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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의원은 사정당국이 수사를 위한 수사를 한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 |
거대한 사정 먹구름이 여의도 정가와 과천 정부청사를 뒤덮고 있다. 검찰을 정점으로 한 사정당국은 그동안 공기업과 전·현직 고위직을 겨냥한 전 방위적인 사정작업을 진행해 왔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참여정부 실세들이 대거 포함된 ‘사정 리스트’가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리스트에 거론된 거물급 인사들은 좀처럼 사정 레이더망에 걸려들지 않았다. 이는 구 정권을 겨냥한 표적·보복 사정 논란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다고 작심하고 달려든 사정당국의 칼날이 무디어진 건 결코 아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 지금까지의 사정 드라이브는 ‘대어’를 잡기 위한 워밍업에 불과하고 이제부터 정·관계 거물급을 겨냥한 본격적인 사정몰이가 시작될 것이란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물급 사정 리스트’에는 정·관계뿐만 아니라 전·현직 사정기관 고위급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대적인 사정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은 물론 관가와 사정기관까지 사정한파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거물급 사정 리스트’ 실체를 들여다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정당국은 그야말로 전 방위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구사해 왔다. 청와대 민정팀을 정점으로 검찰과 경찰, 국세청, 감사원, 국정원 등 사정기관이 총 동원돼 공기업 비리와 전·현직 고위직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각종 비리 사건에 대한 고강도 사정 작업을 펼쳐왔던 것이다.
하지만 사정당국의 이러한 전 방위 사정 작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렇다 할 거물급은 걸려들지 않고 있다. 공기업 비리 수사는 대부분 용두사미로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참여정부와 구 여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도 소문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혐의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선 사정당국이 작심하고 구 여권만을 타깃으로 표적·보복 사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참여정부와 구 여권 실세들이 대거 포함된 ‘사정 리스트’가 끊임없이 나돌았다. 공기업 수사를 비롯해 그동안 검찰이 압수수색한 강원랜드, 농협, 프라임그룹, 부산자원 등 수사대상 기업 리스트에 참여정부와 구 여권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던 것.
실체 없는 ‘사정 리스트’가 끊이질 않자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얼마 전 지역신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강원랜드가 지역구에 있고 17대 국회에서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이었고, 세간의 말처럼 참여정부 실세였다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사정당국이) 또 한 번 나를 엮으려는 모양새 같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 방위적인 사정몰이에도 불구하고 ‘대어’ 사냥에 실패한 사정당국이 의기소침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으나 정·관계를 겨냥한 본격적인 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잠시 숨고르기에 돌입했을 뿐 찬바람이 불면서 대대적인 사정한파가 여의도 정치권과 과천 청사를 뒤덮을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정당국의 중추인 검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검찰은 주요 핵심 사건을 중수부로 이관해 본격적인 사정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대검 중수부는 그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담당해 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사건 자료를 넘겨받아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오랫동안 후원자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정치권에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현재 출국 금지된 상태인 데다 경남 김해에 소재한 수백억 원대 부동산 매입과 관련해서도 횡령 의혹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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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납품업체 선정 등을 대가로 25억여 원의 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조영주 KTF 사장에게 부당한 인사청탁을 했다는 통신업체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진위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주변 인사들도 사정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검찰이 두 전직 총리의 재임시절에 임명된 고위직 공무원과 공기업 임원 등 지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몇몇 인사들의 비리 혐의를 포착했다는 게 소문의 골자다. 또한 검찰은 이기우 김평수 전 교원공제회 이사장에 대한 수사도 벌이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기존 ‘사정 리스트’에 거론됐던 인사들 외에 새로운 ‘거물급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 이 리스트에는 구 여권뿐만 아니라 여권과 전·현직 사정기관 고위관계자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정·관계에 거센 사정태풍이 몰아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구 여권 인사 중에는 참여정부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A 씨와 B 씨가 대표적이고 여권 인사로는 실세로 통하는 C 씨와 중진인 D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부 전·현직 사정기관 고위직도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기자와 만난 검찰 고위관계자는 “얼마 전 전·현직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들의 실명이 게재된 로비 명단을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안다”며 “이 명단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전·현직 사정기관 고위직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일부 인사에게는 적잖은 비자금이 전달된 정황이 적시돼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검찰을 비롯한 모든 사정기관들이 경쟁하듯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사정 의지를 받들고 있는 배경에 일부 전·현직 사정기관 고위직 인사가 리스트에 포함돼 있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검찰은 해당 사정기관 관계자 관리 명단 자료를 철저히 검토한 뒤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적극 검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각 사정기관들이 검찰 수사 향배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법무부가 오는 11월까지 ‘사회지도층 비리척결 합동수사 TF’를 신설하겠다고 나선 것도 고위공직자에 대한 사정작업을 보다 엄격하고 체계화하기 위한 포석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각 사정기관들이 해당 기관 인사들의 비리 혐의가 포착됐을 경우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것이다.
TF는 검찰을 중심으로 경찰, 국세청, 정부부처 등의 전문 인력이 참여하고 수사대상은 사회 지도층과 공직자 비리뿐만 아니라 기술유출, 국제 금융범죄 같은 각종 대형 사건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일각에선 가뜩이나 전 방위적인 사정 정국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정부가 초강력 사정기관을 신설하려는 배경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비리 공직자에 대한 이 대통령의 강력한 사정 의지와 맞물려 사정 충추인 검찰에 한껏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사정당국의 드라이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비리에 연루된 사정기관 관계자들을 먼저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고육책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동안 주춤했던 사정당국의 칼날이 구 여권을 넘어 여권과 사정기관 관계자들까지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시 날을 세운 사정당국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여의도 정가와 과천청사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