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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M&A 무산 산은·한화 후폭풍 따라잡기

이경희330 2009. 1. 29. 23:50

변덕쟁이로 찍히면 스텝 계속 꼬일라
산업은행 정인성 기업금융본부 부행장이 대우조선해양을 두고 한화컨소시엄과 체결한 양해각서가 해제 되었음을 밝혔다. 작은 사진은 한화 김승연 회장.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대우조선해양을 놓고 ‘치킨게임’을 벌이던 한화그룹과 산업은행이 결국 파국을 맞았다. 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이 한화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하고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 이미 내부적으로 포기 방침을 세웠던 한화도 이를 수용하고 산업은행에 지불한 이행보증금 3000억 원을 되찾기 위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그 후유증은 당분간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9일 산업은행에서는 대우조선해양 대표주주 및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매각추진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참석자들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불가’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인사는 “인수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화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산업은행은 21일 이사회를 열어 공동매각추진위원회에서 제출한 매각 불가 심의안을 승인했고 22일 공식 발표했다.

한화도 대우조선해양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한화는 산업은행과의 협상이 난항에 빠져 있던 지난해 12월 말부터 인수 중도 포기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전해진다. 1월 중순경 일본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진 김승연 회장은 현재 인수 무산에 따른 대책 등을 궁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협상 실패를 두고 한화와 산업은행은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산업은행은 본계약을 한 달 연기해주는 등 합의점을 찾기 위해 ‘할 만큼 했다’는 입장. 한화가 제안했던 대우조선해양 지분 분할매입과 자금 마련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져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입찰계약서 내용과 다르게 매각을 추진할 경우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고 앞으로 추진할 M&A(인수·합병)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애초에 MOU(양해각서)를 깬 것은 한화”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화는 산업은행의 지나친 원칙 고수가 결렬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M&A에 관여했던 한화 관계자는 “우리가 제안했던 인수대금 지급방안을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고 거절한 산업은행이 과연 진정성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는지 의심스럽다. IMF 외환위기에 비견되는 최악의 경기상황을 고려하면 MOU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필요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재계와 금융권 등에서도 책임 소재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내용은 한화와 산업은행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영진M&A연구소의 김영진 소장은 “한화가 빌미를 제공한 것은 맞지만 산업은행도 융통성을 발휘했었다면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 수도 있다. 감정의 골이 깊어 더 이상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도 주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화와 산업은행이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은 여론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일 것이란 관측이다. 벌써부터 재계 일각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과 매각 지연이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인수 작업에 들였던 막대한 인적·물적 비용도 모두 허사가 됐다. 양측 모두 이러한 것들로 인해 비난이 쏟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어 상대방을 향해 공세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 공방은 한화가 산업은행에 지불한 이행보증금 3000억 원의 향방과도 무관치 않다. 이 돈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대금의 5%가량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난해 11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낸 것. 한화와 산업은행이 작성한 입찰계약서에 따르면 MOU가 깨질 경우 산업은행이 이 돈을 가지게 된다. 단, 천재지변처럼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해 상황에 따라 일정 금액을 한화에 돌려줄 수 있다.

따라서 계약대로라면 3000억 원은 산업은행 소유가 될 공산이 크다. 산업은행은 “한화 측에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논쟁할 것도 없이 이행보증금은 우리 것”이라고 자신했다. 산업은행은 자체 검토를 거쳐 이 문제가 법정으로 가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화는 ‘싸워 볼 여지는 있다’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한화는 산업은행과의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그룹 법무팀이 이행보증금 회수를 위해 법률 검토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한 유명 법률사무소에도 용역을 줘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한화 관계자는 “(매각 무산이) 전적으로 우리 잘못만은 아니지 않느냐. 천재지변에 준하는 경제위기 상황과 노조의 실사 반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행보증금을 둘러싼 양측의 다툼은 이제 법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3000억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누가 승리하든 ‘상처뿐인 영광’이 될 듯하다. 한화나 산업은행 모두 이번 M&A 실패로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 M&A 전문 변호사는 “어찌 됐건 국가적인 손해다. 수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매물을 뚜렷한 기준 없이 매각하는 산업은행과 ‘배째라’ 식으로 돈 없다며 버티기를 하고 있는 한화 모두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화 안팎에서는 ‘사업 리스크 감소로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이는 주요 계열사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 것만 봐도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지난해 그룹의 모든 동력을 쏟아 부으며 품에 안았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중장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수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기업 신뢰도 손상됐다. 입찰 경쟁 내내 “자금엔 문제없다”고 큰소리 쳤지만 막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가격을 낮춰 달라”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한화가 자금 마련 실패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경기침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승부사, M&A 귀재’ 등으로 불렸던 김 회장도 체면을 구겼다. 평소 김 회장이 의리, 약속 등을 중시하는 경영인으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상처는 더 크다.

산업은행은 3000억 원을 가져올 경우 소위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매각 지연으로 ‘공적자금 조기 회수’라는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엔 약 90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있다. 재입찰도 골치가 아픈 문제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현 경기 상황에서 재입찰할 경우 제 가격에 팔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재입찰을 늦출 수도 없는 것이 산업은행이 안고 있는 딜레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서 잡음을 일으킨 산업은행이 올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또 다른 대형 M&A에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