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필상 고려대학교 교수 [정경뉴스]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불안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이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금융산업의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경제는 일방적인 피해자로서 타격이 크다. 경기침체와 물가불안의 이중고 속에 밀어닥친 금융 파도는 우리경제를 극도의 불안상태로 몰고 있다. 금융전쟁시대 경제는 실물부분과 금융부분이 조화를 이룰 때 건전하게 발전한다. 그러나 최근 세계경제는 금융부분이 실물부분을 압도하여 각국이 국제자본의 지배를 받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전 세계 생산대비 금융자산비율이 1980년 109%에서 2005년 315%로 뛰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같은 기간 세계총생산은 9조달러에서 44조달러로 5배가량 증가한 반면 금융자산은 10조달러에서 140조달러로 14배나 증가했다. 전 세계에 실물생산보다 돈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넘쳐나는 돈은 주식, 채권 등 금융상품은 물론 원유와 곡물 등 돈이 되는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는 투기자금 형태로 먹구름처럼 돌아다닌다. 먹이 희생물을 찾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하고 승자독식을 하는 비윤리성이 이 자금들의 기본속성이다. 1980년대 이후 각종 금융규제가 사라지고 국경이 없어지면서 금융자본주의는 날개를 달았다. 당연히 배후에는 달러를 기축통화로하여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 있었다. 일본과 독일 등 경쟁국가들의 제조업경쟁력이 높아지고 세계시장 점유가 확대되면서 미국경제는 점차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위협받게 되었다. 그러자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한 금융을 주요 경쟁수단으로 삼았다. 세계 각국에 대해 금융시장개방압력을 가하며 자국의 자본에게 공격의 길을 터주었다. 이때 미국은 70년대부터 선물, 옵션, 스왑 등 파생상품시장을 급격히 발전시켜 어느 나라도 금융상품과 기법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확고한 위치를 확보한 상태였다. 보통 금융은 은행시장을 통해 예금과 대출이 이루어지는 간접금융과 증권시장을 통해 주식과 채권거래가 이루어지는 직접금융으로 나뉜다. 파생금융상품이 도입된 후 금융은 차원이 바뀌었다. 간접금융과 직접금융에서 거래되는 일차상품들에 대해 선물이나 옵션, 스왑거래를 계속하여 금융상품거래를 다차원의 형태로 바꾸었다. 이렇게 되자 투기자금들은 세계시장을 다양한 형태의 금융공격수단을 만들어 공격할 수 있는 투기장으로 변질시켰다. 특히 인수 합병시장을 전 세계적으로 형성하여 취약한 기업들을 먹이 희생물로 만드는 기업사냥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오일달러의 영향력이 크다. 2006년 이후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중동국가들에게 들어오는 오일달러는 년 2000억달러 수준이다. 최근 오일달러는 수입대금통화를 달러에서 유로 등 다른 나라 통화로 다변화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도 자금유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2006년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들어온 금액은 각각 3000억달러와 4000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한편 국가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하는 국부펀드가 국제금융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동안 산유국들이 주로 국부펀드를 운영해 왔으나 금융전쟁이 강화되면서 각국마다 전략적으로 국부펀드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국부펀드가 특정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면 기업경영에 국가의 전략을 반영할 수 있다. 예컨대 자원개발과 관련해 국부펀드가 해외업체를 인수하면 이는 국가적으로 자원의 확보가 된다. 이 펀드들이 어느 나라에 가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에 따라 세계경제구도가 바뀔 수 있다. 향후 펀드들의 금융전쟁은 무한한 형태로 변신하며 끊임없는 진화를 할 것으로 보인다. 예고된 재앙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확산되면서 미국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 노동부가 미국의 2월 비농업부 고용이 6만3,000명 줄어든 것으로 발표하자 뉴욕증권시장이 폭락하여 다우지수가 12,000선 밑으로 추락했다. 미국의 경기침체가 심화하고 있다는 우려의 확산으로 아시아증시도 동반하락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도 미국발 신용위기에 충격을 받아 종합주가지수가 1,600대로 떨어졌다. 문제는 서브프라임모기지 관련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밝혀질 때마다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는 것이다. 씨티그룹, 메릴린치, 소시에테제네랄 등 대표적 금융기관들이 자금위기에 몰릴 정도로 관련이 안 된 금융기관이 거의 없다. 따라서 활화산의 폭발처럼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세계경제가 떨고 있다. 상황이 급해지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계속 긴급구제금융을 제공하여 부실채권을 국채로 바꿔주는 등 진화작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진통제일 뿐 서브프라임사태의 근본적 해결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달러화가 폭락하면서 국제금융질서는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달러당 엔화는 100엔대가 무너지고 유로당 달러화는 1.5달러대가 무너졌다. 향후 신용위기가 확산되어 금융혼란상태가 닥친다면 이는 사실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위기이다. 이 과정에서 실물경제는 극도의 침체 상태가 되어 근로자들이 길거리로 대거 몰려나올 경우 자본주의 경제는 1929년 세계 대공황 때와 유사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돈이 세계를 지배하는 금융자본주의하에 서브프라임사태의 재앙을 촉발한 것은 미국중앙은행이 택한 저금리정책이었다. 미국은 2000년 이후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연방기금금리를 1%까지 내리는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국제수지 적자와 물가불안을 막기 위해 다시 가파른 금리인상정책을 펴 기준금리를 5.25%까지 올렸다. 이후 대규모로 늘어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금융시장에 불안의 회오리가 불어 닥쳤다. 이런 상태에서 국제원유와 곡물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불안이 밀어닥쳤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가들의 경제가 급부상하면서 국제 원자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원자재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고 기업들의 제품생산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세계경제는 스테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 서브프라임사태로 인해 실물경제가 불안하고 원자재대란으로 물가가 오르자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진퇴양난의 난국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향후 세계경제는 상당기간동안 위기국면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금융자본주의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경제가 부도위기를 맞고 대다수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부실화되자 주가가 폭락했다. 국제통화기금의 요구에 따라 구조조정과정에 들어간 후 종합주가지수가 최저 270선까지 내려갔다. 이런 상태에서 외국자본들이 대거 들어와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주식을 매집했다. 이후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주가가 폭등하여 종합주가지수가 2000포인트를 넘었다. 그러자 지난해부터 외국인투자가들은 국내주식을 매도하여 대규모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2004년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중 외국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44%에까지 이르렀으나 이 비중이 최근 30%까지 내려왔다. 줄잡아 150조원 규모의 이익을 실현하여 가지고 나갔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소버린의 에스케이 공격 등 외국자본의 부당투기행위가 심각했다. 위기를 맞아 쓰러지는 경제를 사냥감으로 하여 폭리를 취한 것이다. 경제 불안부터 해소해야 2000년 이후 우리나라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미국과 같이 저금리정책을 폈다. 따라서 금리가 4% 이하로 내려가자 시중 유동성이 급격히 늘고 부동산가격과 증권가격이 급상승했다. 2006년 부동산가격은 32% 올랐다. 2007년 주가는 35%나 올라 2000선을 넘었다. 이러한 거품 속에서 경기침체는 계속되고 국민들의 빚은 늘어 가계부채가 가구당 평균 3,800만원에 이른다. 투기와 물가불안이 커지자 지난해부터 정부는 미국과 같이 금리인상 정책을 폈다. 실질부담금리가 7% 이상으로 오르자 건설경기가 위축되고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이 늘면서 가계 부문에 언제 연쇄부도가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위기가 자생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원유가격이 배럴당 110달러 이상으로 오르고 곡물파동이 일어나 물가가 올라 세계경제가 겪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함께 겪고 있다. 생활필수품가격이 20% 이상 급등하여 서민가계가 파탄으로 몰리고 있다. 경제가 실업, 부채, 물가의 3중고로 숨이 막히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경제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현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6% 성장률에 집착하여 인위적인 경기부양정책을 펼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해외 바람을 타고 막 불길이 일기 시작하는 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럴 경우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중요한 것은 물가부터 잡는 것이다. 규제 완화와 감세를 통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새 정부의 기본 경제정책이다. 이는 우리 경제가 살 수 있는 올바른 길이다. 그러나 물가불안이 계속된다면 기업들은 생산원가가 높아져 수지를 맞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또 소비자들은 물건이 비싸 사기 어렵다. 그러면 기업투자 활성화는 무력화된다. 이런 견지에서 새 정부는 총리 지명 시 약속한 대로 자원외교를 서둘러야 한다. 그리하여 원유와 곡물의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하고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 국내 생산이 전무한 원유의 경우 해외 에너지 개발 투자를 확대하여 직접 생산에 나서야 한다. 갈수록 가격이 오르는 곡물 역시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국내 농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더욱 살리는 정책으로 나가야 한다. 또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값싼 곡물 생산이 가능한 해외 생산기지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 물론 이러한 방안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기업과 국민 모두 비용구조를 개선하고 절약운동을 벌이는 등 참고 견디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음 정부는 탈규제, 저세율 정책으로 경제살리기를 추진해야 한다. 단순히 규제 숫자와 세율만 조정한다고 해서 투자가 살아난다고 보면 안 된다. 연구기술개발 투자를 늘려 신산업을 발굴하고 시중의 부동자금을 산업자금으로 흐르게 하여 기업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한편 외국인 투자에 휘둘리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금융시장발전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에 의거하여 증권시장의 국제경쟁력을 높히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차등의결권제도 등 국내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불리한 적대적 인수나 합병을 막기 위한 경영권 보호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여 금융주권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이런 수순을 밟는 것이 난마처럼 얽힌 경제를 풀어가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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