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정부의 묻지마식 건설계획은 공급물량을 크게 늘려 거꾸로 건설시장을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경희330 2008. 10. 6. 09:53
  •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경제가 초불안 상태다. 중산층이 무너져 양극으로 나뉜 경제에 불경기가 불어 닥쳐 서민생활이 말이 아니다. 더구나 가계부채가 5년 전에 비해 두 배나 늘어 가구당 4000만원에 달한다. 경제 저변을 지키는 중소기업들은 어떤 사업을 해도 적자만 쌓인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태반이다. 여기에 환 위험을 막는다는 키코(KIKO)의 덫에 걸려 만신창이다. 이런 상태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증권시장이 주저앉으면서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 위기가 실제로 나타날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서민가계, 중소기업, 금융기관들이 함께 뒤엉켜 쓰러지고 실업자들은 대거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문제는 미국의 금융기관 부도사태가 연속적으로 폭발하면서 세계 경제 불안이 번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외국자본이 대거 빠져나가 환율, 물가, 금리가 치솟고 증권시장이 주저앉고 있다. 경제위기의 뇌관에 불이 붙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집값 하락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20대 도시의 7월 평균 주택가격이 1년 전보다 16.3%나 떨어졌다. 중국은 선전의 고급 아파트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우리나라도 20∼30% 가격을 낮춰 급매물을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 국제 금융위기의 쓰나미 속에 우리 경제는 파국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건설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향후 10년간 주택 500만채를 짓겠다는 대규모 주택공급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도권에 15개의 뉴타운을 추가로 지정하고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풀어 서민주택을 지을 예정이다. 정부의 계획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올해보다 7.9%나 늘려 21조원을 배정했다. 전국적으로 고속철도, 지하철 등의 건설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주저앉은 건설경기를 다시 일으켜 과거 개발연대의 꿈을 재현한다는 정책의 기본 기조를 확실히 한 것이다.

    정부의 묻지마식 건설계획은 공급물량을 크게 늘려 거꾸로 건설시장을 붕괴시킬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 건설시장은 현재 극도의 침체 상태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16만채나 된다. 여기에 금리가 폭등하자 건설업체들이 줄도산을 하고 있다. 가계 부실이 심화되면서 부동산의 법원 경매도 급증해 8월 한 달 2085건이나 된다. 전달에 비해 40%나 늘어난 것이다. 개인파산은 지난 1월 1만건에 지나지 않던 것이 7월 현재 7만건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 주택공급과 건설공사를 무차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부동산값 폭락을 부추겨 가계파산을 재촉하는 것은 물론 건설회사와 금융기관의 동반 부도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건설경기나 활성화시켜 살릴 수 있는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정부, 기업, 국민이 모두 비장한 각오로 경제위기에 대처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매진할 때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는 막연한 낙관론을 펼 것이 아니라 진솔한 모습으로 기업과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한다. 동시에 외환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 확보와 금융시장 안정에 정책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또 위기일발의 연쇄부도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과 서민가계를 위한 실효적 지원대책을 내놔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력한 경제의 신산업 동력을 창출하고 기업투자를 활성화해서 세계 경제의 혼란을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경제주체가 패배감을 떨치고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리하여 오히려 외국자본이 들어오게 하고, 세계 경제 회복을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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