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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승인 국감증언 ‘뒷거래’ 의혹 <일요신문>단독 공개

이경희330 2008. 12. 28. 20:23

“한수원 요청 받고 거짓 증언했다”
김 씨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비위 사실과 관련 국회의장 면담을 요구하는 나체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신병이 인도됐다. 연합뉴스

“2005년 한국수력원자력은 국회의원들 눈가리기, 국감위증교사 등의 방법을 동원해 무산위기에 처했던 신고리원전에 대한 승인을 끌어냈다. 따라서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원전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

1980년부터 11년간 울산 울주군 온산공단 내 한국석유공사에 근무하면서 초대 노조위원장을 역임한 김 아무개 씨(52)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비위 사실을 고발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2년 완공예정인 울산 원전의 승인 뒤에는 주민들의 결사반대 여론을 덮어버린 한수원 측의 국감 위증교사가 있었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는 당시 공사 측의 인사조치에 반발해 사표를 낸 후 80년~90년대 국내 대기업 노조를 이끌던 전직 노조위원장 출신 실업자들과 합심해 전국실업자노동조합추진위원회를 발족한 바 있다. 그렇다면 김 씨가 ‘국감위증죄’를 감수하면서까지 한수원 측의 비리를 폭로하고 건설 중인 신고리원전에 딴지를 걸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8일 서울 여의도에선 국회가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50대 남성 한 명이 국회 분수대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알몸시위를 벌인 것이다. 알몸시위의 주인공은 바로 김 아무개 씨. 이 날은 김 씨가 청송교도소 등에서 1년 6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날 김 씨는 호소문을 통해 신고리 원전승인과 관련, 한수원 측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다 경찰에 신병이 인도됐다.

김 씨는 “한수원은 원전 건설과 관련해 국정감사에서 사실과 다른 증언을 해달라고 내게 요청했다”며 “그 대가로 내 취업은 물론 실업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도대체 김 씨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씨와 한수원 측의 ‘악연’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원전승인이 날 당시의 정황과 분위기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신고리원전은 승인이 나기 전인 2004년 초부터 이 지역 국회의원들과 환경단체,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정부는 예정대로 원전건설을 추진했지만 극심한 반대와 시위로 인해 사실상 원전건설은 무산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는 기존의 고리원자력 건설 이후 124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 울산시민들 사이에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 것과 큰 관련이 있다. 이 수치는 국내 원전사고의 20%에 달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었고, 따라서 이 지역에 4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는 데 반대여론이 높았다.

당시 울산지역 국회의원협의회 소속 의원들은 특정지역에 원전을 집중적으로 건설해서는 안된다며 청와대와 총리실 등에 공개 질의서를 전달하는 등 신고리원전 건설 방침에 강력대응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핵발전소 추가건설 저지 울산비상대책위는 시민 5만 6000여 명으로부터 받은 원전반대 서명서를 울산시장에게 전달한 데 이어 신고리원전 건설에 대한 주민투표를 촉구하는 1000배 릴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이 같은 울산 시민들의 반대여론과 원전 반대 집회 풍경은 당시 언론에 연일 보도되며 국가적인 관심사로 대두됐다.

김 씨는 “당시 언론에 보도된 뉴스만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의 강한 반발로 원전건설은 무산되기 일보직전이었다”며 “하지만 상황을 뒤집고 원전건설이 추진된 것은 한수원 측이 돈과 공사 이권 등으로 주민들을 매수하고 뒷거래로 나를 포섭해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을 속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한수원 측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신고리원전 승인을 위해 약 1년 이상을 발 벗고 뛰어다녔다”고 주장했다. 한수원 측에서 자신을 다급하게 포섭한 이유에 대해 김 씨는 당시 신고리원전이 들어서는 울산 지역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자신이 지역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수습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 측은 취직은 물론 뭐든지 요구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해왔다. 한수원 실무자들은 원전공사가 시작되면 내가 사무처장으로 있는 전국실업자노조추진위원회 측에서 인력공급을 책임져달라고 말했다. 공사인력은 하루 8000명씩 투입될 것이고 연 인원으로 따지면 수백만 명 이상의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공사이권 등에 대한 뒷거래 약속도 있었다. ‘제발 여론만 모아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나는 개인적으론 내 취직걱정도 해결되는 데다 지역경제도 살릴 수 있고 수많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승낙했다.”

이후 김 씨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들여 원전 찬성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고 한다. 물론 한수원 측의 약속을 믿고 추후 보상을 기대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마무리된 후 한수원 측은 애초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금전적 보상도 일절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한 김 씨는 결국 사기죄로 고소당해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는 것.

김 씨는 우선 한수원 측이 주민들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당시 부당한 방법으로 주민들을 매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수년 전 신고리1, 2호기와 신월성1, 2호기 등 4개의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인 한수원이 지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2001년부터 주민과 관공서 관계자를 상대로 8억 원이 넘는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은 바 있다.

2004년 10월 한수원이 민노당 조승수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2001년 3월 한 달 동안 부산 기장군, 울산 울주군 주민과 군의회, 경찰서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식사비와 관광유흥비 명목으로 4100여 만 원을 쓰는 등 2001년부터 2004년 6월까지 6억 4000여만 원(1718건)의 향응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김 씨가 무엇보다 가장 크게 문제삼는 것은 한수원 측의 ‘국감위증교사’다. 원전승인을 끌어내기 위해 한수원 측이 김 씨에게 국감위증을 교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회 산자위는 지역 주민들의 반응을 주요하게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이례적으로 국정감사를 본사가 아닌 원전 현장에서 열었다. 김 씨에 따르면 원전 건설 추진을 위한 한수원 측의 ‘위증교사’가 이때 있었다고 한다.

“현지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잘 알고 있는 한수원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격렬하게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러 온 국회의원들의 눈에 띄면 원전승인이 수포로 돌아갈 상황이었다. 한수원 측은 국감장 주변에서 이들을 철저히 격리하고 봉쇄했다. 따라서 국감장에는 한수원의 계획대로 원전에 찬성하는 주민들로만 가득했다. 이들은 국회의원들 앞에서 일제히 ‘원전 찬성’을 연호했다. 국감장에 도착한 의원들은 뉴스에서 보던 원전반대집회 대신 원전찬성시위만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수원 측에서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한수원 임원들은 쐐기를 박는 방법으로 김 씨에게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거짓진술’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수원 실무자였던 P 소장과 K 부장 등이 승용차로 나를 태우러 와서는 ‘회사의 방침이다. 사활이 걸렸다’며 매달렸다. 그리고 나의 취업보장 및 건설인력 공급을 실업자노조가 맡아서 해달라는 등의 약속을 재차 언급하면서 원전승인이 무산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의원들을 붙들고 ‘무조건 원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설득해달라는 거였다. 한수원 관계자들을 따라가니 별실에는 안경률 김기현 오영식 조승수 의원 등과의 상견례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한수원 측에서는 나를 원전 찬성 대표자 자격으로 참석시킨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씨는 현지의 원전반대 분위기를 전하지 않고 그들 요구대로 원전추진의 타당성에 대해 역설했다고 한다. 원전 건설만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심각한 실업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설득의 근거는 ‘주민들이 간곡히 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뭏든 이날 국회의원들은 긍정적인 답을 줬고 무산위기에 처했던 원전건설은 결국 차질없이 이뤄지게 된다.

성대한 기공식이 거행된 후 김 씨는 한수원 측으로부터 원전찬성의 일등공로자로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수원 측은 그후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김 씨의 얘기다.

현재 김 씨는 “그들의 요구대로 거짓말을 한 나도 처벌받아야겠지만 위증을 교사한 한수원 역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수원 측은 김 씨의 모든 주장에 대해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김 씨가 거론한 당시 한수원 실무자 K 씨는 “그때는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인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전국실업자노조를 끌고 있는 김 씨가 먼저 우리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몇 번 만나기는 했다. 그러나 우리 측에서 먼저 도움을 요청했다거나 보상을 약속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김 씨 개인과 맺은 계약도 일절 없다. 돕겠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고마웠고 그래서 순수한 의미로 추후 도움을 준 노조 측에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후 한수원 관계자들의 명의를 도용해 위임장을 만들어 이런저런 사기를 치고 다녔다. 우리로서는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K 씨는 국감위증교사 부분에 대해서도 완강히 부인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김 씨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거짓이다. 그는 전과도 많은 사람이다. 김 씨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김 씨의 어이없는 음해에 분통이 터지지만 괜시리 구설에 오르기 싫어 법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김 씨는 국회에 당시 국감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고 나아가 ‘원전승인원천무효소송’과 ‘원전건설중지가처분신청’까지 할 계획이다.

원전승인의 배경에 대해선 이처럼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자해에 가까운 김 씨의 폭로가 사실인지 아니면 어떤 목적하에 이뤄진 것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할 듯 하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