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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회장 연인 고사 무역협회장 교체 막후 '꽃방석'인 줄 알았더니 '가시방석'

이경희330 2009. 3. 4. 00:28

희범 전 무역협회장(왼쪽)이 2월 24일 무역협회 정기총회에서 새롭게 선출된 사공일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연임이 확실시되던 이희범 무역협회장이 임기 만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임 고사를 밝히고 사공일 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초스피드로 회장에 선임되면서 무역업계에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사공일 회장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물려받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경제 분야 쌍두마차로 불리는 실세 중의 실세여서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 것으로 업계 일각에서는 보고 있다. 도대체 무역협회장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막후를 조명했다.

이희범 전 회장의 임기만료는 2월 24일. 이 전 회장이 공식적으로 연임 고사를 밝힌 시점은 불과 2주 전쯤인 2월 6일이다. 전경련·대한상의·경총과 함께 4대 단체장인 무역협회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어서 이 전 회장의 이런 ‘돌발 행동’에 대해 업계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전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큰 신임을 얻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재계나 무역업계는 모두 이 전 회장의 연임을 당연시 여겼을 정도여서 의문을 낳았다.

이와 관련, 무역협회 관계자는 “이희범 회장이 오래 전부터 연임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외부에 발표만 안 했다”면서 “이희범 회장 자신도 전임 회장의 임기 만료가 임박해서 회장으로 추대 받았기에 그즈음해서 연임 고사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도 비슷한 언급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전 회장 자신이 전임 회장의 임기 만료에 임박해 추대를 받아서 자신도 임기 만료 직전 연임 고사 의사를 밝혔다고 하는데, 이는 뒤집어보면 권력 핵심으로부터 사공일 회장이 낙점됐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도 3년 전 전임자 임기만료 직전에 권력 핵심으로부터 낙점을 받아 무역협회장에 선임된 것으로 알려져 무역업계가 ‘낙하산’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만약 진정으로 이 전 회장이 연임할 의사가 없었다면, 이 전 회장의 평소 업무 스타일로 봤을 때 최소 한 달 전에 통보해 후임 회장을 물색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을 것이라는 게 무역협회 안팎의 시각이다.

청와대와 과천 경제부처에서 ‘차기 회장엔 사공일 회장이 확실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시기가 이 전 회장이 연임을 고사한 직후였던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즈음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도 유력하다고 하마평에 오르내렸지만 정작 그 자신은 “나는 언질을 못 받았다. 사공일 위원장이 되는 것 아닌가. 유력하다는 보도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라고 기자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주 회장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경제2분과위원장을 지내 이명박 정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던 인물이다.
사공일 회장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2월 초 런던 출장 때 무역협회장 내정소식을 들었다”면서 “전임 이희범 회장이 그만두겠다고 말해 이 얘기를 정부에 전달했지만 당시만 해도 내가 무역협회장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모든 정황은 권력 핵심에서 이 전 회장을 강제적으로 물러나게 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치더라도 사공일 회장을 내정했던 것만은 사실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당초 연임이 확실시되던 이 전 회장이 대체 왜 이를 고사했던 걸까. 이 전 회장은 “취임 당시 목표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퇴임 사유를 밝혔지만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우선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단행될 개각 때 이 전 회장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기용하기 위해 미리 무역협회장에서 물러나게 했다는 설이다. 이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지난 개각 때도 지식경제부 장관 하마평에 오른 적이 있다. 이 대통령과 이 전 회장이 모두 ‘일벌레’여서 서로 잘 통한다는 얘기도 있다.

또 하나는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과 불편한 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소문이다. 윤 수석과 이 전 회장은 행정고시 12회 동기로 서울산업대 총장과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을 엇갈리며 맡았던 라이벌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 두 사람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윤 수석은 일찌감치 이명박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등 이명박 정부 ‘공신’ 중 한 명이지만 이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사람’으로 통해왔다. 그가 노무현 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2년이나 장수했고 퇴진 후에는 무역협회장에 앉았기 때문. 다만 이 전 회장은 수출증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는 등 업무능력을 이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왔다.

결국 이 전 회장이 윤 수석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려났다는 것이 그의 퇴진을 둘러싼 또 다른 소문의 골자다. 정·관계에서는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인 윤 수석의 파워가 대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퇴임 직후 “공직에는 돌아가지 않고 기업으로 가고 싶다”며 더 이상 공직에 뜻이 없음을 밝혀 이 같은 설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과연 소문은 소문일 뿐일까.

*무역협회는 어떤 곳?
한국무역협회는 무역업체의 권익증진과 무역진흥을 위해 1946년 설립된 민간경제단체다. 그러나 정부의 준예산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역특별회계자금으로 세워져 태생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왔다. 이희범 전 회장은 물론이거니와 이번 사공일 회장, 오영호 부회장(산업자원부 차관 출신), 그리고 남덕우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당시에는 재정경제원 차관을 그만둔 상태) 등 경제부처의 장관급이 회장, 차관급이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무역협회는 비록 전경련보다는 주목도가 떨어지지만 인력 규모나 자체 보유 자산은 다른 단체보다 월등하다. 그래서 무역협회장은 상당히 매력적인 경제단체장 자리로 여겨지고 있어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민선태 언론인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