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경제지상주의' 비판, 조갑제 '이회창 스페어 후보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3일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확립, 국민의 정신적 성장에서 찾아야 한다"며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면전에서 대립각을 세웠다.
이회창 "선진국 진입은 경제성장 아닌 정신적 성장에서 찾아야"
이 전 총재는 이 날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정재철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아름다운 유산>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던 중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가 이뤄낸 압축고도성장을 통해 지금 세계속에서 존경받고 대접받는 선진국의 궤도에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며 "경제가 어려워 좌절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옳고 그름에의 판단과 이것에의 신념을 지키는 정신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 전총재 발언은 원론적 언급으로 넘길 수도 있으나,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법치주의'와 이명박 후보 트레이드마크인 '경제대통령'을 대립개념으로 설정한 뒤 우회적으로 법치주의의 우월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묘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 전총재 언급은 지난달 28일 경선 승리차 자신을 예방하려던 이명박 후보와의 회동 불발 직후 나온 것이서 한층 주목된다. 당시 정가 일각에서는 회동 불발 이유가 외형상 이유인 '급체'가 아니라, 이명박 후보가 자신보다 김영삼 전대통령을 먼저 예방한 데 대한 불쾌감의 표시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돌기도 했다. 이회창과 김영삼은 1997년 대선때 불구대천의 앙숙이 된 상태.
이 전 총재는 이날 이 후보를 만나 "지난 번 아파서 만나지 못한 것 미안하다"며 회동 불발에 대해 양해를 구했고, 이에 이 후보 역시 "괜찮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금주 중으로 다시 만날 일정을 잡겠다던 두 사람은 향후 회동 일정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 총재 측근 역시 본지와 통화에서 "아직 두 분간의 회동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갑제의 '이회창 스페어 후보론'
이회창-이명박간 난기류와 관련, 한가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보수진영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회창 스페어 후보론'이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한국 정치인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애국적인 발언을 하는 이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라고 격찬한 뒤, 그가 이명박 선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선거 대책위원장이 되면 좌파는 공황상태에 빠질 것이다. 그들의 거짓선동으로 억울하게 낙선한 사람이 한나라당의 방패와 창이 되었으니 폭로공세를 재연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또한 원로인 이회창씨가 선대위원장으로 백의종군하는데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분열할 명분은 약해진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조씨 주장중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그러나 다음 주장이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남한의 친북세력을 사주하여 이명박 후보를 테러함으로써 유고(有故)상태로 만들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거법이 개정되어 선거운동기간중에도 유고를 당한 후보의 소속 정당이 대체후보를 낼 수 있게 된다면 대체후보로 박근혜씨뿐 아니라 이회창씨도 거론될 것"이라며 황당한 상황을 전제한 뒤, "그런 선거법 개정이 좌파세력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수호세력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스페어 후보'라도 내어야 할 판"이라며 '이명박 스페어론'을 주장했다.
조씨는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대한민국 세력이 한나라당 후보뿐 아니라 우파성향의 후보를 무소속으로 출마시켜 놓는 것"이라며 "한나라당 후보가 저격당하여 유고상태가 되면 반(反)좌파 민심은 이 무소속 후보로 표를 몰아줄 것이다. 다행히 테러나 유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무소속 후보는 투표일 직전에 사퇴하면 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구체적 전술까지 상술했다.
그는 "이런 대체용 후보로 이회창씨를 거명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며 "이회창 전 총재가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인류역사상 최악의 학살자이자 최대의 테러집단 두목을 상대로 하여 나라를 지켜내려고 하는, 무기를 들지 않은 유권자들의 피눈물 나는 걱정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거듭 '이회창 스페어론'을 주장했다.
이회창, '정치적 유고' 대비하나
'이명박 유고'를 전제로 한 조씨의 스페어 후보론은 이명박-이회창 두사람 모두에게 불쾌한 얘기다. 한쪽은 죽을 수도 있고, 다른 한쪽은 상대방이 죽으면 그 자리를 차지하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조씨다운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정가 일각에서는 '유고'를 물리적 사망이 아닌 정치적 위기로 해석할 경우 이회창 전총재의 최근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제공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는 경선과정에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 집요한 안팎의 네거티브 공세에 지지율은 반토막 났고 박근혜 후보를 1.5%의 근소한 차로 어렵게 이겼다. 이 후보가 또다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이 전총재가 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니냐는 게 정가의 판단이다.
하지만 정가의 중론은 만에하나 이런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반사이익이 이회창 전총재에게 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 전총재는 이미 흘러간 물이고, 한나라당 진영에는 박근혜라는 대안이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후보로 결정된 이상 이명박 후보가 낙마 위기로까지 몰릴 가능성도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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