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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득 의원(오른쪽)은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자 대통령의 형이라는 위상 때문에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시사저널 이종현 |
‘상왕(上王) 정치’ ‘만사형통(萬事兄通)’ ‘영일대군’. 올 한 해 정치권에 등장한 대표적인 신조어들이다. 한 사람을 의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다. 그는 6선 의원이지만 당직이나 국회직을 맡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의원은 올해 정치권 최대의 화제 인물이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의 중심에 올라 ‘대통령의 형’으로서 정치적인 위상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었다. 이의원은 한마디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다. 지금 같은 체계에서는 누구도, 그 어떤 기관도 그를 견제할 수 없다.
‘상왕(上王) 정치’라는 말은 정치권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이의원은 친이명박계 의원들은 물론 소장파부터 중진까지 ‘친박근혜계’ 의원들을 두루 접촉하며 화합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권 창출의 일등 공신이자 대통령의 형이라는 위상 때문에 당사자들은 그의 말을 곧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정치 영역에 관한 한 이의원이 대통령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이 돈다.
‘올드보이들의 부활’ 싸고도 ‘역할설’ 끊이지 않아
이명박 정권 곳곳에는 ‘이상득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보와 인사를 주무르는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국가정보원, 국무총리실 등의 핵심 라인에는 그와 가까운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등 그와 얘기가 통하는 ‘원로’들 또한 여권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6선 의원으로 지난 2002년 민주당 선대위 고문을 지냈던 이기택 전 의원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으로 재기한 것이나, 지난 12월11일 이재환 전 의원이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것 등 이른바 ‘올드보이들의 부활’과 관련해서도 그의 역할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무위원회와 관련 있는 내용의 문건을 읽다 사진에 찍혀 입방아에 올랐다. 문건의 출처가 어디냐를 떠나 정치권에서는 이의원의 ‘정보 정치’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은 ‘형을 통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라는 의미이다. 이의원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현 정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줄을 댄’ 사람들 가운데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진출한 이들이 있다. 한 종교계 인사는 공기업에 진출한 한 인사를 거론하며 “여러 군데 줄을 댔는데 안 되었다. 이의원 쪽과 연결이 되니 일이 되었다. 역시 힘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의원 쪽의 사정을 아는 한 인사는 대기업으로 간 인사와 관련해 이의원이 기업 쪽에 부탁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기업 쪽에서 이의원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달라”라는 요청이 온다고 설명했다. 뒤집어보면 기업들도 그와 인연을 맺고 싶어 한다고 볼 수 있다. 관료들 또한 그를 만나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를 지칭하는 ‘영일대군’은 ‘봉하대군’과 비견되는 용어이다. 최근 구속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평소 ‘봉하대군’으로 불렸다. 김해 봉하마을에 살면서 인사 청탁이나 이권에 개입하는 등 힘을 썼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이의원의 고향을 빗대어 ‘영일대군’으로 불린다. 그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반증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친인척 관리 대상 1호’이다. 하지만 그를 관리해야 하는 책임자는 그의 비서실장을 지낸 장다사로 민정1비서관이다. 잘 알기 때문에 잘 관리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잘 알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의원이 중심에 서서 오히려 대통령의 친인척들을 다독이며 챙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의원은 지난 4월 총선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수도권 소장파들을 중심으로 한 55인이 ‘이상득 불출마’를 요구하는 일을 겪었으나 굳건히 살아남았다. 6월에는 정권 창출의 또 다른 공신인 정두언 의원이 권력을 사유화한 당사자로 류우익 당시 비서실장과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지목하며 그 배후에 이의원이 있다는 암시를 한 바 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조용하지만 여권 물밑에서는 ‘형님 정치’ ‘형님 인사’에 대한 불만이 폭넓게 잠재되어 있다. 이의원은 개인적으로 미워하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화합형의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대통령의 형’이라는 데서 연유한 정치적인 관계는 숙명적인 부분이 있다.
지난 12월13일 처리된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서는 ‘형님 예산’ 논란도 불거졌다. 야당의 정치 공세 성격도 있지만 실제로 그의 지역구인 포항 지역과 관련 있는 SOC 예산은 지난해보다 95% 늘어난 4천3백70억원이 책정되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대통령은 대운하 예산을 챙겼고, 형님은 형님 예산을 챙겼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거론되는 ‘형님’ 논란은 이 문제가 언제든 여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나라당의 한 친이명박계 의원은 “내년 초 개각과 관련해서도 이의원의 실질적인 2선 후퇴 여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여전히 이의원이 인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라면 얼굴은 바뀔지 몰라도 내용은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인사는 친소 관계, 정실을 떠나 경제 위기를 헤쳐갈 수 있는 최고의 인사들을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의 정치 권력이 진공 상태가 된 데도 한몫 해
‘이명박 권력’의 세 축 가운데 이재오 전 의원이나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그룹에서는 이의원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최근 이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이 이들을 잇달아 접촉하면서 화해를 도모하고 있으나 ‘권력 주체로서의 이상득’이 존재하는 한 화학적으로 결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은 이의원이 2선으로 후퇴해야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 2기를 열어나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이들의 희망대로 굴러갈 것 같지는 않다. 권력 투쟁 성격도 있는 데다가 정권 창출의 공신, 이미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 등이 겹쳐지면서 이의원의 힘이 유지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여권 내에서는 또 한 차례 ‘이상득 파동’이 일 수 있다.
지금 여권의 정치 권력은 진공 상태이다. 이렇게 된 데는 ‘형님 이상득’이 한몫을 했다. 공식 직책이 없으면서도 힘을 쓰는 구조를 그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의원이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은 그렇게 가고 있고 사람들도 그렇게 보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한다. 권력의 이중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의 위치는 여권 내 원로 그룹들의 위상과 친박근혜-친이명박·친이명박 그룹 내의 갈등 구조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와 맞물려 있다. 정치권 내부뿐 아니라 사회적인 갈등이 커질수록 그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많아질 것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그래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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