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경제 8

박정희가 남긴 유산

졸속이라니? 이거 머냐? 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졸속이라는 말은 지금 흔히 사용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병법에서 유래한 개념입니다. 夫鈍兵挫銳 屈力탄貨 則諸侯乘其弊而起, 雖有智者, 不能善其後矣. 故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 부둔병좌예 굴력탄화 즉제후승기폐이기, 수유지자, 불능선기후의. 고병문졸속, 미도교지구야. 군대가 둔해지고 사기가 꺾이고, 군대의 힘이 소진되고 재화는 파탄이 발생한다. 즉 다른 제후들이 그 폐단에 편승하여 일어나 공격하므로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그 후방의 일을 개선하기는 불가능하다. 고로 군대의 운용은 졸속으로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기교 있고 오래 끌어야 좋다는 말은 목도한 적이 없다. 《원문 손자병법》제2 (작전편) 손자병법에 나오는..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미화를 위한, 보편적 역사관 거부를 경계한다

한 진보경제사학자가 "한강의 기적 평가가 왜곡됐다"며 박정희 개발모델에 대한 진보학계의 부정적인 평가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는 10월 11일자에서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저서를 소개하는 식으로 문화면에 이 교수의 이런 주장을 기사화해 얼굴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했는데, 중진학자의 연구 성과의 논리적 주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일부 있어 단편적이지만 기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이념 배제하고 역사를 평가하라? 이 교수는 객관적인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볼 것을 주문하면서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임에도 국내 일각에서는 그것을 인정치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경제에 대해서까지 이처럼 ..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경제 신화

한국의 경제성장, 물론 박정희 때에 있었다. 대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시하는 북한의 김일성 때는 없었나. 미국의 적으로서 (어떤 사람들에게는)살인마 정도로 간주되기도 하는 소련의 스탈린도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일구어냈다. 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후진국가였던 소련이 미국에 앞서 우주선을 발사하게 될 정도로 경제력을 키웠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를 식민지배한 일본 제국주의도, 유대인 학살의 대명사 히틀러도, 이태리 파시스트인 무솔리니도 일정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6.25전쟁 중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구석기 시대로 돌아간(미군장교표현) 북한이, 100년은 지나야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을 뒤엎고 1970년쯤에는 다시 일어섰다. 그 업적에 대한 북한..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먹고 사는 문제 해결못했다”

“70년대 고도성장은 임금착취때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민주화를 늦췄을지 몰라도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았나”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박정희시대에 오히려 임금이 7.8% 포인트 하락했으며, 박정희 시대의 고도성장은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 때문이고, “1970년대에 임금이 오히려 상승했다”는 주장은 자료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정성진 경상대 교수는 지난달 31일자 교수신문을 통해 “진정한 박정희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국보위 특별법’이 공포된 70년대에 임금몫은 7.8% 포인트 감소했으며, 1971년과 1979년을 제외한 나머지 연도에 실질임금 상승률은 노동생산성 상승률보다 낮았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시대에 노동자들은 생산에 기여한 ..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경제개발의 허와 실

1) 경제개발계획 ○ 이른바 '박정권의 치적'이라는 경제성장문제에 대해서 그간 객관적이고 냉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 경제발전 주체해석 문제, 자본주의발전 구조의 평가문제, 경제적 부의 분배문제, 노동자의 지위와 환경문제 등 각 분야와 방면에서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음. ○ 박정희가 추진한 경제개발계획은 이미 민주당정부 시절에 추진되었음. * 여기에는 미국과 일본의 원조경제에서 차관경제로의 전환구도에 따른 것. * 차관제공국의 관심은 무엇보다 원리금과 이자의 상환이 있음. * 따라서 이를 효과적으로 갚기 위한 경제개발계획이 필요했던 것. * 60년대 경제개발계획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 * 결국, 경제개발계획은 한국정부의 구상과 정책의지에 따라 실현된 것이 아니..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경제 - 수출은 누구의 살길이었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의 명암… 내수 부진·인플레이션·소득 격차 등 부작용은 지금도 계속 1968년 2월 착공해 2년5개월 만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에 세워진 고속도로 준공기념비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나라 재원과 우리나라 기술과 우리나라 사람의 힘으로 세계 고속도로 건설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길’. 경부고속도로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의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이끈 축은 수출이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출 1위 기업은 반드시 도산” ‘수출만이 살길’이란 구호가 지배하던 그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매달 수출진흥확대회의에 각부 장관, 재계 대표, 은행장 등을 모아놓고 품목별·지역별 수출실적을 하나하나 챙기고 ..

박정희 고찰 2008.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