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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 평양공연: 美北의 야누스적 모습

이경희330 2008. 2. 29. 01:52
교활한 김정일과 더 교활한 유태세력의 불륜적 평양 동침
 
조영환 편집인
 
2월 26일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은 북한의 야누스적 두 얼굴과 미국의 야누스적 두 얼굴을 온 세상의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인민을 위해서 지배자가 없다는 북한 공산집단과 인권을 위해서 전쟁을 자행하던 미국의 세계지배세력은 그 야만적 모습을 뉴욕필하모닉의 화려한 평양공연 속에 드러냈다. 자유와 인권을 전세계에 주창하면서 아랍국가들을 차례로 폭격하고 김정일에게 '환희의 찬가'를 연주하는 미국(유태세력)의 야누스적 얼굴을 우리는 구경했다. 그리고 뉴욕필의 환상적 공연을 전세계에 생방송하면서도 평양에서 개최될 축구경기에 남한의 애국가와 태극기를 불허겠다고 우기는 북한의 야누스적 얼굴도 확인했다. 가장 선한 구호를 외치면서 가장 악한 행동을 하던 미국과 북한이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으로 불륜의 키스를 했다. 미국의 언론들은 여우 같은 김정일에게 호랑이 같은 미국이 '죽음의 키스'를 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물론 몰락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김정일 체제에 환상적인 교향악을 울려주는 뉴욕필하모닉의 얄미우리만큼 교활하고, 악마처럼 야비하고,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적 살해의식과 적개심을 필자가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은 굶어 죽고 얼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과 북핵위협에 분노한 남한 국민들에게 너무도 잔인하게 무시한 악마적 공연이었다. 악기를 연주하는 광대들이 무슨 정치의식이 있겠냐마는, 그러나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은 너무도 정치적으로 마성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뉴욕필하모닉과 같은 철저한 '정치적 동물들' 때문에 음악인들이 의식없는 딴따라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과 미국의 악마적 통치세력들이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에 끼워넣은 악마적인 정치적 의도는 정상적인 이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들을 분노시키기에 충분하다.

 미국과 북한은 어떤 말로 합리화하고 변명을 해도 뉴욕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비난을 모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국을 철천지 원수로 악마시하는 선전선동하면서 형성된 적대적 의존관계를 이용하여 김일성-김정일 전체주의체제를 유지하던 김정일이 인공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내걸고 미국을 환영했다. 뉴욕필하모닉은 김정일을 찬양하고 평양시민들이 미국을 환영하는 듯한 '정치선동의 생쇼'를 연출한 것이다. 뉴욕필하모닉의 아름다운 연주는 정치사회적으로 불협화음의 표본이었다. 적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미국과 북한의 마성적 지배세력들은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천적과도 동침하겠다'는 불륜적 의식과 추악한 모습을 전세계에 보인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목표로 한 미국은 야윈 여우의 교활한 몸놀림을 멍하게 처다보는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었다. 여우처럼 교활한 북한 김정일 앞에서 교향곡이나 연주하는 늙은 호랑이 신세로 미국은 전락되었다. 이슬람국가들을 돌아가면서 침공한 유태세력이 사실상 통치하는 미국은 군사적 폭력과 금융적 공작 이외의 수단으로 국제사회를 움직일 능력을 상실한 국제사회의 '이빨 빠진 호랑이'다. 몰락하는 북한의 핵무기를 군사력으로 제거할 수 없는 미국은 국제사회의 경찰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미국은 호랑이의 체면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불여우'인 김정일에게 죽음의 키스를 구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약화와 더불어, 반미선동으로 북한 주민들을 기만하며 생존해온 김정일도 더 이상 반미선동으로 북한 주민들을 속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여우 같은 김정일은 호랑이 같은 미국과 목숨을 건 죽음의 키스를 하게 되는 것이다.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은 궁지에 몰린 미국의 체면유지용 그리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북한의 목숨부지용 광란극이다.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에는 음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고상한 가치인 정의나 사랑, 평등과 자유, 그리고 인권이나 인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과 북한의 지배자들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모든 갈등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지만, 정의가 없는 화해는 야합으로서 새로운 갈등과 대결의 씨앗일 뿐이다. 정의의 기준을 초월해야만 진정한 타협과 화해는 가능하다. 뉴욕필하모닉이 평양에서 연주한 화려한 '신세계'나 '결혼행진곡'은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불의한 미국과 북한의 처량한 장송곡에 불과할 수도 있다. 뉴욕필하모닉의 아름다운 평양공연은, 정치윤리적으로 보면, 이성과 양심을 잃은 미국과 북한의 지배세력이 연출한 추악한 불협화음에 불과하다.
 
그런 해괴한 평양공연에 정상적인 정신상태를 가진 한국인들은 전혀 감동하지 않는데, 세계지배세력과 북한 김정일에게 충견이 된 숭미-숭북세력들만이 대대적으로 방송을 통하여 조작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어느 정상적인 한국인들이 평양의 공연장 밖에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외면하고 뉴욕필하모닉의 화려한 평양공연에 박수를 보내겠는가? 뉴욕필하모닉이 평양에서 독재자 김정일을 찬양하는 공연에 어느 정상적인 미국인들이 박수를 치겠는가?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을 찬양한 방송들은 북한의 어용방송과 친북성향이 농후해진 남한의 KBS나 MBC이고, 유태세력이 장악한 미국의 언론매체들만이 아니겠는가? 미국과 북한의 야뉴스적 얼굴을 즐기는 악마적 언론매체들이 해괴한 핑계를 대면서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을 찬양하고 있다.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믿을 수 없는 기쁨·슬픔 느껴" NYT   "김정일에 경의표하 듯 환호" WSJ

 "청중의 눈물과 5분이 넘는 기립 박수, 김정일에게나 했을 법한 뜨거운 성원….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미국 언론들은 뉴욕 필의 26일 평양 공연이 북한에서 일으킨 감동을 생생히 전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백악관측이 "콘서트일 뿐 외교적 쿠데타는 아니다"며 차분한 반응을 보인 것과는 온도 차이가 났다. 뉴욕타임스는 뉴욕 필 단원들의 말을 인용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연대감이 있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연을 지휘한 로린 마젤(Maazel)의 음악적 그리고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한 뒤, "우리가 (북한 개방을 위한) 작은 문을 여는 데 기여했을 수 있다"는 마젤의 소감을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뜨거웠던 공연장 안과 달리 밖은 추웠다"면서 "청중들이 공연이 끝난 뒤 삭막한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미국의 시시 주간지 뉴스위크는 "전날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취임식에 참석했던 윌리엄 페리(Perry) 전 미 국방장관과 도널드 그레그(Gregg) 전 주한 미 대사가 그 자리에서 북한 당국의 허가를 얻어 승용차로 방북한 뒤 평양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 역시 공연 못지않게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에서 "이번 공연이 북한의 핵 개발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가려서는 안 된다"며 "북한 주민의 비참한 현실을 고려하면 뉴욕 필이 거슈윈(Gershwin)의 '파리의 아메리카인' 대신 흑인들의 고단한 삶을 노래한 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에 삽입된 '나는 없는 것이 많다(I Got Plenty o'Nuttin)'를 연주하는 편이 더 적절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민구 조선일보 기자: roadrunner@chosun.com]

 
 [특파원 칼럼] 평양의 두 얼굴 (조선일보 김기훈 특파원)

 뉴욕 필하모닉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평양에는 서울의 1970~80년대를 연상시키는 가게들이 많았다. '과일남새 상점' '칠성문 미용실' '짜장면집' '종로국수집' '텔레비죤 수리' '신발수리' 간판이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렸다. 도로는 반듯했고, 건물들은 낡고 칠이 많이 벗겨지긴 했지만 그래도 깔끔한 편이었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소박하게 보였다. 인민대학습당 근처의 인도에서는 솜바지와 솜외투를 두툼하게 입은 40대 부부가 자전거 뒤에 쌀부대를 실은 채 말다툼을 하고, 그 옆에 가방을 멘 초등학생 2명이 장난을 치며 걸어갔다. 뉴욕 필 단원들은 '동토(凍土)의 왕국'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이 신기한 듯 버스 차창에 코를 박았다. 보도진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북한은 외국인들의 동선(動線)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듯했다. 고려 호텔 정문에는 30대 여자 청소부가 녹색 스커트의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물걸레질을 했다. 호텔과 공연장, 식당에는 붉은색, 옥색, 흰색, 노란색의 멋진 꽃무늬 한복을 차려 입은 여성 안내인들이 친절하고 다정한 말투로 '평양의 아메리카인'을 맞았다.

하지만 동선을 조금만 벗어나 멀리 바라보면 사정은 달랐다. 낡은 솜바지와 외투를 푹 눌러쓴 사람들의 얼굴은 검고 바싹 말랐다. 넓은 도로는 텅텅 비어 있고, 허가받고 운행된다는 택시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모든 교차로의 신호등은 전력 부족으로 불이 아예 꺼져 있고, 교통순경이 대신 수신호로 차량을 통제한다.

평양을 떠나는 비행기가 순안공항을 날아 오르자 저 아래에 흙먼지 펄펄 나는 도로와 폐허 직전의 주택단지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틀 전 인민문화궁전의 환영만찬에 등장한 '룡성맥주' '들쭉술' '인삼술' 등 성찬과, 만수대 예술극장의 화려한 옥류금, 농악, 물동이춤에 대한 추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비행기가 서해를 거쳐 인천 공항에 접근하자 지상에 빨간, 파란 지붕이 나타난다. 고층 빌딩과 잘 정돈된 도로, 줄잇는 차량들…. 남한의 항공사진은 잿빛 지붕투성이의 북한과 너무나 달랐다. 30대 미국 사진기자가 "여기도 '코리아'가 맞냐"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평양에서처럼 또다시 셔터를 눌러댄다.

이번 방북단 가운데 가장 마음 고생이 심한 사람들은 분단된 조국의 참혹한 현실을 체험한 뉴욕 필의 한국계 단원들인 것 같았다. 뉴욕필 부악장인 김미경씨는 "아리랑을 연주할 때에 눈물이 났다"고 동포애를 표시하면서도, "(평양의) 다음 세대에는 더 (경제)상황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덧붙였다.

남북한은 왜 이렇게 큰 격차가 벌어졌을까. 아시아 전문가인 미국 방송사의 B 기자는 "지도층이 미래를 향한 비전을 갖고 개방을 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평양 주민들은 "우리가 못사는 것은 미국이 경제봉쇄를 하기 때문"이라고 '외세탓'을 굳게 믿고 있었다.

뉴욕 필의 음악은 얼었던 평양 시민들의 마음을 상당히 녹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우호적인 분위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예술이 아니라 정치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될 것이 분명하다.

뉴욕 필이 평양을 떠나는 날 '로동신문' 톱기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근 교체된 쿠바 지도부에 축전을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의 분위기가 바뀌어 세계 각국의 축전을 받게 될 날은 언제일까. [김기훈 뉴욕 특파원 k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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