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체계는 당시 국어의 전면적 표기를 위하여 마련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고유 요소(要素)와 외래 요소까지를 고려에 넣은 체계였던 것이다. 국어에서의 외래 요소는 주로 한자어였으므로 이 한자음의 표기를 위하여 마련한 것이 《동국정운》이었다. 이 《동국정운》의 한자음 표기는 우리 음운체계에 동화한 대로가 아니라 원음에 충실하려 했기 때문에 고유 요소 표기와의 사이에는 약간의 어긋남이 있었다. 〈초성〉 위의 23자모표 전탁(全濁) 계열의 'ㄲ·ㄸ·ㅃ·ㅉ·ㅆ·ㆅ'은 한자음 표기에서는 어두에 자유로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국어 표기에서 그 중 'ㄲ·ㄸ·ㅃ·ㅉ'의 사용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마 〈중성〉 훈민정음 해례 중성해에서의 중성의 합용병서 가운데 2자 합용자인 ' 〈종성〉 전술한 바 훈민정음 해례 중성해에서는 종성을 8자 체계로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훈민정음》 본문에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쓴다(終聲復用初聲)"라 한 데 대한 간소화안이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는 'ㅈ·ㅊ·ㅍ·ㅌ·ㄿ' 등의 종성을 썼던 일도 있으나, 그 밖의 모든 문헌에서는 이 8종성의 규정이 지켜져 있다. 그러면서도 반치음(半齒音) 'ㅿ'이 특수한 경우에 자주 쓰였는데, 이 'ㅿ' 종성에 대해서도 해례 종성해에서 '의갗(狐皮)'에서의 'ㅿ·ㅊ' 종성을 'ㅅ'으로 통용된다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ㅿ'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용법은 'ㅇ' 또는 드물게 'ㅸ'에 선행한 위치에 한정되어 쓰였는데, 이는 아마도 이와 같은 위치에서 'ㅅ'과 'ㅿ'이 중화되어 [z]로 실현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위치에 한해서 'ㅿ'이 음절말(音節末)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즉, 훈민정음 제정 당시에는 음절말에 9자음의 대립이 있었던 셈이다. 종성의 합용병서는 실제 문헌에서 국어 표기에 쓰인 것으로는 사이시옷을 제외하면 'ㄳ·ㅧ·ㄺ·ㄻ·ㄼ·ㅭ' 등의 6가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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