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대통령 후보 부인들이 기존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단정하게 짧은 헤어스타일 대신 관능적인 긴 머리에 가슴이 V자로 파인 일명 '가슴골 패션'을 입고 남편의 캠페인을 적극 돕는 모습들이 언론에 부각되고 있다.
뉴욕 전 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의 부인은 남편의 홍보를 위해 여성잡지 표지에 가슴과 종아리 부분을 훤히 드러낸 드레스를 입었고 존 매케인 후보 부인은 TV인터뷰에 여배우처럼 진한 화장과 가슴노출 된 대담한 의상을 입고 나와 목까지 단정히 올라온 정장을 한 여성 앵커를 무색케 했다. 이처럼 당당한 '섹스 어필'을 후보 당사자인 남편들은 오히려 십분 활용하고 있고 할리우드 문화에 이미 젖어있는 유권자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여성 대선 후보 당사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그들과 똑같은 가슴골 패션을 하고 상원 본회의에 나타나자 여기저기서 비난이 쏟아졌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제껏 보수적 패션을 고수해오다가 왜 갑자기 여성다움을 나타내려는 지 모르겠다"며 섹스 어필의 '저의'가 뭐냐고 비난했다. 힐러리를 지지해오던 블로거들도 "힐러리 당신마저 노출패션이냐"며 "이제까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말고 다시 옛 의상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글들을 앞다퉈 올렸다.
똑같은 패션을 대선 후보 부인들이 입을 땐 긍정적이지만 정작 후보 당사자 여성인 힐러리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미국이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나왔다며 여권신장의 승리라 평하지만 실제 내용적으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힐러리 자신을 봐도 알 수 있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에는 눈에 띈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색상에 가슴부위를 강조하는 독특하게 큰 디자인의 단추를 즐겨 달던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이 미국을 이끌 때가 됐다"고 출마선언을 한 후부터는 남성적 강한 이미지를 주는 바지차림의 정장을 주로 했고 헤어스타일도 짧은 커트로 바꿨다. 이번에 '가슴골 패션' 사건(?)도 라이벌인 민주당 에드워즈 후보 부인이 "세계 지도자가 되기 위해 너무 터프하게 보이려 애쓰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린 것에 대한 임기응변식 반격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비판이 거세자 다시 옛 의상으로 돌아가 여성다움을 감춘 것을 보아도 진의를 알 수 있다. 힐러리의 이번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최고의 지도자는 '(여자는 된다고 해도) 여성성은 안된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사회학자들이 '미국 여권신장의 현주소'라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0년~70년대 사회진출을 시작한 여성들이 남성과 경쟁하기 위해 스스로의 여성성을 감추려고 단화와 바지를 입다가 본모습을 되찾아 하이힐과 립스틱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것이 바로 '여권신장'의 발단이다.
그후 섹스 어필을 강조하는 할리우드 문화의 붐이 여권신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그 결과가 이번 캠페인을 통해 나타난 후보 부인들의 당당한 성적 매력의 표현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지 대통령직은 아직 아닌 것이다.
원래의 스타일로 돌아 간 힐러리에 격분한 페미니스트들의 지적대로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고 해도 여성다움을 숨기고 당선됐다면 여권신장의 진정한 승리는 아닌 것"이다.
여성성을 그대로 드러냈을 때 색안경을 쓰고 '저의가 뭐냐'고 찾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진실한 남녀평등의 사회가 된다. 힐러리의 '가슴 패션 사건'은 이런 의미에서 미국은 아직 멀었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기자의 창] 힐러리의 '섹스 어필'
김인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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