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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후회하는 일제고사…무슨 배짱인가"

이경희330 2009. 1. 17. 12:09

"교육학적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공권력이 해임과 파면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정치적 결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론적으로 따져봐도, 외국의 사례를 비교해 봐도 이런 경우는 없다고 했다. '정치적 판단'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언급됐다. 바로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7명의 초·중등교사를 파면·해임한 서울시교육청을 두고서였다.

16일 서울 경희대에서 '교육학자 회의' 주최로 '일제식 학력평가의 기능과 교사의 자율성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한 20여 명의 학자들은 일선 학교에서 응시 학생 숫자를 왜곡하거나 감독을 고의로 소홀하게 하는 등의 문제는 지난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일제고사가 부활하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사 해직'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식 이하의 결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제고사, 교육적 평가 앞서 공권력 얘기하게 됐다"

▲ 16일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20여 명의 교육학자는 일선 학교에서 응시 학생 숫자를 왜곡하거나 감독을 고의로 소홀하게 하는 등의 문제는 지난해 일제고사가 부활하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결과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교육학적 관점에서 학력평가를 표집형(일부 학생 대상)에서 전집형(전체 학생 대상)으로 바꿀 때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일제고사가 학생에게 어떤 영향 미치느냐를 따질 새도 없이 교사들이 해직됐다. 학자들이 평가에 대한 토론보다 공권력의 전횡을 먼저 얘기하게 됐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이번 사태를 두고 "교육학자로서도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동국대 조상식 교수도 "이번 사태에 대해 주변의 도덕적 엄숙주의자들조차 일종의 '행정과잉'이라 평가하고 있다"며 "교육청의 결정은 현 정부의 이념주의적 편가르기 전략에 충실히 따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성관 건국대 교수는 일제고사 실시와 성적 공개 이후 일선 학교들이 성적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쓰는 문제를 두고 "비교육적 정책, 또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교육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역효과 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향을 이번 일제고사 실행에서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문제는 이런 결과가 교육당국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고 따라서 그 책임은 교사나 교육행정가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 중 하나였다"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미국 역시 일제고사의 부작용이 지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2001년 이후 낙제학생방지법(NCLB)이 제정되면서 학업 성취도를 비교하고 확인하는 표준 시험이 전국적으로 치뤄졌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를 전면적으로 추진한 배경이기도 하다.

양 교수는 한 미국 학자의 연구를 소개하며 "미국 교사들이 주정부가 실시하는 책무성 시험문항을 중심으로 가르쳐 비슷한 내용의 시험문제가 나오면 통달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며 "학생들에게 책무성 시험이 진급이나 졸업에 중요하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따라서 최근 과제는 교육자들이 외부에서 일제고사 등을 통해 책무성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책무를 이행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교육자로서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NCLB 정책을 수정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준비 안 된 시험…부작용은 뻔하고 효과는 없다"

경희대 성열관 교수 역시 "그동안 NCLB에 의한 시험이 바람직한 교수 활동을 유도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연구가 많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그래도 토론, 프로젝트, 문제해결 학습이 그나마 많이 활용되고 있다"며 "교과 위주의 암기식, 주입식, 일제식 수업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이 제기된 한국은 상황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성열관 교수는 "시험을 볼 때는 그 결과에 따라 기초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에게 어떤 지원을 해줄지 충분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개입 전략과 재정 지원이 병행되지 않는한 시험은 스스로의 목적을 방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일제고사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 학생에 대한 지원이 강화될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이나 필요 예산이 발표된 것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적어도 기초 학력에 뒤쳐진 학생을 위한 인적·물적 지원 재정 확보를 먼저한 뒤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문제는 전국 학업성취도 검사가 모든 학교에서 일제식으로 실시되고 그 결과가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되는 것에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일선 학교는 경쟁에 몰입하게 될 것이고 좋은 평가에 의해 좋은 수업을 유도한다는 아이디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양은주 광주교대 교수는 해직당한 교사들이 일제고사 실시 전 학부모들에게 보냈던 담임 편지를 두고 교육학적으로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이것은 단위 교실 상황에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과정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하고 실행하는 교육전문가로서 교육적 가치에 대한 주체적이로 자율적인 판단을 지향한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또 이는 학교공동체에서 구성원의 신뢰와 의미소통, 참여의 가치를 지향한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가주의적 목적을 넘어 학교교육에서 실현해야 할 사회적 목적과 공적인 가치를 고민하는 사회적 지성인으로서 비판적 성찰과 실존적 선택을 추구한 행위로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학자들 "상황은 급박하다"

이날 토론회가 끝난 뒤에는 같은 자리에서 154명의 교육학자가 서명한 성명서가 발표됐다. 7명의 교사를 해임·파면한 서울시교육청의 징계 조치를 즉각 철회하고, 정부는 현대사 특강, 역사교과서 수정 강요 등 학교 현장을 황폐화하는 반교육적 조치를 중단하라는 요구였다.

정민승 방송통신대 교수는 "찬찬히 우리나라의 상황을 검토하기에 상황은 급박하다"며 교육학자들이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평등의 강조'를 '사회주의'로 등치시킨 뒤 모든 규제를 풀고 경쟁을 강화해 교육선진국이 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평등은 무능과 등치되고, 교육력을 발전시키기는 커녕 교육력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자율성까지도 없애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성열관 교수 역시 "각 시·도교육감에게 교육학자 명의나 다른 방식으로라도 편지를 보내 교육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최소한의 기여를 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강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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