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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 한파’에 갇힌 봉하마을..청와대, 검찰 수뇌부 갈아치우며 대통령 기록물·박연차·남상국 전 대우 사장 카드로 압박

이경희330 2009. 1. 28. 23:23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8일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올 연초, 신년 인사 겸 해서 평소 친분이 있던 ㄱ씨와 점심 식사를 했다. 오랜 기간 정치 생활을 해온 그는 이른바 ‘친노(親盧)’ 세력으로 불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고, 2002년 대선 때 ‘국민참여운동본부’의 핵심 간부를 맡았고, 지난 정권에서 공기업 임원을 맡기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그는 최근 검찰의 분위기를 슬쩍 전했다. 친노 인사를 대상으로 하는 검찰의 수사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지난 연말 직접 검찰에 불려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ㄱ씨가 검찰 조사를 받은 이유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때문이었다. 이 인사를 수사하면서 그가 사용한 수표 중의 하나가 ㄱ씨로부터 받은 것으로 확인된 때문이었다. 특별한 대가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집중 추궁을 당했다고 한다. 상당한 고액권도 아니고, 100만원권 수표 한 장의 추적까지 펼칠 정도로 검찰의 수사가 세밀한 것에 대해 ㄱ씨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지난 정권 비리 수사 빨리 마무리지어야”

친노 세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설 연휴 이후인 2월에 들어 그 정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의 검사장급 인사도 예상보다 일찍 설 이전에 단행되었다. 최대 관심사였던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모두 교체하면서 이명박 정부도 단호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들은 특수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쌍두마차이다.

새롭게 임명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과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에 대해 검찰 주변에서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고, 힘든 수사를 돌파해내는 추진력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공통으로 내리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1월 초 사석에서 “대통령의 뜻은 지난 정권의 비리 의혹 수사를 가급적 빨리 마무리 짓고 새해부터는 새로운 도전에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끝냈어야 할 (노무현 정권) 수사가 새해 정국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검찰 수뇌부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이번에 임명된 새 수장들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부장검사급 중간 간부 인사 역시 설 연휴 이전에 모두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인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및 특수 1, 2, 3부장, 대검 중수부 중수 1, 2, 3과장 등이다. 특수 수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야전 지휘관들이다. 설 이후에는 새 진용으로 좀더 강도 높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서 마무리하라는 주문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세 군데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 기록물 유출 의혹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15억원 돈거래 의혹은 대검 중수부에서,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유족측이 제기한 명예훼손 고소 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서 각각 수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진척된 것은 대통령 기록물 유출 의혹 건이다. 사실상 모든 정황 파악이 다 끝난 가운데,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절차만 남겨두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향후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예우를 고려해서 방문 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노 전 대통령측이 “방문 조사를 받느니, 차라리 직접 검찰에 출두하겠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여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를 ‘표적 수사’ 여론몰이용으로 역이용하려는 전략적 의도로 보인다”라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측의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정서상의 표현을 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 굳이 문제가 있다면 당당히 직접 검찰에 나가서 조사를 받겠다는 뜻이다. 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강철 전 특보, 새로운 혐의로 ‘첩첩산중’

   
▲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가운데)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노 전 대통령측이 우려하는 것은 정작 그 자신보다는 주변에서 또 다른 돌출 ‘뇌관’이 터져나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박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한나라당의 한 유력 인사는 얼마 전 몇몇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축하금 1천억원설이 나오고 있다. 박회장이 거기에 개입되었다는 얘기도 있다”라고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일각에서 “박회장 로비 의혹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일부 여권 인사들이 다치는 것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ㄱ씨는 “이강철 전 특보에 대한 (비리 혐의 관련) 검찰의 집착이 대단한 듯하더라. 이 전 특보가 검찰의 집요한 수사망에 계속 시달릴 것 같다”라고 전했다. 실제 그와 만난 지 며칠 후에 이 전 특보와 관련한 새로운 검찰 수사 건이 또 불거지기도 했다. 국내 한 부동산 시행사의 해외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사업에 대해 대한토지신탁이 투자하도록 그가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 제기가 그것이다.

이 전 특보가 자신의 측근인 노 아무개씨를 통해 기업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도 계속 남아 있다. 측근인 노씨가 이 전 특보와의 관련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수사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외부 인사 접촉은 계속

   
▲ 새로 임명된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시사저널 임준선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5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방문객들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뒤 아직까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경수 비서관은 “언제부터 다시 방문객들과 만날지 아직 딱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날씨가 다소 풀리면 자연스럽게 재개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것일 뿐, 인사들 접촉은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 첫날인 1월1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과 주변 인사 약 4백여 명이 봉하마을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외부 활동에 대해 “형님(노건평)의 재판 결과가 나오는 것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결과가 나오면 입장 표명을 명확히 하고 외부 활동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5억원의 차용증에 대해서도 입장 표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ㄱ씨는 “노 전 대통령이 귀향한 뒤에 농경 활동을 위해 농지를 조성하고, 농기구를 구입하는 것 등에 자금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초 봉하마을을 중심으로 친환경 농산물 재배 사업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농촌과 환경 문제에 새로운 표본을 제시한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2.0’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병행해서 국정 경험을 알리는 저술·출판 활동을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양 축은 각각 ‘㈜봉하’와 ‘봉하재단’이 맡을 것이라는 전언이었다.

㈜봉하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봉하재단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축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홍보처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당초 노 전 대통령의 계획은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09년부터 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을 통해서 활발하게 자신의 국정 경험을 피력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안다. 필요하면 서울을 방문해서 지인들을 만나거나 행사에도 참여하고, 또 집필 활동도 열심히 할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많이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뜻밖의 노건평씨 수사라는 변수를 만난 셈이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5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서 서서히 대외 활동의 폭을 넓혀갈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지방선거가 이명박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ㄱ씨와 전직 국정홍보처 인사는 “정치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 제도의 제도적 중요성과 현재의 결함에 대해 정책 토론을 하자는 차원일 것이다. 원래 노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지방자치 제도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했고 ‘지방자치실무연구소’ 등을 만들어 그 연구도 활발히 한 바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천 전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의 행보를 정치 일정과 연관 지어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럴 계획은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향후 노건평씨 재판을 비롯해 노 전 대통령과 그 주변에 대한 검찰 수사의 향배는 정국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과 봉하마을 사이에 힘겨루기는 여전히 팽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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