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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평양대극장 무대에 나부끼는 미 성조기와 북 인공기 26일 뉴욕필 공연이 열린 북한의 동평양대극장 무대 양쪽에 나부끼는 미국 성조기와 북한 인공기 (조선중앙TV촬영)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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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하늘에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울려 퍼졌다. 그것도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통해서….
미국 국가가 북한 땅에 울려 퍼진 것은 지난 1948년 이후 처음이다.
26일 오후 6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동평양 대극장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열었다.
1842년 창단된 뉴욕 필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이자 미국의 문화적 상징 가운데 하나다. 이런 뉴욕필이 아직도 '기술적 전쟁 상태'인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연주회를 여는 것도 의미 깊었지만 선택한 곡들도 민감하게 해석될 만한 것들이었다.
1500여 석의 동평양 대극장은 공연 시작 전부터 가득 찼고, 오후 6시 북한 사회자가 "뉴욕교향악단이 처음으로 평양에서 공연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는 두 나라 예술교류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오후 6시 5분 이번 공연의 지휘자 로린 마젤이 무대에 등장했고, 곧바로 뉴욕필은 북한의 국가인 '애국가'를 연주했다. 북한의 '애국가'는 박세영이 작사하고 김원균이 작곡한 것이다.
북한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뉴욕필은 곧바로 미국의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했다. 김일성 배지를 단 북한 주민들은 그들이 평소 '철천지 원쑤'로 교육받고 인식했던 미국의 국가를 엄숙하고 경건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양국 국가 연주 때 모두 기립
양국 국가를 연주하는 동안 동평양 대극장 안의 북한 주민들과 미국인들은 모두 기립해서 상대방 국가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현재 북한의 핵시설 신고 문제로 미국과 신경전이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뉴욕필이 연주 곡목으로 양국 국가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타협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 뉴욕필은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제3막 전주곡을 시작했다. 이 곡이 끝난 뒤 로린 마젤은 마이크를 잡고 관중에게 다음 연주할 곡을 설명했다. 드보르자크의 유명한 '신세계 교향곡'이었다.
로린 마젤은 "뉴욕필은 이렇게 훌륭한 극장에서 공연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뉴욕필은 19세기 말 체코의 한 작곡가에게 새로운 교향곡을 지어달라고 했다, 드보르자크는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을 달았다"며 "이 교향곡에는 전통적인 미국 민속 음악의 선율이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로린 마젤은 어눌한 한국어로 "좋은 시간 되세요"라고 인사했다.
'신세계 교향곡'은 드보르자크가 1892년 미국 뉴욕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미국에 체류할 때 작곡했고 1893년 뉴욕필이 초연했다. '신세계 교향곡'은 미국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한 곡인데다 '신세계' 자체가 미국을 의미한다.
저녁 7시께 '신세계 교향곡' 전곡의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2분이 넘게 이어졌다. 관중석 일부에서는 "와"하는 환호성까지 나왔다.
로린 마젤은 다음 곡인 거쉬인의 '파리의 미국인'을 소개했다.
그는 "그는 이 곡은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거쉬인인 80여 년 전 창작한 것으로 노래 제목은 파리의 미국인"이라며 "앞으로 언젠가는 '평양의 미국인'이라는 곡도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관중석에서는 다시 폭소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관중의 열띤 반응을 이끌어냈던 뉴욕필은 저녁 7시 43분 '아리랑'을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을 끝냈다. 마지막 연주한 '아리랑'은 북한의 대표적 작곡가 최성환이 작곡한 것이다.
관중은 아쉬운 듯 손을 흔들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10분 넘게 계속 보냈다. 이 때문에 지휘자인 로린 마젤이 3번이나 다시 무대에 서서 관중의 환호에 감사의 뜻을 전해야 했다.
처음에는 약간 긴장된 표정이었던 북한 관객들은 맨 마지막 연주가 끝났을 때는 환한 웃음을 짓고 손을 힘차게 흔드는 등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이날 공연 조선중앙TV가 생중계
이날 공연은 15개국에 방송된다. 남한은 MBC에 의해, 북한은 조선중앙TV에 의해 생중계됐으며 미국과 유럽은 시차 때문에 녹화로 전파를 탄다.
특히 북한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이번 공연을 생중계한 것은 의미가 깊다. 극도로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 주민들에게 아직 최고의 적대국가인 미국의 문화 상징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그만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정도로 개방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는 25일 "뉴욕필의 연주 음악 자체가 평양 주재 미국 대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린 마젤은 공연에 앞서 한 기자로부터 "이번 공연이 한반도의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통상부의 조희용 대변인도 뉴욕필 공연과 관련 "북한의 다른 국가와의 문화교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북·미 간에 상호 이해 및 관계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이 내년에 평양 공연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 대변인은 "구체적인 사항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면서 "관련 동향이 있으면 파악해서 지원할 수 있는 바가 있으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