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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개각 박영준 전격 컴백 막후..문고리 틀어쥔 ‘왕비서관’ 돌아왔다

이경희330 2009. 1. 29. 23:28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극도의 보안 속에 ‘1·19 개각’을 전격 단행했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이 대통령 측근들이 대거 중용돼 강력한 친위체제가 구축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당 일각에선 ‘왕의 남자’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이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것을 두고 우려와 함께 견제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권력 사유화 논란으로 물러났던 박 차장이 다시 내각의 요직에 기용되자 ‘소장파와의 권력투쟁이 재연돼 이명박 개혁전선의 전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것. 이런 점에서 박 차장의 컴백은 단순히 차관급 인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권 내 권력 갈등이 또다시 폭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여권 ‘2인자’로 돌아온 박 차장의 컴백 막후를 따라가 봤다.

영준 전 비서관이 막판에 행정자치안전부 차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개각 발표가 있기 하루 전이었던 지난 1월 18일 일요일 오후 청와대 일각에서는 ‘박영준 급부상’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때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낙마를 계기로 그동안 2개월을 끌어오던 개각이 마침내 구체적으로 다가오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경제팀 교체 등의 큰 줄기는 잡혔지만 박영준 국무차장의 복귀는 말 그대로 ‘점쳐지던’ 수준이었다.

특히 박 차장의 컴백은 그가 지난해 6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과 ‘권력 갈등’을 빚은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여권 일각에서 부정적 기류가 강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박 차장의 거취가 개각 하루 전 급속하게 ‘컴백’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은 여전히 그가 ‘왕의 남자’로서 이명박 정권의 최대 실세임을 웅변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애초 행정자치부 차관에서 국무차장으로 ‘파워 업’된 것을 두고 “이상득 의원 측에서 문제 제기를 해 막판에 더 힘센 자리로 갔다”라는 말들도 나왔다.

관가에선 벌써부터 향후 박 차장의 역할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 대통령의 ‘특별’ 신뢰를 받고 있는 그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활동하게 되면 “참여정부 이해찬 전 총리의 파워와 맞먹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청와대와는 다른 자리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선 그가 울트라 파워를 휘두르면서 한승수 총리를 ‘허수아비’로 내몰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특히 박 차장은 청와대에서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정권 초기에 기획조정 1팀-국정상황2팀(정보취합)-감찰 3팀으로 구성된 울트라 권력팀의 수장이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이명박 정권의 권력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는 박 차장이 과연 ‘약체’인 한승수 총리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렇다면 왜 이 대통령은 그토록 박 차장을 신뢰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지난 대선 때 박 차장이 지대한 공헌을 해 이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그는 이 대통령의 전국적인 지지모임인 선진국민연대를 만들어 460만여 명에 이르는 회원 수를 확보, 대선 승리에 ‘구체적’으로 공헌한 바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전국에 산재한 이명박 후보의 지지모임이 선진국민연대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 당시 하부 지지모임을 이끌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차장이 한 일이라곤 이미 결성된 모임을 한 곳으로 묶는 작업을 했던 정도다. 당시 그가 위에서부터 고압적으로 지시를 내려 하부조직과 갈등도 많았다. 박 차장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은 것뿐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그런 말들을 믿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의원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지지율을 유지하고, 대선에서 530만 표로 이긴 건 선진국민연대 460만 회원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당 인사들이 여러 차례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때마다 ‘그건 내가 잘 안다. 더 말하지 말라’고 자르더라”고 전했다.

사실 박 차장이 향후 발휘할 파워의 강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가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여권에 또 다시 갈등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게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난해 6월 그는 정두언 의원과 권력 갈등을 빚다가 청와대에서 물러난 바 있다. 박 차장의 컴백에 대해 정 의원 측은 “할 말이 없다. 일단 지켜 보겠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도 지난해 6월의 권력 갈등을 겪고 난 뒤 ‘여권 전체에 상처를 줘 전력이 약화되는 일은 하지 말자’는 묵시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개각에 대해서도 일단은 지켜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하지만 ‘핵심 실세’ 박 차장의 재등장은 여권 전체에 지난해의 실패를 또 다시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지난해 6월 이전만 해도 박 차장은 그야말로 뛰는 호랑이에 날개까지 단 격으로 주변에 거칠 것이 없는 이명박 정권 최대의 실세였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은 컸다.

소장파 라인으로 청와대에서 연설기록비서관으로 일하다 물러나야 했던 이태규 전 비서관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소통 구조가 막혔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권력의 사유화 탓일 것이다. 보고 라인이 어느 한쪽으로 단일화되고 나니 그럴 수밖에 더 있겠나? 청와대가 동맥경화에 걸린 것이다. 박영준 비서관이 실세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 그의 눈치만 보게 됐다. 실제로 박영준 비서관한테 잘 보이면 그것으로 오케이고… 양방향 의사소통 없이 일방적 지시만 있고, 내부 소통이 안 되게 됐다. 커뮤니케이션도 없이 상명하복만 있다”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당시 정두언 의원과 권력 갈등이 빚어진 것도 어찌 보면 박 차장 1인에게 과도하게 힘이 쏠린 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박 차장은 청와대에서 기획조정비서관으로서 ‘울트라 파워’를 행사하면서 여러 가지 뒷말을 낳았고 그것을 정 의원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권력 갈등으로 비화됐던 것이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청와대에서는 ‘박영준을 피하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박 비서관이 인사와 정보를 관리하는 최대 실세로 급부상하면서 그와 마주치면 좋을 게 없다면서 아예 도망치듯 피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때 박 비서관은 청와대와 정부의 인사 모든 점을 전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가 10년 동안 모신 이상득 의원에게 그 내용이 ‘직보’되고 있다는 추측도 이어졌다. 박 비서관은 국정원 등의 정보기관에서 올라오는 정보도 모두 취합, 관리하기 때문에 더욱 파워가 세졌다. 이에 장관직에 욕심이 있는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은 그에게 줄을 대기 위해 기자들에게 수소문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었다. 이번에 박 차장이 복귀하게 되면 그가 권력을 다시 휘두르면서 예전의 갈등을 재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박 차장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박 차장 본인이 ‘한승수 국무총리를 모시고 심부름 역할을 하는 데 충실하겠다’라고 밝혔듯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큰 싸움으로 배운 것이 많기 때문에 당시의 분란을 또 다시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의 여권 권력 구도는 ‘이명박-이상득 투톱 체제’다. 그 두 권력 사이에서 유일하게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박영준 국무차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존재 가치는 여권의 실질적인 ‘넘버 투’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런 힘의 편중 때문에 여권 갈등의 장본인이 되었던 그가, 이번에 화려하게 복귀하게 된다는 것은 여권의 제2 권력 투쟁 촉발을 의미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가장 극명하게 적용되는 곳이 바로 권력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