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인재가 총리로 지명되었을 때는, 연륜이 부족함에도 MB의 간택을 받지 않을 수 없을만한 재능과 실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젊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은 것이다. 젊어서가 아니라. 그런데 우리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있지도 않았다가 어제저녁 갑자기 등장한 '40대 기수론'의 물살을 타고 우리 앞에 문득 다가왔다. 차기 대권주자로 촉망받아왔다고 하니 뜬금없어도 그런 줄 알자. 우리는 그를 인정해야 한다.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똥지게를 메고 자란' 빈농의 자식, 소장수의 아들 김태호. 그는 불굴의 최연소 도지사가 되더니 최연소 총리가 되는 성공신화를 썼다. 찌라시들이 밀고 있는 감동스토리의 중심엔 소박한 농부의 꿈을 키우던 소년 김태호가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 그 계기란 바로 아버지의 한마디.
"농부가 되더라도 농약병에 있는 영어는 읽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냐."
이 이벤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김태호는 없었을 뻔 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아아, 참 다행이다. 그때 계속 공부하기로 결심해줘서. 로맨틱 스토리의 절정은 연합뉴스에서 완성된다. 이 명문장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1971년 김종필 전 총리가 45살의 나이로 11대 총리에 오른 지 39년만에 40대 총리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된 것. 3공화국 이후 처음 있는 파격 인사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비견되며 `40대 기수론'에도 불을 지필 것으로 보인다."
누가 영국 총리와 그를 비견했을까? 우리는 몰라도 된다.
"파격 인사의 주인공 김 후보자는 이미 몇년 전부터 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촉망받는 정치인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차세대 리더로 손꼽혔던 걸까? 역시 우리는 알 수 없다.
"신선한 사고와 깨끗하고 젊은 이미지, 강단있는 지도력을 인정받으며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잠룡'으로 거론되는 등 정치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
... 이후 김 후보자는 차기 총리와 장관 하마평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렸고, 결국 40대 총리의 `깜짝 발탁'이라는 상징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또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처럼 정치 엘리트 코스를 빠르게 밟아왔지만 그의 시작은 미약했다.
1962년 경남 거창군의 벽촌에서 소를 키우던 빈농의 3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난 김 후보자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을 이겨낸 성장 과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많다. 김 후보의 부친도 이 대통령의 모친과 비견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김 후보의 부친은 교육열이 대단해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낸 뒤에야 소장수 일을 그만뒀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는 효심마저 장착했다.
"그는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심도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경남지사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첫 일정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백두산으로 관광을 다녀왔다."
어른을 공경한댄다. 쓰러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마지막 대목에서 정말로 쓰러졌다.
"부인 신옥임(46)씨와 1남1녀. 특기는 태권도, 취미는 바둑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이 12~15세용 위인전에서 핑크빛 로맨스의 거품을 걷고 나면 소박하게도 다음과 같은 사실만 남는다.
- 소가 아직도 큰 재산이던 시절에, 소를 사고 팔 만큼의 재력은 있는 농가에서 태어나 진학에 진학을 거듭해 대학원까지 나온 김태호는 정치에 입문해 도지사가 되었다가 총리로 내정됐다.
행간을 쑤셔보면, 정운찬 총리 내정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청문회에서 야당의 공세가 이어지자 한나라당은 "왜 정운찬이 총리가 되면 안 되느냐?"고 역정을 냈다. 사실 진실은 이 질문의 역에 있었다. 왜 굳이 정운찬이 총리가 되어야 하는가? 민주당 의원들의 다구리에 의해 도덕성의 바닥이 드러났고, 경제정책을 묻는 민노당 이정희 의원의 카운터 펀치에 능력도 없음이 드러난 그는 왜 총리가 되어야 했는가? 그 답은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의 지원사격에 있다.
“두 분 다 찢어지게 가난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친은 국화빵 장수를 하시고, 정운찬 후보의 모친은 삯바느질을 하면서...”
이 패스를 이어받아 정운찬의 과거사 연대기가 구술되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명절하고 제삿날 빼고는 밥을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얘기나, 아침에는 옥수수떡을 저녁에는 옥수수 죽을 먹었다는 얘기. 점심시간에 도시락이 없어 뒷동산에 가서 혼자 노는데 비가 오고...
결국 김태호도 정운찬처럼,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비결을 복기해야 했던 것이다. MB의 성공모델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거라고, MB와 찌라시 모두 의심치 않는다는 얘기다. 성공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 그리고 그 환상, 그 욕망.
당시 딴지에서 제작해 썼던 이미지
애초에 대통령후보 이명박에 투영된 욕망은 한나라당 선거캠프에서 슬로건으로 내놓은 <모두가 성공하는 국민성공시대>가 아니었다. <내가 성공하는 나의 성공시대>였다. 이들은 특정 개인의 로맨스에 의해 한때 전국의 유권자들을 홀린 이 착시현상이 유지되길 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김태호 본인도, 자신을 위한 거품 제조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지금 20~30대 청년층이 상실감에 빠졌다. ... 소 장사 아들로 태어난 제가 도의원과 군수를 거쳐서 최연소 지사를 두 번이나 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기회의 땅인지, 용기를 갖고 뛰면 된다는 자신감을 (청년층에) 주고 싶다"
"이 대통령이 저를 총리로 부른 것은 20~30대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서민출신이고, 농민 출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희망을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태양계에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논리가 완성된다. 소장수의 아들에 불과했던 그가 <총리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김태호가 총리가 되어야 하는가? 그 답은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삼국지식 로맨스에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MB는 "김 후보자가 나이가 젊은데도 불구하고 언행이 깊고 신중하며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다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카와 '남다른 젊은이'
김태호를 총리로 발탁한 것이 정말 파격적인 인사라면, 그 인물 자체가 파격적일 터. 사실 그는 화려한 전력이 있다. 그는 경남도지사 시절 마포 공설운동장에 3만 명의 도민들을 모아놓고 '경남도민 총궐기대회'를 열어 참여정부 화형식을 거행한 바 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공직자가 역시 선거를 통해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은 정부의 화형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은 분명 시민의 상식을 뒤엎는 파격임을 솔직히 인정하는 바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정운찬이 거대설치류의 클론이었던 것처럼, 김태호도 MB의 세포분열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운찬과 김태호는 여러가지 면에서 대칭을 이룰 수밖에 없다.
정운찬의 경우 이론이 삽질을, 학자라는 포지션이 2메가짜리 컴(퓨터 달린)도저를 중화시키는 환영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이번엔 젊은 피 수혈을 통한 동맥경화 예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충청도 출신의 정운찬은 세종시 몸빵용이었다. 경남에서 토목공사의 화신이자 '4대강 전도사'로 불렸던 김태호는 당연히 4대강 몸빵 총리다.
정운찬은 소모품이었고, 쓰임이 다 되자 즉시 폐기되었다. 김태호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물론 제품의 잔존가치가 남아있는 한 분리수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MB가 느꼈다는 '깊은 감명'은 믿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본체와 아바타는 결코 동등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클론 넘버 2. 김태호의 정체다. 새로 갈아 탄 싱싱한 아바타에 MB가 얼마나 든든할지는 알 바 없다. 아바타는 몸빵의 효과가 전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미미하다. 국민은 아바타가 아니라 본체를 본다. 아바타에게 책임을 전가함으로서 본체가 안전하다고 믿는 건 본체 자신만을 위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그 믿음은 본체 바깥세상엔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필독
'openjournal아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은 체제가 무너진다면 우리는 남북통일 준비는 되었는가? (0) | 2010.10.11 |
---|---|
김대중 대통령 1주기를 기리며... (0) | 2010.08.15 |
중국 네티즌 95% 오만한 한국 제압해야 한다..일본은 한국이 '눈엣가시 (0) | 2010.08.07 |
고려대 學과목 개설하여 "고대정신" 배우기라, 개는 무어라 할까? (0) | 2010.07.31 |
허울뿐인 친서민 실용정책, MB정부 서민경제 파탄만 남았다 (0) | 2010.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