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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들, 한국의 미래가 달린 거 정말 아세요?"

이경희330 2009. 1. 17. 12:53

"언론들이 이래 가지고선 우리나라 곧 망해요!"

지난 15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성난 음성이 강당 안에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이날 이곳에서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2009년 정기 총회가 열렸다. 대교협은 전국 200개 대학이 회원인 비중 있는 단체다. 이날 총회에는 160여개 대학 총장이 참석해 자리를 빼곡히 채웠다.

회의장 한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는 총회를 지켜보러 온 수십 명의 기자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교협은 지난해 6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2010년 이후 대학 입학전형 업무를 전격적으로 이관받았다. 국내 초·중·고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 입학전형이 이제 대교협의 손에 달리게 된 것이다.

2009년 사업을 논의하는 이날 총회에 언론의 이목이 쏠린 건 당연했다. 지난해 내내 대교협은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한 이른바 '3불정책'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대교협은 이날 구체적인 입학전형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대교협 내 대학입학전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은 이날 총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9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서 2011학년도 입학전형을 다각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공감대가 형성되면 오는 6월에 최종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대학 자율화, 책무성, 공교육 정상화, 학부모 사교육비 부담 최소화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말을 아끼는 이배용 총장을 비롯한 대교협 관계자들에게 기자들은 질문을 이어갔다. 결국 대교협의 한 관계자가 "전체를 다뤄야지 왜 부분만 보느냐"며 언론이 이래선 안 된다고 기자들에게 다그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어쩌면 그 관계자의 말이 맞았다. 총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일부 언론은 '3불정책'의 향방을 놓고 자신의 입맛대로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총회 전체를 보면 국내 대학들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기는 커녕 불안만 가중될 뿐이었다.

돈 때문에 되고, 돈 때문에 안 된다는 대학들

이날 8개 대교협 위원회의 주요 사업 계획을 보고하는 행사 제목은 '대학의 자율화와 사회적 책무성'이었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기도 전부터 '대학 자율화'를 대학들에게 선물로 내놓았고, 이른바 명문대를 비롯한 대부분 대학 총장은 크게 환영했다. 이날 행사에서 '책무성'을 강조한 것도 대학 자율화가 이윤을 추구하고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는 사회적 시선을 다분히 의식한 듯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거창한 제목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법학전문대학원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 이기수 총장은 보고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로스쿨 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교과부에 대해) 강력한 투쟁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 이 상태로는 대학에 엄청난 적자를 안긴다."

현재 로스쿨 정원으로는 경영이 어려우니 정원을 3000명까지는 늘려야 한다는 기존 주장의 반복이었다. 이기수 총장은 "자격증을 많이 주면 문제가 된다고 하지만, 일단 자격증을 주고 난 뒤에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며 "그건 교과부와 대학이 걱정할 게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이강평 서울기독대 총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학법대책위원회의 발표도 기존 사립대의 입장과 달라진 게 없었다. 이들은 사학법이 "통제 중심의 사학 감독 체제를 갖고 있다"며 이사회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현행 사학법이 사학의 자율성보다 국·공립학교와 동일한 공공성을 강조하면서도 재정과 지원에서는 차별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총장들은 수익사업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 총장이 이날 특별 강연을 한 안병만 교과부 장관에게 "학교가 할 수 있는 사업을 가능한한 허용해주고, 특례 규정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총장의 CEO로서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은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처럼 이날 모든 논의는 "대학은 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총회장 밖에서 "대교협은 등록금 동결로 자신의 책무를 다한 듯이 하고, 등록금 상한제 등을 반대만 해왔다"며 "정말 대교협이 '사회적 책무성'을 생각한다면, 이번 총회에서 등록금 인하를 결정해야 한다"고 외친 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총회가 끝난 뒤 한 기자가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면서 또 더 많은 자율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모순 아닌가"라고 지적한 것은 아마 이날 총회를 지켜본 이라면 누구나 든 의문이었을 것이다.

'무책임' 비판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날 대교협에서 나온 주장은 대학이 개별 회원으로 가입하고 매년 수백~수천 만원씩의 회비를 내는 조직의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사학법 폐지와 로스쿨 정원 확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건 어쩌면 이익단체라는 대교협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대교협을 잘 알면서도 '자율'이라는 명목 아래 입학전형을 떠맡겼다는 데에 있다. 대교협은 아직 2011학년도 이후 입학전형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대교협 회장을 맡고 있는 서강대 손병두 총장을 필두로 대학 자율화 과정에서 3불 정책이 사실상 무의미해질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이미 한국 사회가 겪은 바 있는 본고사와 고교 등급제의 폐해를 두고 "일단 대학 자율에 맡기면 된다"는 식의 입장은 '무책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록 모든 대학이 3불 정책 폐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힘이 센 몇몇 대학의 논리가 대교협의 입장을 좌우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교협은 지난해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던 고려대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입장만 밝혀 비난을 면치 못했다.

교과부 역시 스스로도 입학전형 전체에 적용되기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대학입학사정관제' 정도를 궁색하게 대교협에 '대안'으로 들이밀 뿐이다. 몇몇 언론은 이미 3불 정책 폐지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대교협을 압박하고 있다. 대교협이 학벌주의와 사교육에 덕을 보는 대학과 기득권의 요구를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는 교과부의 논리로 막을 수 있을까.

이날 총장들은 오찬 자리에서 사회자의 지시에 맞춰 옆에 앉은 총장들에게 서로 "총장님의 어깨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라며 웃으며 인사했다. 대교협 관계자의 말처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막강하다. 그러나 대교협의 선택은 우리나라 전체 교육을 좌우한다. 불안한 심정으로 6월 대교협의 발표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강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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