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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지난 16일 사장단 인사와 19일 부사장급 이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가 세대교체 원칙하에 결정된 것으로 보여 ‘젊어진 삼성’이란 수식어를 낳고 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시대를 풍미했던 60대 노신들이 물러나고 ‘황태자’ 이재용 전무 주변 인사들과 전략기획실 출신 핵심인력을 전진배치하면서 앞으로 대변혁의 회오리가 삼성에 몰아칠 것으로 재계는 예측하고 있다. 젊어진 삼성에 다가오는 커다란 변화의 기운을 조명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이번 인사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시대로 가는 교두보 성격으로 보는 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 전무와 가까운 인사들이 그룹의 핵심요직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윤우 총괄부회장과 최지성 사장이 각각 부품(반도체·LCD)과 제품(디지털미디어·정보통신)을 맡는 ‘투톱체제’로 전환했다. 이 부회장이 대표이사로서 상징적 의미가 높은 데다 이재용 전무가 큰 관심을 보여 온 분야들이 최 사장 관할이 됐다는 점에서 무게중심이 최 사장 쪽으로 벌써 기우는 분위기다.
최 사장은 이재용 전무의 ‘멘토’로 불릴 정도로 관계가 돈독하다. 최 사장은 그동안 각종 해외 행사에서 이 전무와 동행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전무가 삼성전자에서 성장할 동력을 장착해줄 최고의 조력자로 꼽혀왔다.
삼성전자 홍보팀장을 맡아온 이인용 전무는 이번 인사를 통해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홍보를 총괄하게 됐다.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신설돼 그룹의 언론홍보 전반을 주관할 삼성커뮤니케이션팀의 팀장을 맡게 된 것이다. 이 부사장과 삼성전자 홍보팀에서 함께 일했던 노승만 상무도 이 팀에 합류하게 됐다.
MBC <뉴스데스크> 앵커와 보도국 부국장을 지낸 이인용 부사장은 이재용 전무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다. 이 부사장이 지난 2005년 삼성전자 홍보팀장으로 영입될 당시 이재용 전무와의 인연이 주목받으며 ‘영입 배경에 이재용 전무가 있었다’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지난해 4·22 삼성쇄신안 발표를 통해 해외 순회근무를 시작한 이재용 전무는 지분관계상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지장이 없는 반면 승계명분을 축적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룹 홍보 총괄의 중책을 맡은 이인용 부사장이 이 전무의 해외활동 성과를 어떻게 잘 드러나게 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이재용 전무의 부사장 승진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부사장 승진을 위한 전무 재직 연한은 최소 3년’이란 전제에 걸려 유임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7년 전무가 된 그가 내년 초 정기인사에선 승진 요건을 갖추는 셈이다. 최지성 사장과 이인용 부사장의 그룹 핵심부 입성에 대한 1차 성적표는 내년 이맘때쯤 이 전무 승진 과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한편 사장단협의회 산하 브랜드관리위원회의 수장 교체도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이번 인사로 지난 10년간 ‘삼성의 입’ 역할을 맡아온 이순동 사장(브랜드관리위원장)이 사회봉사단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장충기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 신임 브랜드관리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순동 사장이 그룹 홍보업무의 간판이었다면 장충기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지난 1994년 회장 비서실 기획담당 이사보가 된 이래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을 거치며 그룹 컨트롤타워의 기획업무를 주관해왔다.
브랜드관리위원회의 수장이 홍보의 상징 격인 이순동 사장에서 그룹 전략기획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장충기 사장으로 바뀐 것을 두고 이 위원회의 향후 위상을 가늠해보는 시선도 있다. 그룹 브랜드 관리를 위한 기획업무의 큰 범주 안에 신수종사업 발굴과 대외정보 수집·분석 기능 등 과거 전략기획실 업무들이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해 4·22 삼성쇄신안을 통한 전략기획실 해체 이후 계열사별 책임경영체제로 전환되면서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삼성 특유의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우려가 뒤를 따랐다.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삼성 내 전략기획실 같은 기구의 필요성이 거론돼 왔다. 사장단협의회는 삼성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이끌고 있으며 협의회 산하 투자조정위원회와 인사위원회 위원장은 이윤우 부회장이 그대로 맡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상징적 역할이 큰 만큼 만약 삼성이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려 한다면 장충기 사장이 새로 위원장을 맡은 브랜드관리위원회가 주축이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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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최지성 사장, 이인용 부사장, 장충기 사장 | |
이번 세대교체 인사로 체질개선을 도모한 삼성이 주목하는 다음 과제는 신수종 사업 발굴일 듯하다.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 기반을 닦아야 하는 데다 그룹 핵심부에 전략기획실 출신 기획통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설로만 나돌았던 삼성의 신사업 진출도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삼성의 신 성장동력 발굴 작업을 바라보는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최대 화두는 자동차산업이다. ‘청와대에서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을 바라는 의견이 나온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이어 김문수 경기지사의 “돈 많은 삼성이 쌍용차를 인수했으면 좋겠다”는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삼성의 자동차산업 재진출 여부가 재계의 큰 관심사로 떠오른 상태다.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GM대우의 장래가 불투명한 데다 삼성이 르노삼성 지분을 19.9% 소유하고 있는 까닭에 세 회사를 묶어 현대·기아차와 2강 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구체적인 의견까지 제기된다. 쌍용차 기술유출 논란으로 빚어진 국부유출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국내 자본이 삼성이란 점도 정치권의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이런 까닭에 삼성특검 사건의 최종선고를 남겨놓고 있는 이건희 전 회장과 이번 인사로 퇴진한 허태학 박노빈 전직 삼성에버랜드 사장들에 대한 판결이 삼성에 우호적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과거 IMF 외환위기 때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실패 충격이 컸던 데다 삼성차 채권단과의 갈등도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삼성이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자동차산업에 다시 뛰어들려 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 재계가 한목소리를 내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모를 일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자동차산업 진출 비용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점도 삼성엔 호재다.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진 이건희 전 회장이 10년 전 자동차 실패의 한을 푸는 동시에 이재용 전무 시대의 새로운 캐시카우(현금창출원) 발굴 차원에서 결단을 내릴지 세간의 시선이 머물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