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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박연차 회장에게 유력인사들을 소개 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천신일 회장. |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이인규 검사장)가 ‘이명박의 남자’로 통하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쪽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천 회장은 지난해부터 박 회장에게 유력인사들을 소개해 줬을 뿐 아니라 직접 박 회장 구명을 위해 로비를 시도한 의혹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연차 리스트, 정대근 리스트에 이어 천신일 리스트가 터질 것’이란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엔 여당 실세 의원을 비롯해 여권 핵심 인사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로 드러날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천 회장이 올 초부터 몇몇 구설에 오르내렸고 ‘박연차 리스트’에도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일자 청와대에서 자체적으로 꾸준히 확인 작업을 해왔 다고 한다. 또한 천 회장에게 ‘말조심’을 당부했다고도 한다.
그러던 중 일부 언론과 야당 등에서 천 회장에 대한 구체적인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해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이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 대책회의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한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은 박진 의원도 “지난해 3월 천 회장 소개로 박 회장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에 대해 박 회장과 박 의원의 대질심문을 통해 확인한 결과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전언이다. 박 회장 입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던 민주당이 ‘한번 붙어보자’며 강경모드로 돌아선 것도 천 회장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사실 정치권과 재계에서 박 회장과 천 회장은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천 회장은 동향 후배인 박 회장에게 사업적인 조언을 해주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천 회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레슬링협회 부회장이고 천 회장은 박 회장이 인수한 휴켐스의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 2006년에는 박 회장 소유의 정산개발이 세중나모 계열사인 세중게임박스(현 세중아이앤씨) 지분 2.09%를 사들이기도 했다(<일요신문> 880호 보도).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회장은 정권 출범 직후부터 천 회장을 통해 여권 및 청와대 인사들과 여러 차례 만나 친분을 다져왔다고 한다. 특히 박 회장은 지난해 태광실업이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자신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여당 실세로 통하는 한 의원을 천 회장으로부터 소개받고 ‘조사 무마’를 청탁했다고 한다. 검찰은 세무조사가 예정대로 진행돼 이 로비는 실패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혹시 수상한 돈거래가 있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지난 연말 박 회장과 여권 핵심인사가 한 차례 만난 것을 확인하고 둘의 관계에 대해 박 회장을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별도로 검찰은 그동안 천 회장을 향해 제기됐던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도 확인 중이라고 한다. 여기엔 ‘지난 2007년 대선 직전 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빌려준 특별당비 30억 원 중 일부가 박 회장 돈’이라는 의혹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은 국세청으로부터 박 회장 계좌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전달받아 이러한 것들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요신문>은 이런 의혹들에 대해 천 회장의 설명을 듣고자 여러 차례 회사 측에 문의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천 회장은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의혹을 부인해왔다.
사실 검찰에서도 천 회장에 대한 수사 확대를 놓고 깊은 고민을 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대통령의 친구이자 대선승리의 공신인 천 회장에 대한 수사가 자칫 현 정권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측에서 ‘지금 (수사)하지 않으면 나중에 박 회장처럼 더 크게 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검찰에 전달한 이후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고 한다. 검찰과 정치권 일각에서 이번 수사를 두고 ‘현 정권이 천 회장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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