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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붕당과 오늘의 정당

이경희330 2011. 3. 7. 01:29

노론 : 송시열과 윤증의 회니논쟁에서 송시열을 지지하여 서인에서 갈라진 붕당.

        六經보다 朱子의 注解를 더욱 우선시 하여 육경을 오로지 주자의 눈으로만 바라봄.

        이이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영조이래 조선의 집권계층이됨.

       흔히 노론을 현재의 한나라당 등 기득권 세력과 비교하는데 이는 옳치 않음.

       물론 이완용 같은 매국노가 노론가에서 나왔지만 연암 박지원도,홍대용도 노론이었고 그들이

       키운 수많은 구한말 개화파 민족 사상가가 대부분 이 노론가에서 나왔음.

       서재필, 김옥균, 박영효에서부터 김좌진 장군, 백범 김구선생이 이 노론에서 나온 인물임.

        이렇게 볼때 노론은 사실 현재 민주당의 뿌리이자 근간이라고 할수 있음.

       4.19혁명 이후 구민주당 인물을 면면히 살펴볼거 같으면 친일세력도 비록 많았지만

        구한말 선각자들에서 부터 백범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정통 민족주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일파라고 할수있음.

 

소론 : 복상논쟁의 최종 승자가 된 서인이 남인에 대한 처리를 놓고 벌인 회니논쟁의 갈등에서

         남인을 같이 정국을 운영할 파트너로 보느냐 , 아니면 송시열의 말대로 남인 윤선거가 감히

         주자의 주해와 다른 견해를 나타낸 사문난적이기 때문에 철저히 배제해야 하느냐로 할때

          전자의 견해를 취하면서 노론과 분당한 서인의 일파가 바로 이 소론임.

          주자의 해석에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해석을 내린 박세당의 사상에서도 알수 있듯이

          소론은 어떤 절대적인 이념적 원칙보다는 타협과 소통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현재의

           정국에서 민주당과는 살짝 다른 어떤 노무현적인 가치관을 나타내는 정당과 결부지을수

            있다.  
         소론가의 인물로 일제시대부터 해방후까지 이회영,이시영 같은 빛나는 노블리스오블리제

            를 실행한 인물들이 있고 현대사의 인물로는 윤여준 전장관이 있다. 윤여준이란 인물에 대

           해서 한마디 하자면 비록 신한국당 국회의원이었지만 완전 꼴통도 아니고 나름 합리적이

           인물이었다고 본다. 전형적인 소론가의 인물이라 할수 있다.

 

남인 : 퇴계 이황을 시조로 삼는 남인은 옳은 소리를 하는데 그게 크게 현실로 와닿지 않고

         분명 맞는 얘긴데 뜬구름 잡는거 같고 아무튼 꽤나 원칙이 있는거 같으나 현실적 감각은 동떨

         어진 그런 붕당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실제 조선의 붕당정치 시기 전체

         를 통틀어 희안하게도 남인은 항상 소수이며 재야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비록 현종년간 숙종

         년간에 일시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적이 있지만 다 합쳐서 10년 남짓을 제외하곤 언제나 재야

          에 머물러야 했다.

         그렇다고 붕당 자체가 완전 괘멸적인 타격을 입고 사라진것도 아니고 참 희안하다.

          다른 말로 해서 북인처럼 서인들에게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도 못하고 사림의 원래 시작점이

          남인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정통성까지 생각한다면 나름 남인의 존재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웠을것이다. 

           흔히 남인하면 영남을 근거지로 둔 재야선비들을 연상하기 쉽지만 남인의 근거지는 영남

          외에 기호지방,전남지역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퇴계이황-유성룡-윤휴-이익-정약용으로 이어지는 남인은 구한말에 이르러 기호남인은

         애국계몽운동으로 영남남인은 위정척사운동으로 각각 활약하게 되고 단재 신채호선생,

          이광수,박은식 등 주로 역사나 문학쪽에서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게 된다.

          이런 남인의 계통과 역사적 시대적 위치 및 역활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현대의 민주노동당과

          그 뿌리가 닿아 있음을 알게된다. 구한말부터 현대사로 넘어오는 시점에서 항상 천주교와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수용에 앞장섰던 것도 따지고보면 남인들이었으니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한다고 박정희 등 유신론자, 극우주의자와 종이 한장 차이를 보인다.

           사실 퇴계의 학문이 일본에 전해져 일본성리학 나아가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모티브가 되었

           다는 점에서도 극우와 극좌 이 양단에 걸쳐 남인들이 넓게 포진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북인 : 극단적인 현실 참여주의이며 평생 소학을 끼고 살았던 남명 조식을 시조로 하는 북인은 그

        역사가 짧고 인조반정 후에 괘멸적인 타격을 입어 그 학통이 제대로 계승되어 내려오지 못하

        므로 아쉽게도 근현대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조식이 칼을 차고 다닌 이유는 文뿐만 아니라 武를 익힘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며

        그 스스로 차고있는 칼처럼 곧고 날카로운 지조를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서에 해당하는 소학을 끼고 살았던 이유는 형이상학적인 고담준론

        을 떠들면서 아주 기초적인 소학의 가르침 조차 제대로 실천해 따르지 않는 시대를 개탄한

        때문일 것이다.  필연적으로 조식의 이런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악한것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현실의 불합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만들었다.

        그런고로 남인과 서인에 비해 절대적으로 숫자가 적지만 왜란때 의병장의 대부분은 이 북인

        출신에서 나왔다. 조식과 그 제자 정인홍으로 이어지는 북인은 그러나 이이첨 대에 이르러

        전멸하고 만다.  흔히 광해군 대의 대북정권이 중립외교를 펼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실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이첨을 위시한 대북,유영경을 비롯한 소북 모두

         철저한 숭명배금주의자들이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오로지 광해군 그 자신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홀로 외롭게 펼친 정책이라 할수 있다.

         아무튼 이 북인의 역사와 비교적 강직하면서 남인처럼 두리뭉실하게 이것도 우리편 저것도

          우리편(민노당내의 주사파를 보라) 하는거에 반대한 점을 생각해본다면 현재의 진보신당과

          비교할만하다고 할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은 왜 없냐고?

 

갸들은 족보가 없어. 어떤 역사적 정통성이나 흐름과 별개의 집단이니깐.

노론중에 친일세력이 된 일족들, 남인 중에 극우 유신주의자들, 소론중에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행하지 않은 자들이 그냥 한데 뒤엉켜 잡탕이 된거가 바로 지금의 한나라당이야.

 

곰곰히 따져보라고. 물론 현대에 이르러 과거의 붕당에 따른 가문의 연계같은건 무의미한 일이고

그게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것도 아니고 민주당내에도 민노당내에도 잡탕으로 다 섞여있을꺼야.

 

그런데 한나라당의 경우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버려. 4색 당파의 찌질한 떨거지들이 다 섞여서 이익에

의해 뭉친 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