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6월 <선데이저널>은 ‘이명박 - 김경준 - 에리카 김의 삼각 사기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와이드 특집 기사를 최초로 보도했다. 본지는 희대의 사기극이었던 ‘옵셔널 벤처스 코리아’ 사건을 다루며 당시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경위를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본국에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나 2007년 대선 당시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이 사건을 ‘이명박 대선 후보가 연루된 희대의 사기극’이라며 이명박 후보를 집중 공략했다.
결국 검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수사하기에 이르렀으나 검찰은 당선이 유력했던 이 후보를 제대로 소환조차 하지 않은 채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옵셔널 벤처스 코리아’ 대표였던 김경준 씨를 횡령 및 허위사실로 기소했고 법원은 김 씨에게 징역 8년과 추징금 100억 원을 선고했다. 민주당은 이후 특검까지 실시했으나 때는 이미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때로 특검 역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조사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 간부들은 이 대통령 취임 후 현재까지 모두 승승장구했다.
당시 검찰 조사와 특검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옵셔널 벤처스’ 사기 사건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에리카 김 변호사였다. 김경준 대표의 누나기이도 한 에리카 김 변호사는 이 대통령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인물로 김경준 - 이명박을 이어준 인물이기도 했다. 2007년 BBK 수사에서 검찰은 김 변호사가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그를 서둘러 기소 중지한 상태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런 그녀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취임 3주년을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 25일 돌연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귀국을 둘러싸고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둘이 아니어서 에리카 김이 다시금 정국의 핵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에리카 김의 귀국과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청와대 여권 그리고 검찰과 사전 조율이 있었냐는 점이 핵심이다.
특히 김 변호사의 입국 시점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온 시점과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기획입국' 가능성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김 씨와 한 전 청장 사건 모두 이명박 대통령과 연관돼 있다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 정권 차원에서 입국 시기를 맞춘 게 아니냐는 것이다. 만약 두 사람이 정권이 바뀐 후 귀국했다면 그 휘발성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현 정권에서 이 문제를 터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기획입국설과 관련해 28일 “전에는 그렇게 귀국을 종용해도 들어오지 않던 사람들이 요즘은 잘도 들어온다”며 “정권의 마무리 작업으로 어차피 터질 것을 막아보려는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씨가 굳이 형사처벌 위험을 무릅쓰고 입국한 것은 현 정부 임기 내 부담스러운 사건을 털어내자는 모종의 교감이 있었다는 추측이다. 여기에 에리카 김이 한국행에 지난 2월 18일 LA를 방문했던 김덕룡 대통령국민통합특보의 LA방문과 맞물려 갖가지 소문이 나돌면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한국행 배후세력 의혹
현재 상황을 보면 에리카 김은 한국입국과 관련 사전에 정부 혹은 검찰과 조율하고 들어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LA를 방문한 김덕룡 전의원이 에리카 한국행에 관여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는 몰라도 김덕룡 전의원이 LA를 방문하고 돌아가고 바로 1주일 뒤에 에리카 김이 돌연 한국으로 들어갔으며 동시에 에리카 김과 LA에 가장 친분이 두터운 모 단체장이 한국으로 동시 입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국 관련 모종의 역활론 소문이 LA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때마침 그 인사가 에리카 김 한국행과 동시에 한국(태국행)에 들어가 이 같은 소문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의혹과 소문은 미확인된 것으로 정황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우연인지 몰라도 한국행이 동시에 맞아떨어져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평소 두 사람은 LA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친분관계가 있었다는 점과 김덕룡 특보가 운영하고 있는 모 단체의 LA협의회 의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율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논은 있었을 것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추측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에리카 김의 한국행 행보애 대해 아는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2월 10일 에리카 김에 대한 보호관찰 조치가 풀리는 시기에 즈음해 김 특보가 특사 자격으로 LA를 방문했고 이 과정에서 사전조율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김 특보는 지난 1995년 에리카 김의 자서전 출판회에도 참석하는 등 에리카 김과 오랜 친분을 유지해왔던 인물인 점으로 보아 한국행과 관련 김 전의원 배후설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에리카 김은 귀국 후 받은 첫 번 째 검찰 조사에서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투자자문회사인 BBK의 실제 소유주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라고 주장한 것은 거짓말이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데이저널>이 그 동안 줄곧 보도한 내용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에리카 김의 이러한 진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이 만약 에리카 김의 이러한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일각에서 제기한 기획입국설은 더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다.
순진한 거짓말과 진실
에리카 김의 갑작스런 한국행 파문은 날이 갈수록 일파만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BBK는 이명박 소유의 것이라는 주장과 계약서 원본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 모두가 거짓이라며 구속 중인 동생 김경준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내용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현재 다스와의 법정소송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누나 에리카의 주장은 미 법원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 그녀의 주장에 모종의 복선이 깔려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에리카 김은 미국 변호사 협회에 자진해 반납한 변호사 자격증을 받아 변호서 활동을 재개할 목적으로 입국했다는 등 횡설수설로 일관하고 있다.
BBK문제를 해결하고 반납한 라이센스를 다시 찾겠다는 그녀의 발언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에리카 김은 미연방검찰에 횡령 탈세 공문서 위조 등 4개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을 통해 연방지법으로부터 1년6개월의 보호관찰형과 전자족쇄를 찬 가택연금형을 선고받은 중죄인이었다.
연방지법 소장(CR 07-07-00853)에 따르면 지난 2001년 8월 28일에 자신이 대표로 있는 ‘에리카 김 변호사’ 회사 명의로 아사히 뱅크에 사업 융자 목적으로 15만 달러를 신청하면서 허위서류를 조작해 제출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 변호사는 자신이 고용한 회계사에게 IRS(연방국세청)세금보고 서류를 조작과 세금포탈 행위가 적시되어 있다.
또 2002년 1월 31일에는 유나이티드 커머셜 뱅크에 사업 융자를 목적으로 20만 달러를 신청하면서 허위서류를 조작해 제출했으며, 이 과정에서도 IRS(연방국세청)세금보고 서류를 조작하고 세금포탈 행위에 관한 내용으로 기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장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지난 2002년 4월 1일 유나이티드 커머셜 뱅크의 계좌 수표(번호 1002)로 19,932달러99센트를 지불은행 웰스파고 은행 계좌로 불법적인 거래를 했으며 그 해 8월 8일에는 역시 유나이티드 커머셜 뱅크의 계좌 수표로 119,950 달러 75 센트를 임페리얼 뱅크에 불법 입금시킨 혐의로 미연방형사법 제1014조 및 1057조 등을 포함한 혐의에 따라 4개 혐의 대해 유죄를 시인한 엄청난 사건의 당사자인 에리카 김 전 변호사가 BBK사건이 해결된다고 변호사 라이센스가 환원되기는 요원한 일이다. 두 사건은 별개 사안이다.
또한 에리카 김은 2008년 7월 월간조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월간조선>측이 '세간에 이 후보와 에리카 김 변호사 관계가 부적절하다는 얘기들이 있다'고 묻자 “지금은 뭐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밝힐 것은 밝혀야겠지요” 라며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묘한 여운을 남겨 후폭풍을 예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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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5년 에리카 김 변호사의 자서전적 에세이 '나는 언제나 한국인' 출판회에 참석한 이명박 씨가 김 씨 부모님과 함께 케익을 커팅하는 사진. |
필요에 따라 주장 바꿔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해 검찰은 이번 그의 입국 이유를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에리카 김 씨가 이전부터 보호관찰이 끝나면 입국하겠다고 약속했는데 3년의 보호관찰 기간이 올해 2월 10일로 종료됐다"며 "입국하기 사흘 전에 검찰에 입국 의사를 밝힌 후 들어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2007년 당시 김 씨 수사에 관여했던 다른 관계자는 "BBK 사건은 모두 끝난 사안이고, 에리카 김 씨를 조사한다고 새롭게 나올 이야기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해 세간의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과연 검찰의 주장대로 BBK사건은 끝난 것이고 에리카 김을 조사해 봐야 나올 것이 없다는 검찰의 성급한 판단은 상당히 모순적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BBK의 실질적인 소유자이며 계약서 원본을 가지고 있다며 공개까지 했던 그녀가 3년 뒤에 새삼스럽게 검찰조사에서 BBK는 MB소유가 아니며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그녀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동생 김경준씨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자신은 단지 동생을 살리기 위해 허위사실을 주장한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이 오히려 이번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에리카 김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경준 씨를 연결시킨 장본인이다. 두 핵심 등장인물의 연결 고리이자, 그 자신도 옵셔널벤처스 코리아 이사를 맡은 바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논란의 핵심에 있었으나 검찰 수사 때도 귀국하지 않아 결국 기소 중지 된 상태로 두문불출 했다. 그러던 그가 돌연 귀국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에리카 김을 조사하는 내용은 무엇일까.
일단 김 변호사가 기소된 혐의는 동생 김 씨가 옵셔널벤처스 코리아 대표로 재직하면서 회삿돈 319억원을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범으로 가담하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BBK가 이명박 후보의 소유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중지된 상태다.
그녀는 지난 대선 전 김 씨가 한국에 송환됐을 때 김 씨를 LA에서 후방지원했다. 한 때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피하는 등 오히려 동생 사건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것처럼 행동해왔다. 하지만 대선 막판 그녀가 김 씨의 변호사에게 소포를 보내는 등 동생을 막후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오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때문에 그가 동생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행을 선택할지, 귀국한다면 어떤 시점에서 무엇을 공개할 것인지에 관심이 쏠렸으나 결국 그녀는 한 순간 종적을 감췄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귀국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김 씨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도 높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유능한 변호사였던 에리카 김은 동생 경준씨가 공판과정에서 자신의 단독 범행임을 강조한데다, 동생이 모든 죄를 떠안고 중형을 선고받은 마당에 본인까지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의 갑작스런 입국 배경에는 검찰 조사를 받고 한국에서 사업 및 동생 면회를 자유롭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그 산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김 씨는 국내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업상 필요에서 기소중지라는 사법적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것이라지만 이번 그녀의 귀국은 향후 한국정치를 소용돌이 속 파란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높아 그녀의 의도대로 진행될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sundayjournal리차드 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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