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2일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계속돼온 기독교복음선교회(이하 선교회) 총재 정명석 씨(64)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렸다.
여신도 성폭행 등의 혐의로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국내로 후송됐던 정 씨는 지난해 8월 12일 1심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 항소했었다. 1심의 유죄판결이 부담스러웠던지 정 씨는 항소심을 앞두고 ‘삼성 특검’으로 유명한 조준웅 변호사 등을 새로 영입,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일요신문> 858호 참고).
약 3개월간 이어진 항소심 재판은 검사와 정 씨 변호인단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는데 공판만 무려 10차례나 이어졌고 출석한 증인도 14명이나 됐다. 1심 때보다 더 치열했다는 것이 공판을 지켜본 사람들의 소감이다. 항소심 과정에서 빚어진 갖가지 해프닝과 뒷얘기들을 공판 참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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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태권도 유단자인 20대 여성이 예순이 넘은 노인에게 당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동안 정 씨 측의 변호인단이 해온 대표적인 변론 중 하나다. 정 씨 측 변호인들은 여러 ‘정황상’ 항거불능 상태의 성폭행은 절대 이뤄질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피해자들이 반 선교회 단체인 엑소더스 측의 사주를 받아 허위사실을 진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사는 “피해자들은 정 씨를 절대적인 메시아로 믿는 상태였다”며 “(신체적인 폭력 등이 없었다 해도) 피해자들은 정 씨의 요구에 감히 불복할 수 없는 정신적 항거불능 상태에 처해 있었다”고 반박했다. 검사는 또 “성행위가 이뤄진 곳이 국내가 아닌 외국이었고 피해자들 주변에는 정 씨를 추종하는 신도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죽하면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선생님, 제발 저를 시험하지 마세요’라고 울먹였겠느냐”라고 강조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12일 재판은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결심공판인 만큼 이날 법정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선교회와 엑소더스 측 간에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매번 그래왔듯 법정은 시종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번 결심 공판에서 검사는 정 씨가 과거 스스로를 ‘메시아’로 칭했다는 사실과 정 씨가 주장했던 여러 교리 및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종합해 정 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피해자들과 과거 복음회에 몸담았던 많은 이들은 정 씨가 30개론, 설교, 부서모임 교육, 상록수 교육 등에서 수시로 자신을 ‘메시아’ 또는 ‘주님’으로 언급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엑소더스 측은 “정 씨는 자신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자신과의 성관계는 하늘의 비밀이라고 세뇌시켰다. 이러한 천기를 누설하면 생명록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등 큰 형벌을 받게 된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 씨는 이 같은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공판에서 정 씨의 변호사가 “진짜 그렇게 가르쳤다면 이는 엄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정 씨는 절대 그런 메시아가 아니고 순수하게 교리를 가르치는 목사다”라고 강조하자 정 씨는 “그럼요, 전 절대 메시아가 아니에요”라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다. 선교회 측 역시 “총재님은 결코 스스로 메시아라고 한 사실이 없으며 일부 신도들이 그렇게 불러왔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참관인들에 따르면 이날 정 씨는 목이 메이는 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정 씨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피해자들의 주장은 자신에 대한 음모라는 것. 중국 공안에게 한 진술에 대해서도 “고문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했고, “중국공안들은 한국에서 진술을 뒤집으면 다시 중국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정 씨가 검사와 판사에게 한 발언이다. 참관인들에 따르면 정 씨는 검사에게는 “어릴 때 내가 여동생과 싸우면 어머니는 여동생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동생 편을 들어주셨다. 고소자들 편에 서서 끝까지 그녀들을 돌봐줘서 고맙다”고 말했으며, 판사에게도 “1심에서는 판사님이 도통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너무 마음이 상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어주는 훌륭한 판사님을 만나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심공판까지 오면서 벌인 정 씨의 돌출행동도 화제가 되고 있다. 12월 4일 열린 8차 공판에서 정 씨는 가수 나훈아의 ‘바지 액션’을 연상케 하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A 씨는 정 씨가 홍콩 이민국 직원에게 포위당했을 때 찍은 동영상을 증거로 들고 나왔다. 문제의 동영상에는 정 씨가 방충망 안에서 나오기 직전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리를 구부리고 서있는 장면이 나온다.
증인 A 씨가 이 장면에 대해 “아마 여자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흥분된 상태라 바로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자 흥분한 정 씨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벗어볼까, 한번 볼래?” 하면서 바지춤에 손을 대고 증인에게 다가갔다는 것이다.
나흘 후인 12월 8일 열린 9차 공판에서는 정 씨가 쓰러진 적이 있다고 한다. 이날 법정에서 6시간 이상을 증언했다는 피해자 B 씨에 따르면 정 씨는 발작에 가까운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피해자 증언을 듣고 있던 정 씨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다가 앉아있던 의자에서 넘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 고통을 호소한 뒤 “나 좀 살려달라”며 법원 직원의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고 B 씨는 전했다.
결국 구급차가 출동했지만 그동안 진정됐음인지 잠시 후 ‘별 이상없다’는 소견이 판사에게 전해졌다. 혈중산소농도 등 모든 것이 정상이고 혈압만 조금 높은 110-150이었다는 것. 아무튼 정 씨는 다음날 12월 9일 보석을 신청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들이 받은 이중삼중의 증언 스트레스도 주목을 받았다. 수년 전의 악몽을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 것 자체도 피해자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5명이나 되는 정 씨 측 변호인단이 매번 돌아가면서 집중적인 질문세례를 퍼부었다는 것이다.
증인들은 “당시 상황을 두번 세번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기억력 테스트를 하듯 사소한 부분까지 물고 늘어질 땐 정말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피고 측 변호인이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사건 당시의 ‘침대 매트리스 커버 재질’까지 물어보는 데에는 정말 질려버렸다고 했다. 특히 일부 증인은 간혹 무리한 질문이 이어질 땐 정 씨의 변호인에게 “그렇게 해서라도 없는 사실을 조서에 남기려고 하느냐”며 따지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 씨의 항소심 법정. 이제 결심공판도 끝나고 정 씨는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과연 자신의 주장대로 모함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두 얼굴을 가진 종교지도자인가. 다음달에 있을 재판부의 판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