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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과 아이스케키

이경희330 2008. 4. 8. 01:23
태영아~ 밥먹으러 들어와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야, 그제서야 "내일 보자~"라는 아직도 남은 아쉬움의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갈 정도로, 동네 또래아이들과 놀기에 정신없던 시절.

그러나 한여름이 되고 여름방학이 되어,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풀타임 플레이어가 되는 기쁨이 있더라도, 8월의 땡볕을 이기는 장사는 없었다.

가장 즐겨하던 '다망구'도, 몇십분만에 헐떡이는 아이들의 숨소리와 함께 "타임"이란 외침으로 휴전에 들어가고, 땀이 흥건하게 배인 런닝차림의 아이들은, 처마가 드리워주는 손톱만한 그늘아래로 모여들어 땀을 훔친다.

 

그때 가장 반갑게 들리던 소리는 무엇이던가?

나무판자로 엉성하게 짠 궤짝을 어깨띠로 둘러맨, 넓은 챙의 짚모자를 쓴 중학생인 듯한 형아의 "아이~스케키"란 목소리가 들릴때면, 칼 루이스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그 형아에게 냅다 달려가곤 했었다.

5원인가를 주고 사서 손에 든, 팥앙금이 켜켜히 박혀있는 아이스케키.

아껴서 빨아먹자니 한여름 땡볕에 녹을까 걱정이고, 한입에 씹어먹자니 다 먹고 난 뒤 아이들이 먹는 모습이 부러웠고.

아이들에게 시원함과 달콤함을 주는 이런 아이스케키였지만, 학교로 옮겨가면 전혀 다른 용도로 쓰여졌는데..  

 

 

 

마음에는 들지만 오히려 짖궂은 장난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진짜 골려주고 싶은 여자아이의 치마를 올림과 동시에 소리치는 "아이스케~키"

여자아이의 치마를 올리면, 아이스케키를 먹는 양으로 시원함이 연상되어 아이스케키라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여자아이의 놀라는 표정과, "너 죽어~"라는 살벌한(?) 말을 들으면서도 좋다고 도망치던 아이들.

여자아이들도 벼르고 벼르다, 남자애의 바지를 내리고는 했던 말도 이 아이스케키였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이런 행동들이, 지금의 잣대로 봤을때는 '성희롱'에 해당하는 오늘이다.

 

동네 할아버지의 귀엽다고 쓰다듬는 행동하나, "요녀석 고추많이 컸네"라며 만져보던 할머니의 손짓하나도, 이제는 '성희롱'이라는 서슬퍼런 눈사위에 구속되는 오늘이, 어릴적 땡볕아래의 목마름보다 더한 메마름으로 다가듬에, 적지않게 씁쓸한 마음이다.

지구상 단 하나밖에 없는 대한민국 여성부.

물론 남녀의 평등한 삶, 여성의 권익증진과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우리가 보고있는 것은 이것들과는 한참이나 차이가 있는, 남자를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만 인식시키는 부작용이, 훨씬 크게 나타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정몽준의 행동 역시, 이 '성희롱'이란 촘촘한 그물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MBC 여기자가 정 후보와 인터뷰하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동작지역에 뉴타운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자, 정몽준 후보가 "다음에 하자"고 말한 뒤 김 기자의 볼을 쓰다듬고 툭툭 친데서 발단이 됐고, 이에 여기자는 "이것은 성희롱입니다"라고 정 후보에게 거세게 항의했음을 CBS가 단독보도했다는데.

이에 정몽준은 "인파가 북적이는 상황에서 어깨를 툭 치려는 순간, 본의 아니게 김 기자의 얼굴에 손이 닿았다"는 처음의 말에 이어, "며칠 동안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피곤한 상태에서, 왼손으로 김 기자의 오른쪽 뺨을 건드려서 김 기자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사과의 말을 했다.

 

그의 이름처럼, 며칠 잠을 못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미처 답변이 '준'비안된 질문에 거절하다 발생한 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비록 그것이 본의와는 상관없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총선에서 죽을 쑤고있는 야당 특히나 그와 경쟁을 하는 통합민주당의 정동영을 생각한다면, 호시탐탐 비난거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겐, 월척을 낚은 것과 진배없음이 아니겠는가?

물론 정몽준 후보가 직접 MBC를 방문해 그 여기자에게 사과를 했고, 여기자 역시 사과를 받아들였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야당에선 이를 두고 '성희롱'이란 타이틀을 앞세우며, '제명요구'등 대대적인 비난을 하고 있음이다.

특히나, 아동 납치 성범죄로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이런 일이 발생했음은, 비록 총선 대세에는 역전을 허용치 않는다 하더라도, 그 진실여부를 떠나 정몽준 개인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전체에도 적지않은 타격이 있을 것같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정몽준..

아무래도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이미지가 강하고, 멱살잡고 싸워대는 정치인의 모습에선 한발 비껴있는 그였기에, 정치판의 생리에 무감각함이 나타난 결과라 보인다.

정치판이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공감대로 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는, 스포츠신문 기자들에게는 허용될지도 모를 이런 손짓하나도, 정치로 판을 옮겨오면 시원한 아이스케키가 치마를 들추는 아이스케키가 되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허용불가'로 나타남을 몰랐던 어리숙함이랄까..

 

여기서 본의가 아닌 실수로 믿고싶은 정몽준의 행동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이를 대하는 이들에게도 한마디 해보련다.

물론 성희롱이란 행동을 취한 이의 의도가 아닌, 그 행동을 당한 이의 수치감과 모욕감의 여부로 판단되는 것임을 명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에 어떤 '의도'가 개입된다면, 대한민국 남성 모두를 성희롱 가해자로 만들 수 있는, 너무나도 포괄적이며 너무나도 자의적으로 해석케하는, 악법으로 남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길가며 흔드는 남자의 손이 실수로 엉치부위에 슬쩍만 건드려도, "의도적으로 접촉한 듯 느꼈고, 난 모멸감을 느꼈다"고 주장한다면, 백주대낮에 그 남자는 한순간에 '성희롱범'으로 내몰리게 되니 말이다.

 

너무 과장된 표현이고 억지발언이라고?

수많은 인파가 있었고, 옆에 부인과 많은 기자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있은 이런 행동이, '성희롱'이라고 외쳐대는 이들이야 말로 억지가 아닌가?

정몽준이 미치지않은 이상, 그 자리에서 작심하고 성희롱을 하겠는가 말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 불만이 많은 이들을 보자.

그들은 지금껏 이번 일을 단독보도한 CBS를 가리켜, "이명박이 믿는 같은 기독교를 중심축으로 두기에,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기사는 별로 없고, 두둔하는 듯한 기사만 넘쳐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런 CBS의 이번 단독보도에 대해서는 어찌 아무 말도 없는가?

모든 것을 자신의 유불리만으로 판단하는, 편협한 개념으로 소리쳐왔음을 인정하는 모습이랄까.

이젠 또 "CBS야 말로 진실을 보도하는 진정한 언론"이라며 동네방네 떠들어대겠지?

참으로 역겨운 정치판이요, 정말이지 구역질나는 집단들이랄 밖에는..

 

 

 

정몽준..

그게 본의든 아니든을 떠나, 이번의 행동과 그 직후에 했던 말은, 스포츠계가 아닌 정치판에서는 비판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정치판이란 구정물에 물들라는 말은 아니지만, 진정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음이라면,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라는 것의 속성을 알게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예전에나 허용되었던 치마들추기의 아이스케키가 아닌,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시원함을 주는 그런 아이스케키같은 정치를 생각하고 실천해주기를 기대한다

 

 

자유의깃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