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공포 확산 부산 고급아파트 폐자재 불법 매립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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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용호동 SK 뷰 아파트가 들어선 현장에는 공터 곳곳에 슬레이트 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작은 사진은 철거 전 슬레이트 판자촌.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석면 공포가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부산의 한 아파트가 석면 무덤 위에 지어졌다는 논란에 휩싸여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문제의 아파트는 부산시 남구 용호동에 있는 SK 뷰 아파트로 시공 당시 인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석면폐기물이 아파트 부지에 무려 8000톤 이상 불법 매립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초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수년 전 이 아파트 건립 추진에 개입했던 A 씨. 그는 “SK건설은 당시 슬레이트 판자촌 2000여 채를 철거할 때 방출된 건축폐기물들을 합법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불법매립해 그 위에 문제의 아파트를 세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A 씨가 문제삼는 것은 슬레이트 등의 건축 폐자재에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석면이 어마어마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공사인 SK건설 측은 “아파트 시공 당시 적법한 모든 절차를 밟았으며 석면 등 위험 건축 폐기물을 무단매립했다는 A 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문제의 아파트가 세워진 용호동은 수십 년간 일명 ‘용호농장’이라 지칭되던 곳이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채 바다와 거의 맞닿아 있는 이곳은 1940년대 중반부터 사회에서 격리된 나환자들이 슬레이트 가옥에 머물면서 돼지·닭 등을 키우며 살아온 땅이다. 당시 13만 평에 달하던 나환자촌에는 76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장기간 축사에서 흘러나오는 오물과 가축 배설물 등이 줄곧 문제가 됐었다.결국 시는 2004년 2월 중순부터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문제는 철거하고 고급 아파트를 준공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건축 폐기물들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다. A 씨는 “철거 당시 석면이 함유된 폐자재들을 마구 매립하는 것을 본 사람이 나 외에도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SK건설은 철거 당시 배출된 석면 폐기물을 방치하고 그 위에 고층 아파트를 올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SK건설이 엄청난 양의 위험 폐자재들을 바다속에 마구 매립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현재 아파트 부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건축 폐기물들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실제로 취재진이 본 현장에서는 공터 곳곳에 슬레이트 조각들이 널려 있거나 땅에 묻혀 있었다.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하는 동안 과거 용호농장 관계자와 A 씨 사이에서는 ‘석면 매립의 진실’을 둘러싸고 심한 욕설과 몸싸움이 오가는 험악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하지만 SK건설 측의 주장은 다르다. 현재 아파트 부지에서 목격되는 석면 폐기물들은 2004년 시공 당시에 나온 건축폐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SK건설 관계자는 “60여 년 전에 이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방출한 쓰레기들이다.
그때는 석면에 대한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로 지붕 등을 개·보수하는 과정에서 나온 슬레이트 폐자재를 주민들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주변에 버렸다”라고 설명했다.SK건설은 또한 철거가 완전히 마무리된 2004년 8월 이후인 그해 11월에 착공에 들어갔기 때문에 석면 폐자재 처리에 대해서는 사실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을 답사한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 윤용 대표(전 고려대 신방과 교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이 정도라면 아파트 밑에는 얼마나 많은 양의 석면이 깔려 있는지 모른다”며 “60년 전에 나온 것이라는 SK건설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설령 그렇다쳐도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폐자재들의 위험성을 알면서 치우지 않고 그 위에 아파트를 올린 건 납득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A 씨는 철거시점에 대해서도 SK건설 측과는 다른 주장을 했다. 그에 따르면 2004년 2월 중순에 1차 철거가 이뤄졌고 2005년 12월(2차)과 2007년 3월(3차), 그리고 2008년 8월 26일부터 29일까지 마지막 작업이 진행됐다는 것. 그러나 SK건설 측은 2004년 아파트 철거 당시 나온 건축폐자재들은 부산에 있는 S 사에서 수거, 운반해갔다며 현재 남아있는 석면 폐기물과 아파트 시공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석면 등 지정 폐기물은 정식처리면허가 있는 업체에서 처리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업체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OO유화학뿐이었다. SK건설 측에서 무단매립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자격 업체가 일부 처리한 것을 가지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규모의 폐자재를 바다에 무단매립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A 씨는 아파트 건립부지와 맞닿아 있는 바다를 수중촬영, 바다 밑에 수북히 쌓여있는 석면 폐자재들의 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SK건설은 “A 씨가 제시한 사진은 해저 15m에서 촬영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전문가에 따르면 문제의 오륙도 앞바다 수심은 5m를 넘는 곳이 없다”며 사진의 진위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A 씨는 “당시 부산의 유명한 스쿠버업체 대표에게 돈을 주고 촬영한 실제 현장사진”이라고 항변했다.SK건설 측은 또한 불법매립을 한 사실이 없다는 증거로 최근 검찰의 처분결과를 제시했다. A 씨가 당시 폐기물 철거와 관련 고소했던 용호농장 집행부 간사에 대해 이달 초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A 씨는 검찰의 처분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A 씨는 “관계 당국이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엉터리 처분을 내렸다”며 “현재도 아파트 공터 수만 평에 석면슬레이트 조각이 널려있고 오륙도 바다로 이어지는 낭떠러지에는 석면 폐기물들이 박혀있는 데도 관계자들을 단 한 명도 조사하지 않고 피고발자들과의 대질심문 요청도 거절한 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주장, 4월 20일 부산지방검찰청에 항고장을 접수했다.
양측의 싸움은 법적 소송을 넘어 인신공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SK건설 측은 제보자 A 씨에 대해 “사업 초기에 시행사를 도와 협조해왔으나 시행사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 사업진행 과정에서도 배제되자 A 씨가 시행사와 용호농장을 압박할 수단으로 수년간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씨는 “아파트 건립추진 당시부터 직접 개입했던 일이었기에 폐기물 처리와 관련된 비리는 누구보다 잘 안다”며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국민권익을 위해 폭로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양측의 책임공방과는 별도로 석면이 포함된 건축 폐자재가 주민들의 생활 범위 내에 남아있는 것에 대해선 SK건설도 우려하고 있다.
SK건설 관계자는 “우리 측의 책임은 없지만 우리가 직접 폐자재를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한편 SK건설은 이 아파트 계약자들로부터 ‘광고내용과 다르게 지어졌다’며 계약해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당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