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대세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이명박 후보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BBK 수사 결과 발표가 결과적으로 이 후보에게 면죄부가 됐고 정몽준 의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등 굵직한 정치인들의 지지선언이 이어지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됐다. 반대로 다른 유력후보들인 정동영, 이회창 등은 지지율이 쉽사리 오르지 않고 있다. 정동영 후보는 소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가 흐지부지 되면서 마의 20%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BBK 사건으로 모여들었던 지지표가 다시 이명박 후보 쪽으로 회귀하면서 지지율이 10% 초반까지 떨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서는 이미 “상황은 끝난 것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범여권에서도 일부 포착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대선보다 오히려 내년 총선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까지 찾아 볼 수 있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거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분위기다. 오히려 압승론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지사 = 박혁진 기자>
검찰의 BBK 관련 수사 발표 이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다시 40%를 넘어섰다. 한동안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35% 밑으로 떨어지면 그 때는 한 방에 갈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지만 ‘언제 그런 소리가 있었기나 했냐’는 식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회창 후보 캠프로 옮겨갈 것을 고민하던 일부 당내 의원들도 생각을 접었다. 굳이 무모한 도전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여론조사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45%를 전후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50%를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압승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후보도 이런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한 지지유세에서 “1987년 직선제 이후 처음으로 동서를 가로질러 국민 과반수 이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일단 당선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력 인사들의 잇따른 지지선언도 이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몽준 의원(현대중공업 회장), 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정 의원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가 막판에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 후보를 도운 장본인이다. 그런 정 후보가 이제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
JP “昌 이름 부르기도 싫어”
김종필 전 총재의 이 후보 지지는 더욱 노골적이다. 충청권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김 전 총재는 이회창 후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면서 실질적인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전 총재는 최근 한 사석에서 이회창 후보에 대해 “당적을 이탈하면서 무슨 요행을 바라는지 모르지만 심하게 개인 공격까지 하고 나왔던 사람”이라며 “태도를 결정하고 들어가든지, 협력하든지 해야 한다. 입으로 민주주의 하는데 민주주의 그거 아니다. 상대방이 정당한 이유가 생기면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맹비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이회창 후보에 대해 “이름 부르기 싫어 이름은 안 부른다”까지 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워낙 굳건하다 보니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후보간의 연대설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鄭·昌은 총선모드(?)
이와는 반대로 정동영 후보 진영과 이회창 후보 진영은 MB와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에 절망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 후보는 전통적인 지지층 결집으로 인해 지지율이 소폭 상승해 일부 조사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2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 지지율의 두 배를 얻어도 이명박 후보를 제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마지막 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문국현,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는 물 건너 가버렸다. 창조한국당의 문 후보가 단일화 시점을 최대한 주장하고 나서면서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단일화를 하자는 정 후보 측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선은 포기하고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신당 측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며 “오히려 내년 총선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총선모드로 돌입한 여당 의원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선 상황보다는 대선 이후 당내 지분 경쟁을 미리 예상하고 어디에 스탠스(중심)를 둘 것인지 고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은 현재 여권 내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회창 후보 측의 고민은 더욱 심각하다. 이 후보는 대선 이후에 당을 창당해 내년 총선에 대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것도 대선에서 어느 정도 득표율이 뒷받침 됐을 때 가능한 얘기기 때문이다. 한 때 20%를 넘어섰던 이 후보의 지지율은 현재 10%를 초반에서 중반을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하지만 10%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적지 않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회창 후보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아 이 후보를 낙마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클린정치 위원장은 사석에서 “이회창 후보가 대선잔금에 대해 변명할 수 없는 객관적인 팩트(사실)를 갖고 있다”고 말하며 이회창 후보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후보는 정당 창당 등을 내세워 반전을 꾀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는 친노 진영으로 분류됐던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정계개편 시나리오
한편, 내년 총선과 관련한 시나리오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공천은 곧 금배지’라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압승론을 주장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선에서 50%가 넘는 득표율로 정국 장악권을 쥔 후 내년 총선을 준비한다는 것. 특히 당내 세력이 약한 이명박 후보는 대선 득표율을 무기 삼아 당내 기반도 다진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의원들은 내년에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당내에서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중에는 캠프에서 일하지만 틈나는 대로 지역에 내려가 지역구를 챙기는 ‘투잡’의원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당내 관계자의 귀뜸이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 의원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젊은 층에서도 적지 않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다 세계 1위 조선 업체인 현대중공업 회장을 CEO이기도 하다. 지난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막판에 지지를 철회하면서 오히려 노 후보를 도와준 모양새가 됐다. 특히 이 후보가 정몽준 후보의 아버지인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이 대선에 나설 당시 정 회장의 정치 입문 권유를 거절하고 민자당에 입사하면서 현대가와는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당시 정 회장은 이 후보에 대해 상당히 분노했다는 후문이다. 그런 이 후보를 정 회장의 아들인 정 의원이 지지하고 나선 것. 정치권에서는 일단 정 후보가 내년 대선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감을 두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미 정 의원은 대권에 도전할 정도로 정치 욕심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당시 그는 노 후보에 밀려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 내부에서 입지를 굳혀 다음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정 의원은 이 후보 지원 유세에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때문에 박근혜전 대표 측에서도 정 의원의 행보를 적지 않게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추측은 정 의원이 가지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현대건설을 두고 현정은 회장(고 정몽헌 회장의 아내, 정의원과는 시숙) 현대그룹과 치열한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측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꾸준히 지분을 매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그룹도 현대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현대건설은 산업은행 등의 지분이 많아 사실상의 정부 소유로 정권의 향배에 따라 얼마든지 주인을 달리 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이에따라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현대그룹의 경영권 문제가 또 다시 들썩거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