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정의,폐악

한기총의 어이없는 천안함 재건조 모금 운동

이경희330 2010. 5. 25. 01:02

얼마 전 전북의 한 시청사 옆 예비군 기동대 건물에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합시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를 보도한 <노컷뉴스>(5월 18일 자) 기사에는 "때가 어느 때인데 전쟁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6·2 지방 선거를 앞두고 정국을 극단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시민과 인근 공무원들의 지적이 실렸다. 이에 대해 해당 기동대장은 "평화의 소중함과 자주국방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해 게재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말끝마다 '너희들이 6·25를 아냐'며 요즘 젊은 것들은 전쟁의 무서움과 참상을 모른다고 개탄하시는 분들이 이리도 전쟁, 보복을 운운하는가 씁쓸하게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사회책임'(대표 서경석)에서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 명의로 섬뜩한 메일이 왔다. "檄, 국민 규탄! 국민 대단합 촉구!-천안함 재건조 모금 결의 대회"라는 제목으로 온 메일에는, 이 대회 취지를 "천안함 폭침(爆沈)의 원인이 북한의 어뢰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저히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중략) 제일 먼저 할 일은 우리의 분노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일입니다. (중략)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에 김정일 추종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천안함의 재건조를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하 생략)"라고 밝히고 있다.

 

관련 내용을 검색해 보니 <뉴스앤조이>(5월 17일 자)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대표회장 이광선)가 천안함 재건조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나라사랑국민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고 보도된 것이 보였다. 이광선 목사는 "전국 기독교 연합회가 각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대회를 개최해 달라"고 주문했고, 서경석 목사는 이 운동 본부의 본부장으로 이런 대회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50여 개 도시에서 개최하겠다고 소개하고 있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다. 목사들이, 교회 이름으로 선거철만 되면 특정 정치 세력을 위해 '무슨 무슨 기도회', '무슨 무슨 대회'를 내걸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정부의 공식적 발표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도 여론몰이부터 준비하는 것이 타당한가?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고,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국회 차원의 조사도 지켜봐야 하고, 책임 여부도 가려야 하는 등 차분히 지켜보아야 할 때인데, 극우 정치 집단의 주장과 한 치의 차이도 없는 주장으로 국민을 선동하면서 '국민 대단합'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인가?

 

천안함 관련 모금이 '공동 모금회'를 통한 공식적 모금액만 350억 원에 이르고 비공식적 모금도 엄청난데, 침몰한 전투함까지 국민 모금으로 재건조하자는 발상이 정말 가당한 것인가? 아니, 그럼 훈련 중 추락한 헬기나 탱크는 왜 제작해 주지 않은가? 그럴 거면 국방비를 아예 교회가 담당하자고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런 일에 한국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한기총이 나서고, 목사와 교회가 나서는 것이 적절한 행동인가 하는 것이다. 정말 삶의 현장에서 고단하게 일하며 하나님께 드린 과부의 두 렙돈 같은 헌금이 이런 곳에 사용되는 것이 타당한가?

 

양심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라. 6월 2일 지방 선거가 없었다면 이런 일을 행했겠는가? 정말 순수한 의미의 국민 대단합과 국가 안보를 염려한 행사이고 모금이라면, 지방 선거가 끝나고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서경석 목사는 공명선거를 위해 '공명선거시민대책협의회'(공선협)를 만들고,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 또 한기총이 '공명선거기독교대책위원회'(공선기위)에 가입하도록 해 전국의 기독교 협의회를 통해 공명선거 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제 그 인맥과 역량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한다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목사가 교회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벌일 때 정말 이 일이 하나님의 나라에, 복음 전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거는 개인이나 단체가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목사가 교회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벌일 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나아가 그로 인해 교회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게 될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목사도, 그곳은 교회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들이 말하는 '국민 대단합'은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다. 국민 대단합이 필요하고, 천안함 건조가 필요하다고 해도, 서경석 목사와 한기총은 나서지 않아야 한다. 그동안 그렇게 정치적으로 편향된 행동들을 일삼아 왔는데, 어떻게 국민 대단합이 될 것이며, 천안함 재건조 모금이 순수하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정말 하려면 그냥 누구나 '그럴 것이다'라고 인정할 '북한 규탄 대회'만 하라.

 

목사들이, 그리고 한국교회가 정말 국민이 대단합하기를 원한다면 이럴 때일수록 조용히 기도하고 목사와 한국교회의 죄악을 통렬히 자복하고 회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