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다감'과 '살가움'
최종규 (함께살기)
. 일가친척 ... 여기서 해방되니까 아무도 없고, 일가친척도 없고, 그래 고향 가자고 조선으로 갔습지 ... <가고 싶은 고향을 내 발로 걸어 못 가고>(안이정선, 아름다운사람들, 2006) 45쪽 나라나 겨레마다 쓰는 말이 달리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사람이 쓰는 일본말이, 영국에서는 영국사람이 쓰는 영국말이, 독일에서는 독일사람이 쓰는 독일말이 있습니다. 일본이든 영국이든 독일이든, 제 나라 말을 밑바탕으로 배우면서 나라밖 말을 저마다 다른 쓸모에 따라서 익힙니다. ┌ 일가친척(一家親戚) : 일가와 외척, 인척의 모든 겨레붙이 │ -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두 모이다 │ ├ 일가친척도 없고 │→ 피붙이도 없고 │→ 살붙이도 없고 │→ 겨레붙이도 없고 └ … 우리들이 사는 곳은,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서 쓰는 말은 한국말입니다. 지난날 말 권력을 움켜쥐고 있던 사람들은 한문을 썼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일본말을 써야 했고, 그 뒤 미군정을 거치고 미국 문물이 들어오며 미국말이 아주 중요하게 익힐 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우리 나라 임자말인 한국말은 제 대접을 못 받았습니다. 얕잡히거나 내리깎이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흐름이 여태까지 이어오면서, 살갑게 한국말을 쓰면 알맞는 자리에 한국말이 안 쓰이고 중국말이나 일본말이 ‘동북아시아 한자 문화권’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두루 쓰입니다. 한국사람한테는 ‘피붙이-살붙이-겨레붙이’고 예부터 써 온 한국말이요, 지금이나 앞으로도 넉넉히 쓸 만한 낱말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문화와 삶터가 바뀌기도 해서 말도 바뀌곤 하니, 이런 한국말도 자취를 감추거나 모습을 달리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일가친척’은 우리 땅에 얼마나 들어맞거나 알맞는 말이며, 우리 삶과 생각을 얼마나 잘 담아내는 말일까요. ㄴ. 다정다감 ...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다정다감한 숲의 너른 품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했습니다... <숲에서 크는 아이들>(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 파란자전거, 2007) 76쪽 우리들은 ‘다정하다’는 말과 ‘정이 많다’는 말을 함께 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감하다’라는 말은 거의 안 쓰고 ‘감정이 넉넉하다’거나 ‘감정이 푸지다’라는 말은 흔히 써요. ‘다감’은 앞에 ‘다정’이 붙는 자리에만 쓰인다고 하겠는데, 이런 말을 그대로 쓰는 일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한 번쯤 말씀씀이를 돌아보면 어떨까 싶어요. ┌ 다정다감(多情多感) : 정이 많고 감정이 풍부하다 │ - 다정다감한 소녀 / 그녀의 다정다감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 │ 나를 꽤 아껴 주는 다정다감한 어느 친구의 호의 │ ├ 다정다감한 숲의 너른 품 │→ 살갑고 따뜻한 숲의 너른 품 │→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숲의 너른 품 └ … 말 그대로 “정이 많다”고 쓴다면, 또는 정이 많은 모습을 가리키는 ‘살갑다’나 ‘따뜻하다’라는 말을 쓰면 어떨까요. 이 자리에서는 ‘사랑스럽다’를 써도 어울립니다. ‘부드럽다’라든지 ‘애틋하다’를 써도 괜찮아요. ‘반갑다’를 써 볼 수 있고, 말씨를 살짝 바꾸어 ‘따사롭다’나 ‘보드랍다’를 넣어도 좋겠지요. 사람마다 다른 느낌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만큼, 저마다 포근함이나 아늑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자기가 고마이 여기고 달가이 받아들이는 포근함과 아늑함은 어떤 모습인지 그려 보아도 됩니다. 백 사람한테는 백 가지 말투가 있지 않겠어요. 백 사람이 똑같은 말 하나를 쓸 수도 있지만, 백 사람이 백 가지 자기 말씨를 살리며 서로서로 잘 알아들을 만한 낱말을 고를 수 있으면, 우리 말 살림은 한결 넉넉하고 푸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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