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좌익의 소리

오바마와 이명박, < 발가락이 닮았다 >

이경희330 2008. 11. 6. 23:26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자와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꼴"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을 미국 차기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비교해 한 말이다. 외교안보전문가들을 초청해 함께한 오찬 자리에서 한 발언이라고 한다. 청와대도 뒤질세라 이 대통령의 자평과 거의 비슷한 맥락의 논평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은 대선 이후 일관되게 변화와 개혁을 국정 운영의 중요한 가치로 삼아 왔으며,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은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닮은 점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이 닮았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과격촛불시위반대시민연대'같은 단체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오바마와 이명박은 동류'라고 말한다. 둘 다 '이념보다는 실용을 중시하기' 때문이며, '이미지보다는 콘텐츠'로 승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서로 이해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이 단체는 낙관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보도된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이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더불어 비주류에서 일약 주류로 부상한 점, 개혁과 변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점에서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두 사람이 경선에서 여성 라이벌을 누르고 대선 후보가 된 것 등도 닮은 점으로 제시했다.

 

진정성도, 외교적 실리도 없는 기회주의적 발언

 

이러한 논의는 매우 구차하게 느껴진다. 굳이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닮았다고 말하는 발상에는 열등감 또는 사대주의가 깔린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닮았다'는 주장에 맞서 '안 닮았다'고 하는 주장하는 것도 구차하기는 오십보백보다.

열등감과 사대주의는 추종하는 대상에 대한 근거 없는 동일화를 시도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저 한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답고 미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다우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오바마는 이제 갓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다. 그가 미국인과 세계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최악의 경우 그는 부시만큼이나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그에게 기대하는 것과 그를 인정하는 것을 별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실용을 중시한다면 무의미한 말장난 대신 객관적이고 냉정한 현실 인식이 우선이다. 이런 점에서 생뚱맞게 '닮은꼴' 운운하는 것은 진정성도 없어 보일뿐더러 외교적인 실리 면에서도 무용한 일처럼 보인다.

 

자꾸 비교하려는 심리는 무엇인가

 

특정 두 대상의 닮은 점을 찾아 밝히는 논리적 행위를 '비교'라고 한다. 그런데 비교라는 것은 두 대상이 아닌 제삼자가 해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교 대상인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차기 미국 대통령과 비교했다는 것 자체가 적잖이 우스꽝스럽다.

비교는 유사점이나 차이점을 밝히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굳이 오바마 당선자와 닮은 점을 찾으려는 것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알려 줄 따름이다. 그렇다면 오바마 당선자와 이명박 대통령은 서로 얼마나 다르기에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혜민 외교통상부 한미FTA 교섭대표는 5일, "오바마 후보는 원칙적으로 보호무역주의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오바마가 원칙적인 면에서는 자유무역주의자이지만 보호무역주의자의 성격을 상당히 띠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데, 바로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레이건·부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시장 근본주의자이다. 반면 오바마는 이번 금융 위기가 가시화되기 전부터 경제 위기의 뿌리가 부시의 시장 근본주의에 있다고 공박해 왔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레이건과 부시를 따라 시장에 대한 규제를 풀기에 여념이 없다. 반면, 오바마 당선자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두 사람은 경제 활성화의 방법론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로 고소득자 위주의 감세를 통해 경기를 진작하려고 하지만 오바마는 고소득층에 대해 증세하면서 중하위 노동자와 은퇴자에 대한 재정 지원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벌과 기업을 대폭 지원하고 그들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면서 노동조합을 백안시하지만, 오바마는 대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을 폐지하고 노동자의 단결권 강화와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 조건 개선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현행 의료보험체제를 민영화하려 하고 있지만 오바마는 정반대로 민영화 체제를 혁신하여 전 국민 대상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은 금융산업을 육성하려 하지만 오바마는 제조업을 더 중시하겠다고 공약했다.

 

견강부회도 유만부동... 부시는 어떡하라고

 

레이건 이래 부시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신자유주의라는 무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개발도상국들에 자유무역을 강요해 왔다. 장하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이른바 '나쁜 사마리아인'이었다.

자유무역은 집요하게 국가 간 무역 장벽을 해체해 왔다. 놀랍게도 오바마는 이 자유무역의 기조를 유보 또는 포기하려고까지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미국 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일로서 거의 보호무역적인 성격을 띤다. 오바마가 한미FTA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FTA를 하루라도 빨리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대북 문제에서도 오바마 당선자와 이명박 대통령은 차이를 보인다. 오바마는 부시가 '악의 축'이라고 지목했던 나라와도 직접 대화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한겨레>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북한이 내 욕 하는데 왜 가만히들 있느냐"고 말했다고 한다(<한겨레> 보도 후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다). 오바마는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것을 핵과 연계시킨다. 마치 일본이 납치자 문제를 빌미로 북한과 관계를 지연시키고 있는 것과 흡사한 형국이다.

이와 같이 오바마 당선자와 이명박 대통령은 크게 다른 축에 속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은 레이건이나 부시를 닮아 있다. 반면 오마바의 정책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선과 통한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과 청와대가 황당한 말을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면역 효과 덕분인지 이제는 크게 개의치 않지만, 오바마와 비교한 발언은 황당함을 넘어 연민마저 느끼게 했다. 그 발언을 들으면서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 M이 떠올랐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기가 자기와 셋째 발가락이 닮았다'고 스스로 위안하던 그에 대한 안쓰러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