림녹화와 장래 소득을 위해 유실수를 재배, 마을 앞 냇가에 6천여 주의 포플러나무를 심었고, 야산에 1천여 주의 밤나무를 심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다음은 윤봉길 의사가 직접 쓴 월진회 창립 취지서 전문.
 
< 월진회 창립 취지서 >

만천하의 동포여! 18억의 인류가 생명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존경쟁에 천촉되어 만감(萬感)이 교지(交至)하매 그 좁은 심장이 찢어질 뿐이다. 만감(萬感) 만상(萬想)이 그 과연 어떠한 감상일까?

 
그야 물론 천차만별이겠지마는 일언이 폐지하면 고락(苦樂) 두 자로 편성되었도다! 환언하면 즉 남과 같은 사업을 성공하려고, 남과 같은 행복을 안형(安亨)하려고 노력을 할 때에 도덕과 인륜(人倫)을 허신적(許身的) 같이 내어 버리고 자아주의(自我主義)로 황금만능을 부르짖으며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관자(管자) 왈 창름(倉凜)이 실(實)이라야 지영욕(知榮辱)이라 하였고, 맹자 왈 인무항산(人無恒産)이면 구무항심(苟無恒心)이라 하였으니 신사언야(信斯言也)하여 현대를 고찰하면 우리는 자작자급(自作自給)에 힘을 써서 나의 전도를 내가 이행(履行)하며 나의 운명을 내가 개척지 아니하면 불가한 것은 삼척동자도 지실(知悉)하는 바이다.
 
근위무가지보(勤爲無價之寶)요 천불능궁력사가(天不能窮役事家)라 하였으니 근검하면 될 것은 자연의 이치요, 춘불경작(春不耕作)하면 추무소망(秋無所望)이라 하였으니 노후에 안락을 누리려면 유시의 근검 저축은 당연지리요 불가결자(不可缺者)이다.
 
태산이 불양토양(不讓土壤) 고로 능성기대(能成其大)하였고 하해(河海)가 불택세류(不擇細流) 고로 능취기심(能就其深) 하였나니, 유원(維願) 첨위(僉位)는 물이망언(勿以妄言)으로 치지도외(置之道外)하시고 묵연히 과거를 회억(回憶)하시며 미래를 연상하시와 성연분비이(成然奮臂而) 본회에 광림하시와 원조하심을 경요(敬要) 함.
 
1929년 4월 23일 윤봉길

ⓒ 인터넷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