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전 총장은 공직을 맡은 적이 없어 재산내역 등이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고양시 덕양구 쪽의 땅을 샀다는 얘기만 듣고, ‘한강 모래밭에서 바늘찾기’식의 취재에 들어간 것이지요. 노력이 헛되지 않아 드디어 어 전 총장 부인이 소유한 농지를 발견했습니다. 기자 세 명이 각자 1천여개씩의 논밭 지번을 검색한 뒤였습니다. 이후 보강 취재를 통해 위장전입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어 전 총장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신문 지면에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기사를 한참 작성하던 2월18일 오후, 어 전 총장이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결국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날 저녁 교육부 장관 후보자만 바뀐 후보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한겨레〉는 2월19일치 신문에 어 전 총장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과 후보자 탈락 배경을 분석한 기사를 실었지만, 취재에 많은 공을 들인 현장기자들로서는 솔직히 너무 아쉬웠습니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한겨레 취재 내용이 어 전 총장의 낙마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실토했다더군요.
며칠 뒤 장관 후보자들이 국회에 낸 인사청문 요청자료가 일제히 공개됐습니다. 이 자료들을 살펴보니 한마디로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대부분의 후보자가 서울 강남 등지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두세 채씩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상당수는 연고가 없는 곳에 부동산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동산 부자 내각’(2월22일치 1면 제목)을 통렬히 분석하는 기사를 시작으로 문제 있는 장관들에 대한 검증기사를 잇달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새 정부 쪽은 “재산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문제삼는 건 지나치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재산 형성 과정에서 빚어진 갖가지 불법·편법 사실이 줄줄이 드러났고, 일부 장관들의 표절 의혹, 자녀들의 국적 문제 등까지 겹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결국 세 명의 후보자가 사퇴했지만, 아직도 그 여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새 정부 쪽은 내각 인선 파동을 검증시스템 미비 탓으로 돌리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보유 부동산 목록 등 기본적인 인사청문 자료를 훑어보기만 해도 ‘이건 문제가 있겠다’는 대목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언론사 기자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안들을 검증팀이 지나쳤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도덕적 흠결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 웬만한 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도덕적 해이’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요?
〈한겨레〉는 도덕성 검증 취재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얘기를 충분히 전달하려 노력했지만 미흡한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분들이 없도록 앞으로 더욱 세심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새 정부의 장·차관급 인사는 물론, 잇따라 발표되는 모든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철저한 검증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황상철 사회부문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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