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방

워낭소리

이경희330 2009. 3. 3. 00:18

 

 (c) 사진 강원택 

 

지금 한국 ‘소’ 한마리가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독립 다큐영화로 제작된 ‘워낭소리’가 엇그제 관객 200만명을 넘어서는 ‘대박’을 터트렸다. 일반 영화로 하면 관객 1,000만에 필적할만한 성과로 여겨지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까지 관람을 했다는 기사도 나오고, 관람 후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들마다 눈시울을 붉히며 최대의 찬사를 던지는 등, 그야말로 2009년 소띠 해의 서막이 ‘소’ 한마리 등장으로 후끈 달궈졌다.

 

각계 전문가들도 ‘워낭소리의 힘’을 운운하며, 한국 영화 차원에서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느니, 정치적으로 워낭소리에 담긴 소통과 교감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느니 나름대로 그 의미를 사회와 삶에 적용시키려 앞을 다툴 정도다.

 

물론 영화 내용은 대충 듣기만 해도, 예고편만 봐도 짜릿하게 와닿는다. 소의 수명이 길어야 15년이라는데 영화에 나온 소는 무려 40년을 살았단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하는 그 소와 역시 생의 마감을 가까이 앞둔 팔순 노부부가 주인공이다. 30년을 동행해온 소와 노부부의 교감 및 소통의 대명사인 워낭은 소 턱밑에 걸어놓는 작은 ‘방울’을 말한다. 주인과 의사 전달을 하는 ‘소리’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 소에게 주어진 노동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인 최 노인은 더는 살 수 없는 소를 위해 마침내 워낭과 코뚜레를 풀어준다. 그러면서 마지

막으로 던지는 말이 ‘좋은 데로 가거라, 고마웠다’였다. 영화 포스터에도 써 있는 ‘고맙다, 고맙다, 참말로 고맙다’라는 카피가 영상 그대로 와닿는 순간, 감동이 밀려오게 된다.

 

이 순간까지 소와 최 노인은 말년을 함께 걷는 동행자였고 말없이 대화를 나누는 벗이었을 터. 그렇기에 죽는 순간까지 소는 노부부가 겨울을 보내는데 필요한 땔감 하나라도 더 마련해 놓고 떠나려고 매일 나무를 하러 노인과 함께 길을 나섰었다. 거동이 쉽지 않은 노인도 그 소를 끌고 밖으로 나가 느릿 느릿 같이 걸으며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을 보냈다. ‘희생만 하는 엄마의 눈은 소의 눈을 닮았다’는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소는 주인을 위해 끝까지 수고하고 동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죽어도 몇번을 죽었을 나이가 된 소를 ‘고기로 먹을 수도 없어서’ 사겠다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할머니 성화 때문에 우시장에 팔러 나가는 순간에 할아버지도 속으로 울고 있었고, 소는 실제로 그 큰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마지막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다가 주인이 수십년 노동의 짐인 워낭을 벗겨주자 소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 순간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냉혈한일 것이다.

 

영화적인 관점에서의 워낭소리의 성공에 대해서도 반갑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이 영화에 나오는 소의 모습에서 긍정적인 철학과 사고방식을 유추해 내는 계기가 된 듯 해서 더 반갑다. 영화를 본 사람들마다 한국형 영화로서 향토적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요소들로만 채워진 영상에서 활력을 찾았다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마치 신선한 산소공급이라도 받은 듯이.

 

그동안 무엇이 우리에게 부족했었기에 워낭소리에서 이토록 큰 감동을 받게 된 것일까. 묵묵한 희생정신일 수 있다. 느릿 느릿 걷지만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애정일 수 있다. 서로 버리지 않고 보듬고 함께 걷는 동반자에 대한 감사와 보답일 수 있다. 목에 걸려있는 워낭을 풀어주는 순간까지 서로를 아껴주고 서로를 진정으로 위하는 배려일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한국산 ‘소’의 순박하면서도 큼직한 눈망울에서나마 그 해답을 찾아내고 있다는데 대해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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