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 검찰이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는 ‘조풍언 수사’의 최대 피해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우중 대우그룹 전 회장도 아니었다. 수사의 유탄은 공교롭게도 30대 중반의 시민권자인 LG가 방계 3세 구본호씨가 맞게 됐다. 사실 조풍언 수사가 시작될 때만해도 구 씨는 수사망에 올라있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도 조풍언 수사를 통해 DJ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천문학적인 비자금과 대우그룹 퇴출 저지를 위한 정관계 로비 의혹에 쏠려있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구본호씨와 조풍언씨의 관계가 본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초점은 구 씨의 주가조작에 조 씨의 돈이 사용됐는지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당시 <선데이저널>은 구 씨와 조 씨의 오랜 인연을 보도하면서 구 씨가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수 있다고 예측 보도한 바 있다. 결국 본국 검찰은 구 씨가 조 씨의 돈을 이용해 본국에서 대박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애�은 개미투자자들만 큰 손해를 봤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본지가 취재한 결과 구 씨의 주식 투자에 들어간 조 씨의 돈이 무려 160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선데이저널>은 구 씨가 어떤 방법으로 손대는 종목마다 대박에 이르게 됐는지 조풍언씨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기자>
이 곳 한인사회에서도 어렴풋이만 알려져 있던 구본호 씨의 대박신화는 지난 2006년 시작됐다. 당시만해도 구 씨는 LA에서 금융지식이 뛰어난 젊은 인재라고 알려졌을 뿐 정확한 직업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구 씨는 그 해박한 금융지식을 이용해 대박을 이뤄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아버지 구자헌 씨로부터 물려받은 `범한판토스'의 대주주인 구씨는 2006년 가을 본국의 코스닥 업체 미디어솔루션을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당장 동원할 현금이 없던 탓에 구 씨는 고민 끝에 자신의 후견인인 조풍언 씨의 돈을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본지가 보도한 대로 구 씨와 조 씨는 작고한 구자헌 씨를 매개로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맺어왔어다. 먼저 2006년 9월28일 미디어솔루션이 제3자 배정방식으로 주당 7천원에 유상증자를 했는데 구씨가 100만주(70억원)를, 글로리아 초이스 차이나사와 스카이애셋홍콩이 각각 20만주, 크라운그랜드사가 10만주를 사들였다. 이때 외국법인들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는 소식에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는데 글로리초이스차이나사 등 3개 회사 모두 조 씨와 구씨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였다는 것이 본국 검찰의 설명이다. 구씨는 또 다음 날에는 미디어솔루션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180만주를 151억원에 사들였고 20일 뒤에는 사들인 BW 가운데 90만주를 조씨의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카인드익스프레스사에 405억원에 넘겨 330억여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처럼 조작했다. 구씨가 이들 주식과 BW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시장에서 빌린 돈을 이용하고 카인드익스프레스사를 통해 넘어온 조씨의 돈으로 빌린 돈을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검찰은 구씨가 외국 유명 투자은행의 명의를 빌린 뒤 이 은행이 미디어솔루션에 직접 투자한 것처럼 속여 주가 상승을 부추겼다는 혐의도 포착했다. 미디어솔루션을 재벌 3세가 인수했고 외국법인들도 투자했다는 소식에 이 회사 주가는 7천원에서 4만원대로 치솟았고 구씨와 조씨는 글로리아 초이스 차이나사 등 3개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사들인 50만주를 팔아 165억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것이다. 구 씨는 실질적으로 자신이 모두 투자해 주가를 띄웠음에도 외국계 유령회사를 동시에 참여시킴으로써 주가조작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혹을 해소시키는 세련된 방법을 사용한 셈이다. 구씨는 한 달 새 거액을 벌어들이는 동시에 미디어솔루션의 최대주주가 되자 자신이 대주주인 범한여행을 흡수·합병해 `레드캡 투어'를 만들고 액티패스, 동일철강, 엠피씨 등 손대는 종목마다 비슷한 수법으로 대박 신화를 이어갔다고 검찰은 판단하고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본지의 취재결과 이런 식으로 구 씨의 투자에 들어간 조 씨의 돈이 총 1600만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리아 초이스 차이나가 빌미
사실 구 씨와 조 씨의 이러한 밀월 관계는 조 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될 당시만해도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본지가 조풍언씨의 대우그룹 관련 정관계 로비의혹을 취재하면서 로비의혹의 한가운데 서 있는 대우정보시스템에 최대주주가 ‘글로리초이스 차이나’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지난 3월 최초 보도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본보의 보도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은 글로리아 초이스 차이나가 어떤 회사인지 수사에 들어갔고 이 회사가 대우정보시스템 뿐만이 아니라 상기의 내용처럼 미디어솔루션 인수 과정에서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즈음에 본보는 다시 조풍언과 구본호의 30년 인연을 밝히는 기사를 보도했고 검찰은 다시 두 사람간의 이런 오랜 친분 관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결국 강도 높은 수사 끝에 검찰은 구본호씨는 조 씨의 자금을 이용해 주가조작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 20일 구 씨를 긴급체포했고 결국 구속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조 씨의 수사로 인해 구 씨의 오랜 ‘머니게임’이 꼬리를 밟힌 것이다. 이에 대해 구 씨는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언론은 저를 보고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르지만 주식 투자를 통해 수익을 거둔 것은 무엇보다 주식을 사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는 등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씨는 "제가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사면 다른 사람들이 그 회사의 주가가 크게 뛸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주식을 샀기 때문에 주식 가격이 올랐을 뿐, 의도적으로 주가를 조작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증시에 들어온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당했고 때로는 협박도 받았다. 증시에서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기기 위해 주가를 조작하려 마음 먹었다면 더 효과적인 방법을 동원했을 것"이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이제 더 이상 주식에 투자할 생각이 없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사업체 운영에만 전념하고 싶다"며 '은퇴'의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구씨가 미디어솔루션을 인수하고 주가 조작을 일삼는 과정에는 LG家 사람들의 무언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구씨는 합병에 앞서 2006년 10월 16일 미디어솔루션의 최대주주 임 모씨로부터 주식을 양도받았는데, 이 과정에 LG벤처투자주식회사와 윈베스트벤처투자주식회사가 '투자 목적'을 빌미로 참여해 구씨가 26.93%의 지분으로 최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LG 벤처투자주식회사는 구씨의 종숙 구자두씨가 회장으로 있는 벤처투자회사로, 그의 장남 본천, 차남 본완, 장녀 혜란, 차녀 혜선 씨 등이 60% 가까운 지분을 갖고 있다.
김우중 은닉재산 여부
한편 검찰은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과 관련해 로비 창구로 지목받아온 조씨의 해외자금을 추적하다가 조씨와 구씨의 연결고리를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BFC(대우의 해외 비밀 금융조직)를 통해 빼돌린 자금 일부가 수 차례 세탁을 거치면서 조씨의 개인재산이 됐고 이번에 구씨의 주가조작에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 자금은 이미 조씨의 개인재산으로 넘어온 상태여서 김 전 회장의 은닉재산으로 규정해 추징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해졌다.
구본호의 화려했던 지난 3년
구본호씨의 지난 3년간의 행적은 그야말로 증권가에서는 관심대상 1순위였다. 장외시장 투자자들은 물론 증권사 간부들조차 구본호씨의 다음 투자에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증권가에서 구 씨의 투자가 정보지를 오르내릴 정도로 '미다스의 손'으로 인정받았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6촌 동생인 구본호씨가 증권가 뉴스에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5년5월이었다. 당시 구씨는 LG전자 주식 4000주를 매각했다는 공시 뉴스를 탔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75년생, 만 서른살인 그를 주목하는 투자자는 아무도 없었다. 구씨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2006년 9~10월, 보름만에 한 종목 투자로 수백억원의 차익을 실현하면서부터다. 구씨는 미디어솔루션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매매로 25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미디어솔루션도 구씨의 투자소식과 함께 12일 이상 상한가 행진을 벌였다. 미디어솔루션 투자로 톡톡히 재미를 본 구씨는 해가 바뀌자마자 바로 액티패스에 투자했다. 2007년1월2일 액티패스에 80억원을 투자를 시작으로 앞서 인수한 미디어솔루션을 통해 액티패스 경영권을 인수했다. 2006년 당시 구씨는 미디어솔루션 지분 일부만을 매각, 경영권은 여전히 소유하고 있다. 물론 액티패스도 브레이크 없는 상한가 행진을 달리며 주가를 몇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투자했다 하면 기본 상한가 10번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구씨의 명성이 코스닥 시장을 강타하면서 구씨 때문에 코스닥 마감이 지연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구씨가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 액티패스에 이어 3번째로 대규모로 투자한 엠피씨가 연속 상한가 행진중 '사자' 주문이 몰리면서 코스닥 마감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일까지 발생했다. 엠피씨 투자 직후 경영권을 인수한 동일철강은 한때 100만원대 중반까지 가격이 초솟으며 코스피와 코스닥을 통털어 가장 비싼 주식 경쟁을 할만큼 주가가 폭등하기도 했다. 투자하는 종목마다 대박이 나다보니 구씨가 투자하거나 투자를 검토하다 손을 뗀 종목들은 폭락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미국 나스닥 자일랜 신화로 유명한 김정실씨가 주요주주로 있는 소프트포럼은 지난 1월 구씨가 지분 전량을 매도했다는 소식에 5일 연속 상한가에서 바로 하한가로 급락했다. 비에스지는 구씨가 인수한 액티패스에 피인수됐다는 소식에 급등하다 구씨측이 액티패스와 비에스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하면서 구본호 관련주에서 제외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결국 주식시장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구본호 씨의 화려했던 3년간의 행적은 이번 구속으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됐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