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재임시절, 노 대통령에게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고, 대통령 앞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해 '엽기수석'이란 별명을 얻었던 유인태 의원이 한 중앙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盧정권과 진보,개혁 세력의 지난 5년 동안의 독선과 오만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대선에 연이은 총선에서의 패배를 겸허히 수용했다.
盧정권의 신주류로 위세를 떨쳤던 386주사파의 버르장머리에 혀를 내둘렀던 나는 그러나 유 의원에게만큼은 늘 알 수 없는 호감을 갖고 있었다. 나의 그런 호감은 유 의원의 구수한 용모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상식과 합리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자라는 점이다. 그는 盧정권의 탈레반(386주사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성숙한 안목을 갖춘 인물이었다.
유 의원은 진보,개혁 세력의 오만과 독선의 한 단면을 국보법폐지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탈레반들의 강경함에서 찾는다. 그들의 입장에선 당위였겠으나 국보법폐지를 우려하는 세력이 엄존하는 현실 속에서 당시 이부영 당의장이 한나라당 지도부를 설득하여 만들어 온 '타협안'을 내부 강경파가 단호히 거부했다면서 "한마디로 철부지들이었다!"고 혀를 찼다.
그 철부지들을 통제할 수 없었느냐는 질문에 유 의원은 盧대통령이 당,청 분리라며 당에 대한 통제를 포기했고, 그런 이유로 17대 의원들에겐 무한대의 자율이 주어졌는데, 그것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흘렀다면서 "말이 여당이지, 당 상황은 무질서로 치달았다"고 혼돈과 방종으로 일관했던 당시의 여권 상황을 설명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 유 의원의 고심이 엿보인다.
유 의원은 "盧대통령이 임기후반에 접어들수록 인사(人事)에서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갈수록 오기와 독선에 빠져 들어갔다" 면서 "임기 말에 추진한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대해 당시 여당의 원로와 의원들, 대선후보들까지 모두 반대하고 말렸는데도 무조건 밀어붙였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또 "盧대통령은 아마 인터넷과 노사모가 없었다면 그냥 평범한 정치인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며 "여당 원로들이 전하는 여론보다 인터넷을 더 중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언젠가 인터넷 논객들이 옥상옥(屋上屋)에 위치하여 실세 권력자를 리모콘트롤 하려는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유 의원은 "운동권 출신에 대한 피로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국민들이 운동권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게 아니라, 지난 5년간 우리가 보여준 오만과 독선 같은 잘못된 행태에 벌을 준 것이다" 라며 "경직된 진보는 안 된다. FTA 반대한다고 단식 농성하는 그런 진보로는 통하지 않는다. 시대 흐름에 맞게 유연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5년 후 대선에서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후보군이 나와 줘야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낡은 틀에 경직되지 않은 새로운 진보가 나와야 한다"고 진보,개혁 세력의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다시 말해서 盧정권을 풍미했던 386주사파는 진보,개혁의 탈을 쓴 수구좌파세력에 불과했음을 적나라하게 밝힌 것이다. 거침없는 유 의원의 비판에는 아무런 가식이 없어 보였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4년 5개월간 복역했던 유인태는 더 이상 박정희, 전두환 때의 그가 아니다. 그는 민주화되고 선진화된 조국의 현실에 걸 맞는 진보주의자로 여러 차례 거듭났다. 보수가 도덕성을 견지하는 세력이라면 진보는 도덕성의 화석화를 견제하는 세력이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는 서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계다.
진보가 없는 보수는 부패와 전횡으로 몰락할 것이고, 보수가 없는 진보는 무질서와 방종으로 몰락할 것이다. 제대로 된 보수와 제대로 된 진보가 자리 잡아야 그 사회의 미래가 밝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으로의 정권교체는 제대로 된 보수가 이 땅에 정착할 것이라는 소망을 준다. 같은 의미로 유인태에게서 제대로 된 진보의 모범을 본다. 유 의원의 건투를 빈다.
베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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