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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에서..서현숙 이화의료원장·이화여대 의무부총장, 저탄소 녹색성장’ 국민실천 중요

이경희330 2008. 9. 11. 00:30

 

가끔 TV를 보면서 유럽은 자전거 도로가 잘 발달돼 있고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이렇게 ‘빨리빨리’에 물들어 각박하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이는 산업화가 늦은 탓에 선진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빨리빨리’ 문화가 생겼다고도 한다. 선진국에서 100년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30년 만에 이루다 보니 하루를 이틀처럼 부지런히 살아왔다는 얘기다. 일리가 있는 듯하다. 자원도 기술도 없는 조그마한 국가가 ‘하면 된다’는 정신 하나로 세계가 부러워할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위기란 말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우리나라가 고유가와 지구온난화의 덫에 걸려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20여년간 싼 가격에 석유를 수입해 쓰며 풍요를 누리다 갑작스런 고유가 속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어서다. 혹자는 손쉽게 석유 같은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저탄소 저소비’ 사회로의 체질 변화에 소홀히 해온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화석에너지는 사용량이 많을수록 가격이 올라가고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취약점을 갖고 있건만 이를 간과해온 탓이라는 설명이다.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인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 대국이기도 하다. 늦게나마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정비전으로 제시하며 고효율 저소비 에너지 사회구조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은 다행스럽다. 최근 발표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들여다보면 화석연료의 고갈과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화석연료 비중을 얼마나 줄여야 할지, 에너지 효율을 얼마나 늘려야 할지, 효율과 수요 측면에서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어 종전의 에너지정책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너무 공격적으로 목표를 설정한 것 같아 우려도 되지만 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정책의지를 읽을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태양광은 현재보다 44배, 풍력은 37배, 바이오는 19배, 지열은 51배로 각각 확대한다고 한다.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집중투자는 고용창출과 탄소저감 등 녹색성장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미래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으론 원자력발전소 증설에 대한 일각의 비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의 97%를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에서 경제성과 뛰어난 안전 운영기술, 탄소저감능력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 의해 수차례 입증된 준국산 에너지의 사용을 늘리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본다. 다만 정부는 지난 20여년간 방폐장 설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사례처럼 소모적인 국력 낭비가 재발되지 않도록 원전과 고준위 방폐장 선정에 투명하고 민주적인 공론 절차를 도입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일 것이다. 스웨덴, 아일랜드 같은 선진국에선 ‘끝장 토론’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이렇게 수립된 정책에 대해선 국민들이 적극적인 지지로 뒷받침해준다고 한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하려면 에너지 사용의 효율화를 위한 국민 모두의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여유로운 삶을 물려주기 위해 허리띠를 한번 더 졸라매고 분발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서현숙 이화의료원장·이화여대 의무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