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이래 조선 초기에 걸쳐 궁중에 설치한 학문 연구기관. |
|
본문 | ||||||
1392년(조선 태조 1) 7월에 제정된 관계에 따르면 고려의 제도를 도습하여 보문각(寶文閣)·수문전(修文殿)·집현전(集賢殿)이 그대로 존치되어 있었으나,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집현전을 확대하여 실제의 연구 기관으로 개편하였다(1420). 그 직제는 겸관(兼官)으로 영전사(領殿事:정1품) 2명, 대제학(大提學:정2품) 2명, 제학(提學:종2품) 2명과 전임관인 부제학(副提學:정3품) 1명, 직제학(直提學:종3품) 1명, 직전(直殿:정4품) 1명, 응교(應敎:종4품) 1명, 교리(校理:정5품) 1명, 부교리(副校理:종5품) 1명, 수찬(修撰:정6품) 1명, 부수찬(副修撰:종6품) 1명, 박사(博士:정7품) 1명, 저작(著作:정8품) 1명, 정자(正字:정9품) 1명이 있었다. 그 인원은 몇 차례 변경되면서 운영되었으며 1436년(세종 18) 20명으로 확정되었다. 이곳에서 이룩한 업적은 학문연구와 편찬사업 등이다. 편찬사업으로는 《고려사(高麗史)》 《농사직설(農事直說)》 《오례의(五禮儀)》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삼강행실(三綱行實)》 《치평요람(治平要覽)》 《동국정운(東國正韻)》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석보상절(釋譜詳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의 많은 서적을 편찬·간행하여 한국 문화사상 황금기를 이룩해 놓았다. | ||||||
-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당,정치웹진,E-신문, 일간신문, 단체 바로가기 (0) | 2008.10.16 |
---|---|
사서삼경언해 [四書三經諺解] (0) | 2008.09.13 |
훈민정음의 배경과 경과,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목적? (0) | 2008.09.13 |
글자로서 훈민정음 (0) | 2008.09.13 |
책으로서 훈민정음 (0) | 2008.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