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 중심지(Financial Center)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가 황금분할해 온 아시아 국제금융시장에 강력한 경쟁 도시들이 등장했다. 두바이, 쿠알라룸푸르, 상하이, 알마티, 다롄이 아시아 금융 패권을 향한 도전장을 던졌다. 불행하게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한국의 동북아 금융허브 프로젝트는 4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천자유경제구역 내 청라국제금융센터는 물론 서울 여의도국제금융센터 역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60~80년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던 한국. 금융산업은 한 국가의 경제 동맥이라고 일컬어진다. 아시아 금융 패권을 둘러싼 ‘빅뱅’에서 한국은 과연 어떤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인가.
글·경제팀
한국 경제는 올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세계 경제 순위(33위)는 2만달러 시대(32위)에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세계 20위권 선진국이 되려면 3만달러는 돼야 한다. 매일경제시문이 지난 3월 발표한 ‘금융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3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금융산업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30%(OECD 기준)대까지 높여야 한다고 나타나 있다. 금융산업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머니게임’에서 살아남는 국가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연간 100조달러(맥킨지 추정치)의 돈이 세계 곳곳의 금융센터를 24시간 오가며 자본이득을 거둬들이고 있다. 급속한 유가 상승 덕에 쌓이는 전 세계 오일머니는 지난해 무려 5,200억달러에 이르렀다. 이슬람 국가에서만 창출되는 이슬람머니가 4,000억달러에 달했고 매년 10~15%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천문학적 자본을 끌어들여 돈 장사를 하려 세계는 혈안이 돼 있다. 글로벌 경쟁의 한가운데에 각국 금융센터 프로젝트가 자리잡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런던과 싱가포르 등으로 유출되는 중동 오일머니를 흡수하기 위한 작업에 이미 착수했다. 국적을 불문하고 국제금융 전문가를 스카우트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청장 등 최고위직을 아예 외국인에게 맡기고 있다.
오랫동안 화교 경제권을 아우르며 동남아 이슬람 자본을 거침없이 흡수해 오던 싱가포르에 쿠알라룸푸르는 이제 최대 경쟁자로 떠올랐다. 전 세계 이슬람 금융산업의 규칙과 제도를 정하는 범이슬람금융감독위원회(IFSB)본부를 유치해 명분과 실리에서 이슬람 금융권의 종주국이 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상하이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당장 홍콩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상하이를 중국 내수 금융시장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세우자 영국과 미국계 자본의 영향권에 있는 홍콩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동북 3성의 경제중심지 다롄은 소리 소문 없이 무서운 경쟁자로 우리 앞에 다가섰다. 2014년까지 발생할 개발금융 수요가 1,6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등 동북아지역은 아시아 금융센터 경쟁의 새로운 격전지가 되고 있다.
카자흐스탄 경제 수도 알마티도 중앙아시아 오일머니에 대한 주도권 장악에 나섰다.
홍콩, 아시아 금융패권 지키려 본토와 밀애 중
홍콩이 자치권을 수성하며 중국과의 차별화를 꾀하던 과거의 전략을 버리고 통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선전을 비롯한 본토 도시들이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홍콩명성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지난 8월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200만명 선전 시민들이 자유롭게 홍콩에 드나들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8월 중 실행 여부를 결정한다고 보도했다. 현재 홍콩은 자체적으로 국경을 통제하고 있어 중국인들이 홍콩 비자를 얻는 것은 다른 외국보다도 오히려 어려운 실정이다. 홍콩 사람들은 중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나 중국 사람들은 홍콩을 방문하려면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이번 구상이 실현될 경우 통합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엄청날 전망이다. 선전은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노하우와 글로벌 마인드를 배우고 홍콩은 급부상하는 선전의 명성과 자본을 활용함은 물론 본토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어 윈-윈 전략이다. 홍콩의 정부 투자기관인 ‘인베스트 홍콩’의 마크 미켈슨 사무 총장도 “중국 전체가 홍콩에는 매우 중요하다”며 “선전 등 인접 도시와의 통합은 중국 시장 진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홍콩은 통합에 대한 연구를 충실히 준비해왔다. 홍콩 정부의 고위직과 밀접한 싱크탱크인 ‘바우히니아재단연구센터’는 이미 ‘홍콩-선전 거대도시 건설 방안’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홍콩-선전 대도시를 뉴욕, 도쿄, 런던 등 세계적 수준의 도시들과 비교, 도시간 상품, 자본, 정보의 흐름을 능률적으로 조직화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또 선전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해 인구 유입도 늘릴 것을 주장했다.
홍콩은 이미 인프라 구축 계획을 구체화했다. 홍콩은 선전과 광저우의 상업지구로 연결되는 철도 건설 계획을 밝혔다. 철도가 완공될 경우 3시간 거리는 45분으로 단축되며 홍콩은 자연스레 중국의 전국 철도망에 편입된다. 광저우 지사에서 3년간 근무한 프록터앤갬블의 크리스토퍼 하살 부사장은 이에 대해 “두 지역간 통합은 지역 경제에 막대한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통합으로 가는 길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다. 홍콩의 노동 단체들은 본토와의 통합으로 값싼 노동력이 유입돼 일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범죄 우려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고는 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여전히 가난한 생활에 찌들어 있어 빈부차로 인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시민단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국도 잰걸음, 하지만 ‘글쎄’
정부가 금융업종간 장벽을 허물고 금융회사의 대형화를 유도하는 쪽으로 규제풀기에 적극 나섰다. 금융권의 ‘빅뱅’ 회오리가 갈수록 거세질 듯하다. 특히 증권사간 인수합병(M&A) 때 세제혜택을 더 주고 연기금의 은행지분투자도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한 사모펀드 규제도 단계적으로 철폐해 투기성 짙은 헤지펀드의 설립도 이르면 2012년쯤 허용된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홍콩, 싱가포르 등 경쟁도시에 비해서는 금융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지난 7월 18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동북아 금융허브를 위한 금융산업 선진화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이 2009년부터 시행되는 것에 맞춰 시행령과 감독규정 등을 선진국 수준으로 정비하고 금융투자업간 겸영 확대를 통한 대형화, 겸업화를 유도키로 했다. 금융업의 시장진출입을 자금력과 경쟁력, 전문성만 확보하면 허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특히 이번 방안에는 금융회사의 대형화를 유도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재경부는 증권사 합병 때 95% 이상의 지분을 인수해야만 과세이연(課稅移延 : 어떤 회사가 부동산 A를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낸 경우 자금운용에 여유를 주기 위해 차익에 대한 세금납부를 일정기간 연기해주는 제도)을 받도록 한 현행법을 더 적은 지분을 인수해도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M&A를 추진하는 증권사의 부채비율 요건도 현행 200% 이하에서 300% 이하로 완화해 대형금융투자회사가 출현하도록 했다. 은행과 보험 분야에서도 M&A에 장애가 될 만한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논란이 됐던 헤지펀드도 점차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는 연내에 학계와 연구기관 등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 헤지펀드 허용의 타당성과 허용 방식, 부작용 보완 방안, 제도개선 일정 등을 포함한 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이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 금융허브’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최근에도 “제조업만 가지고는 소득 3만, 4만달러에 못 간다. 금융이 맨 선두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허브 구축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자통법 제정과 한국투자공사 설립 등 금융 선진화의 기초는 닦았지만, 목표한 대형 금융투자회사 탄생이나 국내 금융회사 국제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은 막강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런던, 뉴욕 등 금융도시의 라이벌이 될 자격은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마스터카드’의 자료를 인용해 금융도시 경쟁력 측면에서 서울은 9위에 그쳐 도쿄(3위), 홍콩(5위), 싱가포르(6위)에도 못 미친다고 보도했다.
올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외국 금융사 종사자 1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외국인 응답자의 36.5%가 “우리 금융산업 경쟁력이 경쟁국에 비해 미흡하고, 금융허브의 실현 가능성도 낮다”고 응답했다.
외국자본, 한국이 가장 베타적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투자처로서 얼마나 매력적일까? 최근 국내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의하면 영국 런던의 IRS협회가 한국 투자와 관련, 글로벌 기관투자가 1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 이상이 “한국은 빠르게 성장하는 이머징 마켓이지만 한국 내 외국 투자자들에 대한 필요 이상의 준법의무 강행으로 투자처로는 덜 매력적인 국가로 간주된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나쁜 요인은 정치적 위험 요소와 이 나라에 퍼진 외국자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다.” 800조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거대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최근 영국 런던의 인베스터 릴레이션스 소사이티(IRS : Investor Relations Society)는 19개 글로벌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투자 대상으로서 한국’에 대한 리서치를 했다. 이에 대해 응답자의 60% 이상이 “한국은 투자처로서 매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은 사모펀드, 연금펀드, 기부금 및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다. 한국 투자에 관심을 가진 투자은행 대표단 및 투자자문사도 참여했다.
이들은 조사 결과가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인 만큼 리서치 주관사였던 IRS협회 측에 철저히 익명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방법은 각 19개 글로벌 기관투자회사 의사결정자(Senior decision maker)들과 1대1 면접 및 전화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리서치 결과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을 빠르게 성장하는 이머징 마켓으로 보고 있지만 외국 투자자들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외국인투자자가 너무 많은 이익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의 예측 불가능한 정치적 환경도 외부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등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은 구체적 사례로 론스타에 대한 한국의 적대적 감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는 론스타 이슈를 보고 많은 교훈을 얻었다. 한국은 정말 돈이 필요할 때 투자자들을 환영하고, 그 돈으로 (한국 내) 기업이나 산업을 정상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외국 투자자들에게 너무 빨리 돈을 벌지 말고, 그 돈을 가지고 한국을 나가지도 말라고 한다.”
이들은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의 사례도 들었다. 헤르메스가 한국에서 상당히 불공평하게 법적 대우를 받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난해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헤르메스가 2005년 11월 삼성물산 주식의 5%를 보유한 상태에서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물산 인수합병 의사가 있는 것처럼 말해 관련 기사가 보도되면서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팔아 73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던 것. 하지만 법원은 일반투자자를 속이기 위한 위장된 계획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결국 합리적인 증거를 갖추지 못한 채 외국계 펀드에 대한 사회 전반의 편견을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와 한국을 비교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은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중국도 외국인투자자에게 한국처럼 위협을 주지는 않는다. 한국은 중국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중국은 한국보다 외국인투자자에게 신뢰를 보이고 있으며 한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일본은 지금 한국이 당면한 이슈를 이미 거친 나라로 지금은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등이다.
투자자들은 싱가포르에 대해 투자자에 관대한 정부와 국제적 금융 규칙이 신뢰할 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이 밖에 홍콩은 국제적인 자산 유동성에 대해 그 어떤 나라보다 관대하다고 응답했다. 모 기관투자가는 “한국이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외국 자본에 대한 적대적 의식은 금융허브로 발전하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외국 투자자들에 대한 개선 노력이 하루빨리 이뤄지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 투자하던 외국인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 투자에 영향을 주는 긍정적인 요소를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0%가 ‘강한 직업의식’과 ‘첨단 IT기술 보유’를 꼽았으며, 응답자의 20%는 ‘최근 몇 년간 한국 기업의 투명성이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또 대다수의 응답자가 아시아 금융위기 회복에 한국이 일조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한국의 외국 자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이런 긍정적 요소를 깎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1998년에 한국은 누구라도 들어와서 투자하기를 바랐고 이를 절박하게 열망했다. 상황이 진전되고 모든 것이 좋아 보이니까 한국은 마음을 바꿔 버렸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1998년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5,000억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면서 한국에 진출했다. 이어 서울 강남구에 있는 스타타워, 한빛여신전문㈜, 극동건설㈜을 각각 인수하고 2003년 8월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후 론스타가 주식양도를 통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 후 한국을 떠날 것 같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에 대해 언론 등에서는 ‘먹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는 국부 유출을 방지하겠다며 론스타의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론스타를 투기자본으로 몰아가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까? 우리의 시장경제 구조가 취약한 것은 아닐까? 이번 리서치 결과는 한국 경제가 글로벌화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진지한 답변일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한국 애매한 태도로 외인자본 떠나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한국의 애매한 태도가 외국인 투자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7월 26일 보도했다.
신문은 청와대가 오전에 한국을 동북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고 말하면 그날 오후 시중은행들이 외자 유치 제한을 주장하고 나서는 식으로 엇갈린 주장들이 상충하고 있다며 이것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둔화시키고 있다고 WSJ는 말했다.
한국의 지난 2분기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작년 동기대비 35% 줄어든 17억6,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분기보다 감소폭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한국계 기업들이 지난 1970년대 경제성장의 후광을 입어 국가적 영웅으로 여겨지고 있는 데다 론스타와 같은 외국계 투자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한국에서 보호주의의 목소리가 우세한 반면 정부는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컴플라이언스아시아의 알렉스 두퍼로젤 이사는 “외자에 대한 논의는 필요한일 이지만 상충되는 논의가 혼재하는 사이 외인투자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골드먼삭스, 메릴린치 등 대형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공세가 거세지면서 이에 대항하고 더 나아가 세계 금융에 진출할 수 있는 ‘토종 투자은행’ 육성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다행히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돼 우리나라에도 대형 투자은행이 탄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어떻게 이를 활용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이 되느냐 아니면 한국이 직접 글로벌 금융 리더로 우뚝 서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한국형 글로벌 IB(투자은행) 이젠 나올 때
한국만큼 금융DNA가 뛰어난 나라도 드물기 때문에 곧 세계적인 투자은행이 등장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그렇지만 인력과 자본, 영업기법 등 모든 것이 뒤져 있어 초대형 투자은행은 요원할 것이라는 의견로 많다. 전문가들은 금융투자회사 CEO의 의지와 창의적인 금융기법 개발, 정부의 아시아 금융허브 전략 추진 등이 어우러질 경우 글로벌 투자은행의 꿈은 결코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금융 선진화의 백미(白眉)이자 종착점이 글로벌 투자은행의 등장임에는 이견이 없다. 자통법이 이제 막 통과된데다 금융인들조차 투자은행의 정확한 속성, 유형에 대해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아 글로벌 투자은행을 위해선 초기부터 금융회사, 정부, 소비자들이 한국 체질에 맞는 모델을 도출해 내고 그에 따른 치밀한 육성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글로벌 투자은행은 크게 ▲도이치방크처럼 상업은행이 직접 영위하거나 ▲씨티은행처럼 상업은행이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겸업하는 경우 ▲메릴린치 등 증권회사가 주체가 되는 방안 ▲각 금융 영역 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영위하는 방법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도 자통법 통과로 제도적으론 첫 번째 방안을 제외하곤 다 허용된 상태다.
투자은행의 대형화를 위해선 자본력이 우위인 첫 번째 방안이, 전문성 측면에선 세 번째 방안이 유리하다. 다만 첫 번째 방안은 지주회사 중심의 은행 산업구조하에서 직접 겸영 시 나타나는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과제다.
금융감독당국은 열악한 한국 자본시장 규모 등을 감안해 우선적으론 두 번째, 세 번째 방안을 중심으로 투자 은행화를 추진하되 글로벌 차원의 투자은행 육성을 위해선 관련 법규를 개정해 상업은행으로 하여금 투자은행 업무를 영위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만큼, 무턱대고 골드먼삭스처럼 초대형 투자은행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증권사나 금융지주를 시작으로 단계적인 발전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김자봉 연구위원은 “전문성, 자본 규모, 네트워크 등이 단기간에 충족되기 힘들기 때문에 중장기 모델을 구분하고 중기 모델로 중소기업에 특화한 투자은행 모델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투자은행이 일반 상업은행이나 증권회사와 다른 점은 ‘고위험 고수익’을 지향하는 데 있다. 이 같은 리스크를 극복하려면 첨단 상품개발 능력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감내하려는 CEO의 적극적인 의지도 필수적이다.
리스크 추구형인지 아닌지는 투자은행의 수익구조를 보면 금세 드러난다. 골드먼삭스 등이 자기자본투자(PI) 등 자기거래 비중은 45%인 데 반해 국내 대형 증권사는 아직 위탁매매 비중이 55%를 차지한다. 국내 회사의 위험추구 성향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한국증권연구원 최도성 원장은 “원래 투자은행은 위험을 다루면서 돈을 버는 회사로, 경쟁력을 가지려면 상품 개발 능력이 최우선”이라며 “위험관리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많은 투자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무엇보다 이러한 투자를 위해선 금융투자회사 CEO의 적극적인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형화를 해야 하지만 독특하고 차별적인 상품개발 능력만 있으면 약육강식의 세계금융시장에서 생존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호주 맥쿼리은행의 경우 국내 대형 은행의 4분의 1 덩치지만 투자은행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한국 자본시장 발전과 금융회사 대형화를 위해선 국제적인 자금이 흘러와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허브 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경우 ‘돈이 되는 곳에는 돈이 모이는 원리’에 따라 국내 자본 축적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허브 이루려면 규제개혁 절실
금융허브 전략의 골자는 금융시장과 금융회사를 국제화하고 금융시스템을 선진화해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 금융거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내외 금융시장간 금융거래를 확대하고,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과 외국 금융회사의 국내 진출을 촉진하며, 혁신적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 등을 실천목표로 제시했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동북아 금융허브 실현. 구체적 논의가 시작 된지 4년이 지난 지금 허브전략의 성과를 평가해 보면 한마디로 미흡하기 짝이 없다. 최근 열렸던 청와대 회의에서도 지적됐듯이 다른 경쟁국의 금융혁신과 허브 구축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우리는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
외국인의 국내 금융업 진출은 확대됐지만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은 극히 정체돼 있다. 대형화 겸업화도 답보상태다. 인력 양성도 구호만 요란했지 금융기관 종사자는 단순업무 처리자가 태반이고 선진 금융기법을 익힌 핵심인력은 극히 적다. 금융기관의 거래 유형도 예대마진 확보나 가계대출에 치중할 뿐 선진국 금융기관들처럼 다양한 상품을 갖고 전 세계를 무대로 펼치는 글로벌 영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 식 영업에 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제반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는 한 금융허브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최근 금융시장 선진화를 위한 자본시장통합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증권사간 M&A를 적극 유도하고 부처별 규제를 기능별 규제 체계로 하루속히 바꿔야 한다는 게 전문들의 공통된 견해다. 은행과 보험, 증권사간 업무영역의 구분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유독 은행에 대해서만 산업자본의 소유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금산분리 원칙도 재고돼야 할 것이다. 보험사와 증권사는 이미 대기업들이 대주주로 돼 있다.
1999년 글래스 스티걸법 폐지로 금융기관의 대형화 겸업화를 추진하고, 과도한 회계기준(사베인 옥슬리 법)을 완화하고 있는 미국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금융빅뱅을 통해 진정 우리나라를 금융허브로 만들고자 한다면 시대적 변화에 맞춰 불합리한 법과 규제부터 과감하게 혁파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 허브 싱가포르의 교훈
아시아를 넘어 세계 경제허브로서 싱가포르의 위상은 나날이 공고해지고 있다.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항상 세계 1, 2위를 다투고,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지만 변신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 수년 간 금융, 교육, 의료 분야를 국가적 전략 산업으로 정하고 막대한 투자를 한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 금융 회사들이 몰려 이들의 자산 규모는 1998년에 비해 8배 가까이 늘었고, 부자들을 상대로 하는 프라이빗 뱅킹이 급성장해 2,500억달러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존스 홉킨스, 스탠퍼드 같은 세계 명문 대학 13개를 유치해 지난해 외국 유학생이 7만명을 넘어섰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의료기관의 질을 높여 지난해 의료관광객만 40만명을 넘어섰다. 여기에 관광, 놀이 산업을 추가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이 카지노 산업 육성의 배경이다. 리콴유는 최근 싱가포르가 금융업과 카지노산업 성장에 힘입어 향후 5년간 ‘황금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아시아 경쟁국 가운데 가장 앞서나가는 싱가포르가 이렇게 미래를 위해 부단한 변신을 시도하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참여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이 그 동안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한 귀퉁이라도 차지하려는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통과에 따른 금융 빅뱅이 기대되고 있긴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 항만의 급부상으로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 부산항과 광양항의 위상은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 동북아 허브의 전초기지로 조성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몇몇 부동산 합작투자를 제외하고는 번듯한 외국자본이나 기업 유치 실적이 별로 없다. 균형발전을 내세운 정부가 수도권집중 억제에 더 정신이 팔려 있는 데다 유사한 지방개발 계획이 쏟아져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금융과 교육, 의료, 관광은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이다. 싱가포르는 이들 산업의 허브일 뿐 아니라 아시아의 서비스 허브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고 있는 서비스산업 육성대책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동북아 허브정책이 따로 있고, 서비스산업 육성대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중심을 잃은 채 당시 현안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책으로는 경쟁국들의 숨가쁜 발걸음을 따라갈 수 없다.
뉴욕타임스의 명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세계는 평평하다’는 신작으로 주목을 끌었다. 평평한 운동장처럼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국가 간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과거 어느 때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의 혜안과 비전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의 리더십은 중동의 최소국 두바이를 중동의 심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우리 지도자들은 어떤 비전과 희망을 국민들에게 주고 있는가. 스스로 세계적인 대통령을 자처하는 현재 지도자의 낯 뜨거운 모습이나, 비전 제시보다 상대방 헐뜯기에 골몰하고 있는 미래 지도자의 모습에서 불안한 미래를 읽는다.
출처 정경뉴스
'openjournal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상사 9월 3일부터 주식거래 재개 (0) | 2007.08.31 |
---|---|
주공, 중대형 임대아파트 공급 확대 (0) | 2007.08.29 |
中 기업 절반 "한국과 기술력 차이 거의 없다" (0) | 2007.08.26 |
종교단체 투명성 확보 물 건너가나? (0) | 2007.08.26 |
김태동교수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해 "경제를 죽일 대통령" (0) | 2007.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