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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발언은 오럴해저드가 아니라 모럴해저드

이경희330 2008. 11. 7. 22:56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헌법재판소 주심재판관을 만나 세대별 합산 등에서 일부 위헌이 나올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이는 생방송을 통해 전국민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이로 인해 대정부질문이 중단되고, 발언이 3차례나 수정이 되고, 헌법재판소가 유감성명을 발표하고, 여야는 진상조사를 하기로 협의하고, 기획재정부는 해명자료를 배포하느라 바빴다. 이 발언이 얼마나 큰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하루였다.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은 “또 강장관의 ‘오럴 해저드’인가”로 요약된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차라리 브라질로나 보낼걸’이라고 한탄했고, 다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강만수 때문에 미치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 장관의 발언은 매우 명확하게 재정부가 헌법재판소를 접촉하여 의견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기획재정부는 세제실장 등 실무자가 헌법 연구관을 면담하고 의견서를 제출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장관의 발언을 해당부처가 반박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 기자실에서는 재정부 공무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종부세 헌법소원 관련 헌법재판소 설명 경위’라는 자료를 배포하고 다닌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강 장관의 발언을 ‘오럴 해저드’, 장관 개인의 말실수로 이 문제를 슬그머니 넘어가서는 결코 안된다. 행정부의 장관 또는 실무자가 헌법재판소의 주심재판관 또는 재판연구관을 ‘접촉’해 재판결과를 받아들고 이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당히 답변한 사안이다. 그것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민감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관련부서의 장관이 개입한 일은 결코 ‘오럴 해저드’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 대정부질문은 만만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강 장관의 문제가 된 답변은 여당인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내용이다. 여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 장관이 특별히 거짓말을 하거나 부풀릴 일이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정부질문이 이루어질 경우, 행정부 공무원은 질문을 할 의원실에서 그 전날까지 질문지를 받아오게 된다. 답변준비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밤을 새워 답변을 준비한다. 야당 의원들은 미리 질문지를 넘겨주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여당 의원들은 대체로 질문지를 미리 넘겨 주어서 답변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준다.

답변서는 똑똑한 공무원 서너명이 금방 풀어서 적는 수준이 아니다. 국정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최하급 실무자부터 시작해서 수차례의 결재과정을 거쳐 장관 결재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그 와중에서 있을 수 있는 오류나 실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게 된다.

강만수 장관의 답변서도 기획재정부는 최선을 다해 작성했을 것이다. 과장, 국장, 본부장을 거쳐 차관과 장관의 결재까지 모두 거친 답변서가 그의 손에 쥐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준비한 답변서를 보고 대정부질문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강 장관은 한번의 말실수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민주당 김진표 의원의 질문에 대해 모두 기획재정부가 헌법재판소를 접촉했음을 분명히 밝혔다.

과연 이 사안을 단순한 ‘오럴 해저드(말실수)’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인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법부 독립의 원칙과 권력분립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저 순진무구한 답변이 과연 오럴 해저드인가? 자신의 발언이 가지는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1-2주 전에 들었다’는 답변을 별 망설임없이 했다.

한나라당도 기획재정부도 또다시 ‘국민이 오해했다’는 논평을 발표할 수는 없었다. 이번 발언은 ‘오해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로 인해 헌법재판소는 설립 이래 최악의 위신추락을 겪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해명을 실은 포털사이트 뉴스의 댓글란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그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해명은 아예 수천개의 반대가 달리면서 ‘왜 거짓말이냐’는 비난이 이어진다.

민주주의 국가는 그 통치질서에 있어서 ‘권력분립’과 ‘사법부 독립’은 근간이 되는 질서이다. 이를 무시한 발언이 과연 ‘오럴 해저드’라고 할 것인가? 종부세를 폐지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고집이 빚은 최악의 ‘모럴 해저드(도덕붕괴)’가 정확한 표현이다.

강 장관의 발언에서 국민들은 어떤 오해도 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하승주/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