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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현재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로 우뚝 솟아 있다

이경희330 2008. 9. 30. 23:14

[대세론] 박근혜 최상의 컴백 시기 배부른 고민 중
‘대권 밥상’ 숟가락 뜨는 게 문제야
지난 6월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 뜨거운 취재 열기가 박 전 대표의 인기와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대권 차기 주자를 거론하는 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최근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벌써부터 ‘대세론’이 거론되는가 하면, 여권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 그룹 일부가 박 전 대표에게 줄을 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현재 판세대로라면 박 전 대표가 다음 대선 판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박 전 대표는 한껏 몸을 낮추고 ‘지하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자칫 오버해 위로 튀어 올랐다가 이명박 정권과 후발주자들의 집중 난사에 고꾸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다고 해도 정교한 전략과 전술 없이는 대권의 깃발을 꽂을 수 없다. 그래서 박 전 대표는 비록 공개 행보를 자제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지난 한나라당 경선 때 자신을 도왔던 참모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특히 그의 오랜 참모들이 한 번씩 회합을 가지면서 논의하는 가장 큰 화두는 바로 박 전 대표가 ‘언제’ 화려하게 정치 일선에 등극해 대선 판을 주도해나가느냐에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조급증’과 ‘실기’라는 양갈래길 앞에서 어떤 최상의 컴백 시기를 택할 수 있을지 진단해보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현재 한나라당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로 우뚝 솟아 있다. 국민들의 눈에는 그녀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5년 장기 레이스에서 박 전 대표가 끝까지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보는 정치권 인사들은 많지 않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노출했기 때문에 뜻밖의 신선한 대권주자가 나타날 경우 불의의 일격에 침몰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전 대표는 대권 판세가 확실하게 짜인 뒤라든지,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대권 구도의 그림이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상대의 패를 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베팅을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지난번 대선 레이스를 잘 보라. 2004년부터 2006년까지의 전반전은 확실히 박 전 대표의 판이었다. 17대 총선에서 탄핵 정국임에도 한나라당을 극적으로 구한 ‘박다르크’가 가장 확실한 차기 대권주자였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 잠룡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6년 10월경 이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박 전 대표는 당 대표로서 이미 그의 모든 동선과 전략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반면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에 비해 언론 노출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막판 역전극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박 전 대표가 서울시장을, 이 대통령이 당 대표를 맡았다면 경선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이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 초반에 너무 일찍 대권주자로 부상했더라면 BBK 의혹 등으로 일찌감치 무너졌을 가능성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의 말을 종합해보면 지난 경선 때 ‘다 잡았던 고기’를 놓쳤던 가장 큰 이유로 ‘전국적 대선 조직’ 부재와 ‘당 장악’을 하지 못했던 것과 함께 너무 일찍 대권 레이스에서 부각된 것을 꼽고 있다. 이런 박 전 대표 측의 경선 패배에 대한 자기반성은 다시 대권 레이스에 들어선 그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이명박이라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없어졌기 때문에 대권 레이스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그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과연 언제 화려하게 정치무대의 전면에 등장하느냐’라는 명제로 귀결된다. 현재로선 여야를 통틀어 박 전 대표를 견제할 만한 확실한 차기 주자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등장 시기 선택만이 가장 중요한 대선 변수가 되고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모든 참모조직들을 해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지난 총선 ‘공천전쟁’ 등을 거치면서 옛 경선 조직들이 복원되고 있다. 그이후 상황이 박 전 대표에 대한 ‘박해’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박 전 대표가 총선이 끝난 뒤 자신을 보좌했던 특보와 참모들을 중심으로 특보단 비밀회의를 부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달에 몇 차례 열릴 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회의의 구성원은 대부분 지난 경선 때 자신을 도왔던 핵심 참모들이다. 이들은 정권이 바뀐 뒤 ‘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 핵심’이라는 이유로 정부나 공기업 등에 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어렵게 개인사업 등을 하고 있지만 박 전 대표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 전략회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옛 참모들은 박 전 대표와 직접 회의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최측근 그룹인 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과 함께 수시로 모여 대선 전략을 짜고 있다고 한다.

이 회의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현재 특보단 회의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박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유지할 것’인지다. 지금으로서는 이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여당 내 야당 지도자’로서의 행보를 걷는 게 최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여당의 가장 확실한 대권주자라는 프리미엄을 스스로 걷어차 버릴 이유는 없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가 불편하다고 해서 스스로 당을 버리고 허허벌판에 나앉을 이유는 없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여당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 이 대통령이 가장 혹독한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당내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화끈하게 도와줘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로 친이 그룹을 아우르면서 일시에 ‘등극’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니겠는가. 우리의 대권 전략 구상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을 도와줄 그 ‘시기’가 바로 문제다. 지금은 물론 때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로서는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의 위기를 잘못 인식해 가볍게 움직이다가 그와 함께 침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정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전 대표.

이 인사의 말에 따르면 박 전 대표의 정치무대 전면 등장 시기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빠르면 내년이라도 이 대통령이 장담했던 경제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와 그것이 정권 출범 최대의 국정 운영 위기로 이어진다면 이 대통령으로선 전면 개각 등의 난국 돌파 카드를 꺼내들어야 한다. 이 경우 박 전 대표가 총리 제의를 수용하고 ‘친이-친박’ 연립 정권을 구성해 이 대통령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다. 이때 친이 그룹으로부터 ‘차기 대권주자 용인’이라는 빅딜 카드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이 대통령의 위기를 전제로 한 데다 박 전 대표 측이 그 위기의 경중을 어떤 식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이 매우 어렵다. 또한 설사 이러한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 대통령이 손을 든 경제 회생 실패의 구조적 난국을 박 전 대표라고 해서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박 전 대표로서도 쉽게 이 대통령이 위기에 빠졌다고 해서 후다닥 달려가 같이 어깨를 걸고 전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표 측이 고려하는 정치무대 전면 등장의 두 번째 시기는 2010년 지방선거를 즈음해서다. 정치권에서도 이때가 박 전 대표의 컴백에 가장 적기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박 전 대표의 핵심 전략 참모이자, 최근의 비밀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요즘 박 전 대표가 언제쯤 대권 행보를 이어갈 것인지를 두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진다. 참모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시기가 바로 지방선거를 전후해서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별로 공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또한 박 전 대표는 일부 인사들이 자신을 등에 업고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고 조기 컴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부정적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가 자칫 컴백 시기를 두고 실기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복귀 명분이 가장 성숙했을 때 결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친박 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미 당내에서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지난 기초단체장 선거나 서울시교육감 선거 등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보수층이 대거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 때까지 ‘지지율 20%대 박스권(지지율이 일정한 폭 안에서만 움직일 때 그 폭내의 범위) 대통령’으로 주저앉을 경우 박 전 대표가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 전 대표는 난국에 처한 보수세력의 새로운 해결사로 부상해 차기 대권을 잡는 가장 확실한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일부 참모들은 지방선거 전후 부상 방안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지방선거보다 더 중요한 19대 총선이 대선을 치르는 2012년 같은 해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때는 총선 결과도 결과지만 친이 그룹과 친박 그룹의 총선 공천전쟁 제2차전이 벌어질 개연성이 높고, 또 그 결과에 따라 당내의 대권 구도도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표의 한 참모는 이에 대해 “지방선거보다 변수가 더 많은 19대 총선을 전후해 정치무대에 전면 등장해야 맞다. 왜냐하면 19대 총선 공천 전쟁에 올인해 당을 장악해야 그해 여름에 치러질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무난히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친이 그룹 진영에서도 최근의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19대 총선 공천전쟁 전략을 꺼내들고 있다. 친이 그룹 소장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로선 박 전 대표가 모든 것을 먹는 구도 아니겠는가. 방법이 많지 않지만… 이런 시나리오를 구상해 볼 수 있다. 2012년 19대 총선 공천 때 친박 세력과 전면전을 벌여 승리하는 것이다. 그때 친이 그룹이 다시 당을 장악해 친박 세력을 압박, 박 전 대표 스스로를 탈당시키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권 3자 구도’가 돼 박 전 대표의 집권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권 말기인 2012년 이 대통령의 인기가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다면 친이 그룹이 희망하는 총선 공천전쟁 승리도 요원하다. 이렇게 되면 박 전 대표 측으로서도 차라리 지방선거 때 건곤일척해서 승부를 내는 것보다 이 대통령의 힘이 확실하게 빠졌을 때인 2012년 총선을 전후로 해서 차기를 보장받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친박 그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레이스 때 초반 레이스에서 너무 앞서나가 역전을 허용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레이스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최대한 독주 체제를 늦추고 몸을 낮춰야 한다. 박 전 대표의 정치무대 전면 등장 시점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사실 박 전 대표의 대권무대 전면 등장은 어려운 선택의 문제다. 그가 너무 뜸을 들인다면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 국가 위기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라는 비난이 돌아온다. 하지만 너무 일찍 몸을 움직이면 “벌써부터 대권 도전에 들어가 과열현상을 부추긴다”라는 뒷말이 나올 것이다. 한 정치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시기 선택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위기와 궤를 같이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보다는 국가를 위해 어떻게 헌신할 것이냐는 지도자의 대의명분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일요신문> 8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