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7

윤석열의 벼랑끝 전술 국힘당 껴안고 동반 자살한다.

- 갤럽조사는 시류를 반영하고 - 리얼미터는 속마음을 반영한다.  여론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는 갤럽이 좋고 선거를 앞두고 판세분석을 하는데는 리얼미터가 좋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국힘당의 일주일 천하는 곧바로 종결되었다.  예상보다 파고가 높았지만 출렁일 줄은 알았다. 탄핵심판에서 내란죄 다툼을 빼는 것은 실무자 차원에서 일어난 기술적인 문제인데 보수들이 잠시 헷갈린 것이다. 왜냐하면 극우들이 흥분해 있기 때문이다. 흥분한 극우는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윤석열을 잡아쳐 넣은 것은 당시에는 극우들이 예상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망외의 성과다. 박근혜는 파면되고 난 다음 구속되었으니까 국민은 윤석열도 3월이나 되어서 구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윤석열이 내란선동을 지속한 것이다..

openjournal정치 2025.01.24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하지만 사고뭉치 대통령 8명 전부 보수 국힘당이다.

대한민국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하지만 사고뭉치 대통령 8명 전부 보수 국힘당 세력이다.  대통령제가 문제가 되는 것은 보수 국힘당이 집권했을 때 일뿐이다. 이 정도 반복해서 당하면 스스로 보수라 생각하는 국민들도 이제 정신 차릴 때가 되었지 않았나 하지만 역시나 정신 못 차리는 갱상도 자민련으로 전락할 국힘당 퇴출되고, 민주당이 보수정당 되고, 조국당이 진보정당 역할 맡을 듯하다.  이승만 :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탄핵. 두 번 짤린게 기록.박정희 : 심수봉 불러 놀다가 김재규에게 총살전두환 ; 내란죄로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노태우 : 내란죄 1심 징역 22년, 2심 17년.김영삼 : IMF 나락. 이후 10년간 정권 뺏김.이명박 : 징역 17년.박근혜 : 탄핵. 징역 20년.윤석열 : 친위 쿠데타 실..

openjournal정치 2025.01.16

박정희와 박정희 신자들의 껍딱 벗겨내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박정희는 죽어서 신화를 남겼나 봅니다. 잊을만 하면 매스컴을 통해 역대 대통령들 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을 받는 인물로 되살아나곤하는 박정희를 생각하면, 또 그 때의 국민들이란 게 다름 아닌 노동자나 농민들을 포함한 서민들임을 떠 올리면,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을 받는다"는 말이 내포하는 모순까지 함께 떠 올라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정희로 인해 권력(그것이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국가권력이든 간에)을 얻게 된 부류야 그렇다 치고 그런 권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수의 서민들 즉 국민들이 그를 추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장은 "박정희가 못사는 우리 국민들을 잘 살게 해 주었다"는 것..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의 경제성장에 대해 말해볼까?

2차 대전 기간 동안 미국은 경제적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미국 대통령이 잘 해서인가? 아니다. 유럽에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 막대한 전쟁물자를 생산해 유럽에 넘기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는 풀가동 됐고 전쟁이 끝난 후엔 세계 금의 60%가 미국에 모여 있었다. 그 금의 힘을 바탕으로 미국은 IMF, 세계은행, GATT 등 전후체제를 주도하면서 달러를 지구촌의 기축통화로 만들었다. 만약 2차 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의 후손이나 정치적 후계자들이 지금 이 모든 부흥의 공이 자신들이 추종하는 그때의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한다면? 2차 대전 후 유럽경제 역시 화려하게 부흥했다. 그 이유는? 우린 모두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미국이 마샬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약 20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유럽에 돈을 뿌렸기 때문이다...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진실

부정부패, 독재원흉 이승만은 그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하여 반민족 친일부역세력 청산을 중지한 채 1928년 일제가 독립투사 탄압 목적으로 제정된 일제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 종신집권을 꿈꾸던 반민족 친일부역 화신 박정희는 반역쿠데타를 엄폐시키기 위하여 반공법을 제정, 반공독재시대를 만들었다. 독재자들은 대게 독재정치를 변명하기 위하여 그 실적을 자국민과 해외에 과시하려고 연한을 결정한다. 그것은 대게 5년으로 하였다. 박정권은 독재가 자신들을 위한 독재가 아니라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한 선의의 독재라는 것을 보이려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주창한다. 소련의 제1차 5개년 계획(1928-33)을 본딴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본성은..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와 경제개발

1960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는 한국 역사를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그의 독재는 분명한 범죄이고 박정희는 분명 존경은 하기 힘든 인물이지만 경제개발을 이룬 사람이기도 하다. 장면 정권은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려 했다. 김일성 역시 개발을 시작했다. 그 때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장면의 정책, 김일성의 정책, 메이지 유신을 모두 참조해 경제개발에 착수했다. 박정희는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다. 우선 박정희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변수가 된 사람은 김일성과 박정희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는 군인이었고 독재자였다. 그리고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수하르토, 후지모리와 상당히 유사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장면, 김대중 씨 같은 민주 투사 출신 대..

박정희 고찰 2008.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