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역사적 분기점, '1992년 한중수교'
1992년 한중수교때, 당시 김종인 경제수석은 노태우 대통령 '밀사'로 중국 등을 비밀리에 들락거렸다. 한중 수교에 대한 당시 미국의 의구심과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미국 수뇌부와 친분이 두터운 김 수석은 미국의 의구심을 해소시켜 나가는 동시에, 국내외 보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과의 단교를 단행하면서까지 중국과의 수교를 밀어붙였다. 그 덕(?)에 그는 대만에게 공적으로 찍혀 지금도 대만을 출입할 수 없는 처지다.
김 수석이 이처럼 한중수교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큰 흐름을 볼 때 세계최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 길을 틀 때만 한국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중국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의 1인당 GDP나 기술수준 등은 큰 격차를 보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 수석을 만난 중국 지도부는 "자그마한 한국이 좀 산다고 너무 으스대는 것 아니냐"는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국임을 자부하는 중국은 수교협상 과정에 꿀리는 모습을 보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안팎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92년 한중수교가 극적으로 성사됐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일본에의 수출액을 합한 것보다 중국에의 수출액이 더 많을 정도로 중국은 한국경제의 최대 버팀목이 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한국이 가장 빨리 경기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에 한국이 최대 수혜국이 됐기 때문이었다.
정주영의 고뇌, IMF후 한중 밀월시대...
한중수교 이래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숱한 경제적 신경전이 있었다. 한 예로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생존시 일이다. 정 회장도 일찌감치 중국진출이 관건임을 알고 있었다. 중국도 현대그룹이 중국에 투자를 해주기를 원했다. 특히 자동차 투자를 원했다. 중국은 선진국 기술보다 한국 기술을 선호했다. 너무 앞선 기술보다는 한단계 앞선 기술이 모방 등을 하기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밑협상은 결렬됐다. 정 회장은 '포니 라인'을 중국으로 옮기려 했다. 그러나 중국이 원하는 것은 '소나타 라인'이었다. 당시 '소나타'는 현대차의 첨단제품이었다. 정 회장은 고심끝에 중국투자를 포기했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핵심기술을 중국에게 빼앗기는 자충수를 둘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정 회장의 고뇌어린 판단이 오늘날 현대차의 세계적 약진을 가능케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1997년 IMF사태는 한중간에 경제적 물밑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국가부도는 중국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한국이 그렇게 허망하게 쓰러질 줄이야. 중국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었다. 실제로 1998년 서방 핫머니는 중국도 공격했다. 중국은 화교자본까지 총동원해 간신히 공격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 후 중국은 한국과 정부 차원의 숱한 물밀 교류를 가졌다. 한국에게서 어떻게 하다가 쓰러졌는지, 세칭 '패배의 경제학'을 배웠다. 서방열강에게 나라가 갈가리 찢겼던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중국은 "서방은 다시 중국을 열토막 내려 한다"는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당시 뚜렷한 '등거리 외교'를 하고 있던 한국을 믿고 많은 속내를 털어놨다.
한 예로 일본이 자신들이 돈을 내 중국에서 국제금융위기 대응 세미나를 열려 해도 중국은 불허했다. 대신 한국에 대해선 자신들이 비용을 대면서까지 초청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의 중앙은행 베이징사무소도 자국과 수교한지 오래된 일본보다 한국에게 먼저 내줘, 일본에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이렇듯, 한중 양국은 수교후 18년간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과 협력을 계속하며 성숙돼 왔다.
부시의 "디스 가이"와 장쩌민의 "따꺼"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한 살 차이인데도 (나를) `따꺼(大兄)'라고 불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인 2007년 4월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미국-중국 사이에서 '등거리외교' 노선을 고수했다. 그러다보니 미국과 충돌이 많았다. 특히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랬다.
부시 취임후 방미한 김 대통령이 'MD(미사일방어) 동참' 요구를 거절하자, 발끈한 부시는 공개석상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디스 가이(This Guy, 이 자)"란 모욕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반면에 장쩌민 국가주석은 김 대통령을 중국에 초청한 자리에서 "따꺼"라 불렀다. '따꺼'란 중국인이 최고의 존경과 흠모의 정을 표시할 때 쓰는 표현이다.
장쩌민은 김 전 대통령이 퇴임후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의 주치의를 한국에 급파, 김 전 대통령을 진맥토록 할 정도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고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조전을 보내 깊은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외교가 뒷받침될 때만 경제 또한 전성기를 맞을 수 있는 법이다.
'한중 갈등'에 신난 일본
MB정권 출범후 '중국 홀대'로 삐걱대기 시작한 한중 관계가 천안함 사태후 파열음을 크게 키우자, 가장 신이 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 포탈에 들어가보면 한중 갈등 심화를 연일 속보로 다루고 있고, 이런 뉴스는 곧 베스트 클릭 뉴스로 등극하곤 한다.
중국 네티즌의 95%가 "오만한 한국을 제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는 중국 <환구시보> 뉴스도 톱뉴스가 되고 있고, "중국 네티즌이 일본보다 한국을 싫어한다"는 조사결과도 실리고 있다.
하긴, 일본에게 한국처럼 '눈엣가시' 같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소니를 쓰러트렸고, 미국에서 토요타가 융단폭격을 맞는 사이에 현대차는 약진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져있는데, 한국은 중국특수로 고성장을 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경제의 근간인 한중 협력에 비상등이 켜졌으니 내심 얼마나 통쾌하고 고소할지, 안봐도 비디오다.
재계에 따르면,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무서운 초고속 성장에 한국경제에는 황신호가 켜진 상태다. 한 예로 반도체는 아직 중국 추적권에서 4~5년 앞서 있지만, 평면TV는 격차가 불과 8개월로 좁혀졌다고 한다. 여기에다가 중국-대만의 양안협력 본격화로 한국경제가 받는 압박은 더욱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마당에 중국정부가 한국을 적대시하고, 중국소비자가 한국제품 불매운동이라도 편다면 우리가 받을 타격은 예측불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한반도를 진앙으로 동아시아는 급속히 '신냉전 지대'가 되고 있다. 경제의 적인 이념이 경제 위에 군림하고 있다. 일본이 옆에서 그렇게 신나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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