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운명이 걸려있는 연말 대선가도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자신이 만들었던 한나라당을 배신하고 무소속으로 대권에 도전함에 따라 대선정국이 극도로 요동치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 「배신」의 관점에서 봤을 때 대한민국 역대 정치 지도자의 권모술수가 어떠했는지 평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성계는 고려왕조를 배신함으로써 왕권을 잡았다. 수양대군은 나이어린 조카 단종을 배신했고, 이시애, 이징옥 등 역대의 반란군 대장들도 대부분 부하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동학 농민혁명의 영웅 전봉준 역시 마지막엔 배신한 동학교도의 신고로 관군에 붙잡혔다. 만주벌판의 항일대장 김좌진은 다른 사람도 아닌 동족에 의해 등 뒤에서 총을 맞았고, 똑같은 독립군 대장 양세봉, 윤세주 사령(司令)도 모두 전투가 아닌 기습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그들의 「동족 후손들」은 지금 별로 기억하지 않고 있다. 이것 역시 분명한 배신이요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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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의 묘소를 찾은 안두희 그는 여기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듯 했으나 결국은 진상을 밝히지 않고사망한다.<1992년> |
8.15후 최대의 반역은 김구 선생 암살이었다. 일제 침략자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 백범 김구, 그 거목을 같은 한민족인 「안두희와 비호세력」이 암살했다. 그런 「민족에 대한 배신자」들을 처단하겠다며 「반민특위」라는 게 생겼었다. 그런데 그게 불과 몇달도 못가 친일 실권파에 의해 하루아침에 「쿠데타」당하고 말았다. 반역자들에 의한 2중, 3중의 배신이었던 셈이다. 전쟁의 서로마 제국이 궁정 수비대장 오도아켈의 배신으로 멸망했듯이 유신정권도 적이 아닌 「같은 패거리」에 의해 장송당했다. 배신의 행렬은 도도히(?)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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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월 법정에 나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그는 항소이유서에서 “10 · 26 이후 유신 체제는 완전히 무너졌고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었다”고 주장했다. (사진/ 연합) |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30사단에 모인 별들」이 참모총장 정승화한테 총칼을 들이댔다. 그러나 노태우는 훗날 「그날의 동지」 전두환을 배신하고 그를 백담사에 보냈다. 광주에서 그토록 용감했던 전두환도 배신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문민이 반드시 「약속」의 정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3당합당, YS의 JP축출, DJ와 이기택의 「그 짧았던」 동거생활, 온통 너나 할 것 없이 토사구팽이었다. 이런 배신사관(史觀)의 점철과정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몇개의 전형적인 처신방법들을 만들어냈다.
첫째가 능력 있는 배신자, 바로 쿠데타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우다. 둘째는 속수무책의 책임자, 12.12 당시 3군 사령관의 경우가 그러하다. 두 눈 멀겋게 뜬 채 「그럼 이걸 어떻게 한다?」하며 당했던 것이다. 셋째는 「좌고우면」하는 기회주의자들이다. 넷째는 배신자에 충성을 다한 「배신적 충신파」의 경우.
더 높은 사령관을 철저히 물먹이면서 오직 「패거리 선배」한테만 충성을 다했던 처신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정몽주, 사육신처럼 「죽기로 작정한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다. 「다 알면서 왜 그래? 그러지 말고 당신도 이리 와...」하는 「30사단」의 회유를 끝까지 물리친 장태완이란 무장(武將)도 있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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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제1 자질은 ‘후안무치’다. 대통령이 된 사람은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이 자질이 더 뛰어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만들어내며 그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1990년 1월 3당 합당 발표 장면. (사진/ 연합) |
그리고 그런 이들과는 달리 그저 적당히 얼버무리며 오로지 「장수(長壽) 제1주의」로만 나간 전직 대통령도 있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걸 녹음한 테이프마저 몰래 빼돌린 「신통한 배신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적과의 동침」으로 「성공한 쿠데타」를 수없이 만들어낸 「배신사관」을 이제 그만 졸업해야 하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1세기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배신의 역사」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종찬, 이인제, 손학규, 이회창 등 소위 정치지도자임을 자처한 그들이지만 결국 현실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며 심하게는 계란세례까지 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국민들로부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역시 자신을 대통령후보로 선출해준 당원들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필자는 「이명박 후보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이라는 제목의 정경뉴스 칼럼을 통해 대통령후보의 자리만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양보할 것을 주장해 왔다. 결국 당내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오자 부랴부랴 박근혜 전 대표를 「국정운영의 동반자」라고 밝히며 뒤늦게나마 당 화합에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겸손이 얼마나 민심을 움직이는지 깊이 느꼈을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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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대선후보가 13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방문 중 한 시민이 던진 계란에 맞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직사관(史觀) 세우자
필자가 언급한 많은 위정자들 가운데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여러운 결단으로 배신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정치인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진정성에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구국을 위한 결단이었다면 국민들은 그의 결단에 박수를 보낼 것이고 그는 분명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한 인물까지 배신자로 볼 수 없다는 것도 전제한다. 다만 이제는 누가 비참하게 망하는 방식에 의해 또 다른 「누가」 비정상적으로 득세하는 모양새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곧은길을 걷겠다는 사람들이 서로 축복해주며 주고받는 「순리(順理)의 역사」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정직사관」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거짓말과 양설(兩舌)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 이쪽에 가선 이 말하고 저쪽에 가선 저말하고, 아침엔 이랬다가 해만 지면 뒤집어버리고, 정치의 이름으로 배신과 번복을 오히려 「위기관리」라면서 정당화하는 정치문화일랑 이젠 철저히 뜯어고쳐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신자는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번 대선만은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 아래 「정직대 부정직, 신의대 배신」의 대결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 지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