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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가운데)이 13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영남권 공천심사 명단을 발표한 뒤 공천심사위원인 임해규 의원(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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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공천 후폭풍'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에 또 다른 후유증이 예상된다. 이른바 '살생부 공천' 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지난 13일 현역의원 25명을 탈락시킨 영남권 공천심사결과 발표 이후 '친 박근혜계'를 중심으로 이번 공천을 사실상 청와대에서 원격 조정했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복수의 당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강재섭 대표,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 이방호 사무총장이 만나 '살생부'의 구체적 윤곽을 그렸고, 이후 공천심사 과정에서 이 사무총장이 직접 청와대와 전화통화를 하며 이를 확정 지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는 16일 이런 과정을 통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청와대 살생부'를 입수했다. 이 명단에 오른 26명중 19명이 공천에서 실제로 탈락했다. 아직 공천심사가 끝나지 않은 4곳을 제외하면 86%의 적중률이다. 명단에 오르고도 살아남은 의원은 단 3명뿐이다.
'살생부' 존재의 확인은 '청와대 개입설'을 더욱 증폭시킬 전망이다.
'청와대 살생부', 현역 의원 26명 생사 담겨... 적중률 86%
'청와대 살생부'에는 물갈이 대상인 현역 국회의원 26명의 이름이 담겨있다. '강남벨트'(서울 서초·강남·송파) 등 21곳의 공천심사를 앞둔 16일 오전까지 이 가운데 22명의 생존 여부가 결정 났다.
적중률은 86%. 살생부에 오르고도 생존한 의원은 김충환(서울 강동갑, 친이)·정희수(경북 영천, 친박)·허태열(부산 북·강서을, 친박) 세 명 뿐이다.
이른바 ‘청와대 살생부’ (공천 결정된 3명 제외)
‘청와대 살생부’ 중 실제 탈락 의원들 |
박성범(서울 중구, 친이) |
김태환(경북 구미을, 친박) |
권오을(경북 안동, 친이) |
김재원(군위·청송·의성, 친박) |
이상배(경북 상주, 친이) |
박종근(대구 달서갑, 친박) |
임인배(경북 김천, 친이) |
이해봉(대구 달서을, 친박) |
안택수(대구 북을, 친이) |
유기준(부산 서, 친박) |
권철현(부산 사상, 친이) |
엄호성(부산 사하갑, 친박) |
정형근(부산 북·강서 갑, 친이) |
김기춘(경남 거제, 친박) |
이재웅(부산 동래, 친이) |
이강두(산청·거창·함양, 친박) |
이성권(부산 진을, 친이) |
김명주(경남 통영·고성, 중립) |
김영덕(의령·함안·합천, 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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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심사 진행 중인 의원들 |
A(친이) |
C(친이) |
B(친이) |
D(중립) |
영남권이 대다수... '강남벨트' 의원 4명 공천 여부 주목
살생부 명단을 지역별로 분류해보면 대구·경북, 부산·경남 등 영남권 의원들이 대다수다. 26명 중 20명을 차지한다. 나머지 6명은 서울 강남권 4명 등 서울지역이다.
계파로 따지자면 '친이명박계'가 14명, '친박근혜계'가 10명, 중립이 2명이다. '친이'가 4명 더 많지만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친박'의 타격이 훨씬 크다.
지난 해 대선 경선 당시 기준으로 보면 의원 중 '친이' 성향은 70~80명, '친박' 성향은 30~40명이었다. '친박' 의원 1명의 낙천은 곧 '친이' 의원 2명과 맞먹는 셈이다.
실제 현재까지 공천 결과를 놓고 봐도 한나라당은 급속히 '이명박당'으로 바뀌고 있다.
공천이 마무리된 224곳의 내정자 중 친이 성향은 140명 안팎, 친박 성향은 40명 안팎으로 분석된다. 대선후보 경선 때 원외 당협위원장까지 포함해 친이계는 130~140곳, 친박계는 80~90곳이었다.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진 것이다.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의원들든 공포에 떤다. 높은 적중률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생사'가 갈리지 않은 강남권 의원 4명에게 눈길이 쏠린다. 친이계의 핵심인 A 의원을 포함해 친이 성향 3명, 중립 성향 1명이다.
'강남벨트'의 한 의원은 "안그래도 그런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으레 공천 때마다 떠도는 괴담이겠거니 생각한다"고 말했다.
살생부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다. 그는 "공천 때가 되면 일부 의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런 리스트를 만들어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며 "일종의 '공천 물타기', '낙천 물귀신 작전'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도 내심 불안한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 이 의원은 "(살생부의) 적중률이 어느 정도이더냐"며 "그러면 나도 (공천 가능성이) 간당간당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친박' "청와대에서 공천 배후조종했다... 살생부 존재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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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총선 영남권 공천심사에서 탈락한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최고위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실에서 탈당선언을 하던중,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있다. |
ⓒ 이종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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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측에선 '청와대 개입설'을 확신하고 있다.
김무성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탈당 선언 기자회견에서 "(청와대에서 공천심사를 지휘했다는)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다. 이번 공천은 안강민 위원장, 강재섭 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청와대가 조율해서 만든 명단대로 된 것"이라며 '청와대 살생부'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애초 이 명단에 김 최고위원의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13일 영남권 공천심사 과정에서 안 위원장이 박희태 의원의 낙천을 강하게 주장하자, 김 최고위원까지 '동반 탈락'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김 최고위원은 "어제(13일) 회의 현장에서 박 의원의 공천배제 주장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오자 청와대에서 '박희태를 반대하고 나오면 김무성을 같이 걸어라'라고 해 제가 탈락하게 된 것이라는 정확한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애초 청와대 쪽 주문은 '박희태를 살리라'는 것이었지만 이방호 사무총장이 '안 위원장이 강하게 반대한다'고 보고하자, 청와대 쪽의 태도가 점차 누그러지다 '김무성 의원과 함께'라는 조건으로 탈락을 승인했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다.
실제 이 사무총장은 공심위 회의 때 수시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 뒤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를 놓고 공심위 안팎에서는 이 사무총장이 심사가 난항에 빠질 때마다 청와대 쪽과 전화통화를 해 '밀지'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청와대 회동' 당사자들, 회동 사실 부인
한 '친박' 의원은 "(청와대 살생부의 존재를) 확신한다, 이번 공천은 전부 밖(청와대)에서 기획하고 확정한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수시로 공심위에 연락해 설득하고 압력하고 쪽지를 넣어 심사한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또한 그는 "소신과 원칙에 따라 이뤄져야 할 공천심사가 과거의 권위주의 시절 '밀지 공천' '밀실 공천' 수준으로 퇴보했다"며 "박근혜의 수족을 다르고 'MB당'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짙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 회동에 대해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최근 한달 새 청와대에 들어간 일이 없다"며 "(공천문제는) 청와대에 가서 논의할 사안도 아니고 논의할 것도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원론적인 주장을 내세우며 회동 가능성을 부인했다.
다만, 안강민 위원장은 <중앙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원래 대통령을 만났는지 여부를 확인해 주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청와대에 갔었는지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