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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연설’, 전파 낭비 비판·반론권 소동에 소재 고갈까지 ‘진퇴양난’

이경희330 2008. 12. 29. 23:16

   
▲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위해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라디오 연설은 잘 알려진 대로 1930년대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를 통해 ‘뉴딜 정책’을 소개했던 ‘노변담화(爐邊談話)’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라디오 연설은 참신하고 효율적인 대국민 홍보책을 원하던 청와대에 구원투수가 되는 듯했다. 이대통령이 대국민 스킨십 강화 차원에서 시도한 특별 기자회견, 대국민 담화문에 대한 반응이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마련한 ‘대통령과의 대화’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치렀지만 말 실수를 줄이려 정제된 발언만 하다 보니 ‘밋밋하다’ ‘지루하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짜여진 각본대로 한다’ 등 비판을 받았다. TV에서 별 재미를 못 본 청와대가 라디오로 눈을 돌린 이유이다.

금융 위기 여파로 한숨 짓는 서민들에게 대통령이 직접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취지로 박형준 홍보기획관이 총대를 멨다. 박기획관은 대선 당시 이대통령의 캠프 대변인으로 맹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대통령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을 누구보다 잘 끌어낼 수 있는 참모라는 평을 받는다. 라디오가 새 정부의 최대 지지층인 보수층의 향수를 자극할만한 매체라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이다. 

1차 라디오 연설 주제는 예상대로 ‘경제’였다. 이대통령은 10월13일 첫 방송에서 “비가 올 때는 우산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조금만 도와주면 살릴 수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흑자 도산을 막으려면 은행이 소극적인 대출 관행을 버려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이대통령은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또 무슨 우울한 소식이 없는지 걱정이 앞선다”라며 지도자로서의 압박감도 토로했다.

중소기업 경비원이었던 아버지의 일화를 예로 들며 기업이 도산하면 구성원의 가족에게 미치는 악영향도 역설했다. 이는 국민에게 친근하고 소탈하게 다가서려는 ‘감성적 접근법’의 일환으로 해석되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아날로그 화법으로 IT 시대의 감성을 어루만졌다”라고 자평했다.

2차 연설의 화두는 중소기업 흑자 도산과 한·미 통화교환 협정이었다. 이대통령은 1차 연설 때와 달리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직행했다. 이대통령은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라도 원화를 주고 달러를 갖다 쓸 수 있게 되었다”라고 통화 스와프 계약을 설명한 뒤 “일단 외화 유동성에 대한 우려는 거의 없어졌다”라고 단언했다.

3차 연설은 미국에서 녹음했다. 당시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던 이대통령은 11월15일 현지에서 녹음을 마쳤다. 3차 연설에서 이대통령은 “불이 났을 때는 하던 싸움도 멈추고 모두 함께 물을 퍼날라야 한다. 단합이냐 분열이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금융 위기 타개책으로 ‘초당적 단합과 세계적 시야’를 제시한 것이다.

“자신의 경험만 앞세워 청년 실업자 매도한다”

4차 연설에서는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역설했다. “청년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지금은 생각을 새롭게 해 신발 끈을 조이고, 어디든 용기 있게 뛰어들어야 할 때이다. 상황을 탓하면서 잔뜩 움츠린 채 편안하고 좋은 직장만 기다리는 것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라고 조언했다. 이대통령은 또 “극히 일부 젊은이들의 얘기이지만, 임시직으로 일할 망정 지방 중소기업에는 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긴 장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우려했다.

이대통령의 ‘라디오 정치’는 이제껏 격렬한 찬반 양론을 몰고 왔다. 일단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1차 연설에서의 감성적 접근은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으로 치환되었다. 4차 연설에서 “신발 끈을 조이고 뛰라”라고 역설한 부분은 “신발 끈을 조이고 싶어도 뛸 곳이 없다”라는 빈축을 샀다. 자신의 경험만 앞세워 청년 실업자들을 ‘대기업에만 목 맨 어리석은 젊은이들’로 매도한 구석이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대통령의 구태의연한 상황 인식은 민심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비판으로 되돌아왔다. 국민과의 소통이 불통(不通)되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형식도 문제가 되었다. 지금은 격주 월요일로 정례화했지만 1차 연설 직후까지도 연설의 시기와 횟수가 결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월 1회, 주 1회 방안도 고려되었지만 결국, 월 2회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청와대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전파 낭비’ 논란이었다. 청와대는 비판 여론이 거세자 청와대가 방송 매체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설 녹음본을 원하는 방송사가 청와대에 신청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래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2차 연설부터 녹음본 제공권을 KBS측에 일임했다.

청와대에서 녹음한 이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파일을 KBS측에 제공하면, KBS가 각 언론사들의 신청을 받아 제공하는 형식이다. 1차 연설의 경우 KBS, YTN, CBS, BBS, PBC, TBS, TBN 등 여러 매체에서 방송되었지만, 2차 연설부터는 KBS 1라디오와 교통방송이 주로 방송했다. ‘전파 낭비’ 비난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강행하는 것이 각 언론사에 부담으로 돌아온 것도 방송 매체가 줄어든 이유 중 하나이다.

반론권 보장 문제도 뜨거운 감자였다. 대통령이 방송을 독점한다는 비난과 함께 야당의 반론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KBS는 결국,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반론 방송을 편성했지만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면서 논란에 불을 당겼다. 박대표는 이대통령의 4차 연설 다음 날인 지난 12월2일 방송에 출연했다. 결과적으로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찬조하는 모양새가 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 연설 찬조하는 방송하다 비난받기도

민주당 조정식 대변인은 즉각 “대통령을 위한 일방적 홍보 방송에 야당의 반론권이 정당하게 보장되지 않으면 반론 연설을 거부하겠다”라고 밝혔다. 같은 당 김유정 대변인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반론권인가 보충 발언인가. KBS는 대통령의 연설에 여당 대표 반론권이라는 전대미문의 코미디를 자행하지 말고 야당에 정당하고 공정한 반론권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KBS가 반론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청와대는 라디오 연설 소재 고갈로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연설 취지가 정부의 입장을 지속적이고 쉽게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인 만큼 소재 고갈로 고민하고 있다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처음부터 ‘경제’라는 큰 범주 안에서 소주제만 다양하게 변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 대한 비난 여론을 극복하고 국민과의 소통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선주 (뉴시스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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