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7.6.화요일
딴지정치철학부 최가박당
" 단군이래 최대의 역사를 이룩한 그 힘과 의지로 |
북조선 에미나이 동무들의 선전문구냐고? 천만에.
박통 시절, 마침내 완공된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 전국에 흩어져 사는 아들 딸들 찾아 댕기면서 조국 근대화를 위해 힘껏 일해줄 것을 당부하는 꼬장꼬장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느 노부부의 유람기를 그린, '아들 딸 찾아 천리길'이란 영화의 감동적인 클라이맥스에 깔리는 거룩한 멘트다.
고속도로 하나 건설하고 웬놈의 '단군님'은 저리 뜰멕이는지 지금으로선, 느끼함이 목구멍을 간질거리지만, 당시 한국인들의 마음은 한결같았으리라.
'씨바, 하면 되는 거야! 일등 궁민 함 돼보자고.'
영화 속 주인공 장덕삼 옹은 6-70년대 순진하고 소박했던 우리 백성들의 초상이다. 그의 캐릭터를 짐작하게 하는 영화 속 한 장면.
수위장 참으로 훌륭했지! 근면하고 성실한 분이야. 고속도로가 완공되는 날 정년퇴직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네. 수위A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져 눕는 일도 없이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개근 근무했다죠? 수위장 암! 그의 성실성은 이 건설부의 자랑이었네. 닦고 쓸고 지키고 돌보며 조국중흥의 발전을 위하여 이곳에서 일생을 보냈다네. 직원 고속도로 못지 않는 우리 민족의 산 표본이군요? 수위장 암! 우리들도 장 선생의 본을 받어 성실하고 검소하게 부지런히 일들을 해야지. |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바, 까망 썬글라스의 사나이 박통이 내세우고 선전한 최고의 가치는 '조국 근대화'였다. 그리고 바로 이 '조국 근대화'라는 요술 방망이 같은 말 땜에, 죽은 박통이 관 속에서 깨어나 IMF 경제난을 겪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땅 위로 스르르 기어나오고 있다.
박통 정권과의 악연으로 현해탄 한 가운데에서 죽을 고비 넘기고 차에 치여 '펭귄' 소리까지 듣게 된 인간 김데중. 그 김데중마저 박통을 '근대화의 영웅'으로 인정해 마지 않는데다, 최근엔 박통교도들에게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하기까지 하는 건 그가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오를 만큼 평화를 사랑해서인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는 음흉한 정치적 권모술수가 들어있거나, 아니면 뭔가 의미심장한 오해가 숨어 있다. 이쯤에서 함 생각해 보자.
소위 '박통 향수병'의 문제점은 단순히 박통의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가지고 저울질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15년 이상 해처묵었는데, 거기다 굼바리 정신으로 조또 무식하게 밀어붙였는데 <잘한 일>이나 <몬한 일> 어느 쪽이나 차곡 차곡 쌓이는 건 당연지사. 그 냄새나는 과거를 들척거려 뭐하겠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박통 당시 몇년 몇월 몇일 무슨 일이 있었다는 식의 시시콜콜한 역사탐구가 아니라는 말씀. 박통 향수병의 문제는 실증적 역사탐구의 문제나 집단적 무의식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탐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철학적 논증에 의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거다.
왜냐고?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어지럽히는 '박통 향수병'은 사실상 다음과 같은 생각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해명해줄 것을 양식있는 일반인들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박통 = 우리 땅에 근대화를 성공시킨 영웅' |
이라는 생각이다. 사실상 '박통 = 우리 땅에 근대화를 성공시킨 영웅'이라는 명제가 '참인 명제'라는 굳건한 믿음에 의지하여 박통 옹호자들은 '인권 탄압'을 외쳐대는 박통 반대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쏘아붙이게 된다.
'씨바, 그거 희생시켜 <근대화> 했자너'
이 대담무쌍한 한 마디에 우물쭈물, '박통이 대한민국을 근대화 한 건 사실이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는 둥, '사회적 근대화를 너무 무리하게 진행시켜감으로써 개인들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둥 궁색한 답변을 꺼내들고자 한다면, 잠깐 스톱!
먼저 할 일이 있다. 그들에게나 우리 자신에게나 가슴에 손을 얹고 다음의 물음에 겸허히 대답해 볼 것을 요구해야 하는 거다.
너희가 <근대화(modernization)>를 아느냐?
너희가 <근대(modernity)>를 아느냐?
'박통 = 근대화의 영웅'이라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논증하려면 '근대화'나 '근대'의 개념을 알고 있어야 할 거 아닌가? 당신 그거 알아?
독재의 마수는 대중의 무지 위에 군림한다. 죽은 독재자 박통의 마수는 살아있는 한국민의 무지 위에서 아직도 군림하고 있는 거다.
딴지일보는 이러한 독재자 박통의 마수를 동강내기 위해 잠시간 유식해지고자 한다. '유식해진다'는 게 딴지의 창간정신과 배치된다고 생각하는 단순무식한 뇬넘들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교활한 잉간들에게 똥침을 놓아가며 명랑사회를 건설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는 것만 알아두자. 교활한 잉간들한테 속지 않을 만큼은 영악해져야 하는 것, 명랑사회를 위한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인 거시다.
이제 본격적으로 근대, 또는 근대화라는 말을 해부해 보기로 하자.
우선 여기서 말하는 '근대'가 단순한 연대기적 시대구분의 범주는 아니라는 것쯤은 기본 통밥으로 알 수 있을 거다. 근대가 시대구분에 불과하다면, 기냥 입 벌리고 가만히 누워 있어도 때가 되면 스르르 변신, '근대화'될 텐데 뭐하러 피곤하게 '조국중흥'을 위해 대오단결하겠나.
그렇담 도대체 근대, 또는 근대화라는 게 모냐?
박통이 말하는 '근대화'는 대체로 서구화·공업화·민주화·합리화·도시화 등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게 있으면 아무 거나 갖다 붙이면 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두루뭉실 단어다. 우리는 이 두루뭉실 '근대화'에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속고 있는 거다.
그 기만의 역사를 잠시 에둘러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을 겪은 민족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후에도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정체성 혼란이란 한 마디로, "니들 누구니?" 하는 물음에 갸우뚱 갸우뚱 "글씨요, 잘 모르겠는디요" 하고 대답하는 골때리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 맛이 간 상태를 뜻한다.
이렇듯 '정신 나간 대중들'을 기반으로 독버섯처럼 등장하는 것이 군사독재며, 제국주의의 폭력적 손길에 의해 정신적 강간을 당해 얼빠진 대중을 갖게된 제 3세계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한 군사독재를 겪게 된다.
한 사회의 대중들이 '정신없음'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결국 그 사회의 정신적인 기조가 없다는 뜻이며, 다른 식으로 말하면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불합리한 사태에 대해서도 아무 가치나 갖다 붙여 합리화할 수 있는 만반의 사회적 준비태세가 갖추어져 있다는 걸 뜻한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탱크를 몰고 나타난 굼바리들은 안정을 바라는 대중의 생존본능을 담보로 각양 각색의 개수작을 벌이고도 이 가치 저 가치 갖다 붙여대며 합리화시킬 수 있게 되는 거다. 이것이 바로 제 3세계 군사독재의 필연적 생산구조인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코리아 버전 굼바리 독재자 박통이 6·70년대 '얼빠진' 한국 대중에게 기만적으로 들이댄 도깨비 방망이가 바로 '근대화'라는 구호였다.
노동자 착취할 땐 '공업화', 농촌사회 거덜낼 땐 '도시화', 민족주의자 잡아 족칠 땐 '서구화', 민주를 외치는 사회주의 사상가들 뿌리뽑을 때는 뻔뻔스럽게도 '반공 민주화'...
박통의 '근대화'는 시시각각 다른 이름으로 바꿔 달고 지조때로 정치를 합리화시켜주는 도깨비 방망이었던 거다.
그동안 우리 순진한 백성들은 '씨바 헷갈려, 근대화가 도대체 모야' 하는 찍 소리 한 번 질러보지 못한 채, 이 '근대화'라는 도깨비 방망이가 전파하는 집단적인 최면에 걸려 '박통 만세'만 외쳐왔던 게, 그리고 그 최면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 한마디로 조가튼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의 근원에 '일제 식민지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일본넘들 나쁜넘들'이라는 말은 비록 촌스럽게 보일지는 몰라도 아직 유효기간이 끝나지 않은 거다.)
<근대화(modernization)>라는 말이 주로 사회학적인 맥락에서 구체화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상당히 다의적인 말임에는 분명하지만, 적어도 이 말이 <근대(또는 근대성modernity)>라는 상대적으로 분명한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근대화>라는 개념은 <근대>에 대한 개념을 통해 풀어가는 것이 좋다.
서양의 근대는 철학적으로 따지면 종교개혁, 르네상스로 상징되는 15-16세기로 소급되며 사회학적으로 따지면 자본주의 형성이나 시민사회 성립이 이루어지는 17-18세기로 간주된다.
실상 동전의 앞 뒤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두가지 개념의 서양 근대를 통털어 상징해주는 인물은 데카르트(1596-1650)다.
데카르트가 했던 유명한 말을 기억하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흔히 인류에게 '이성의 빛을 던져주었다'고 묘사되는 이 한 마디가 유럽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순간부터 서양 중세는 '장사 끝!'을 선언하고 말았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신의 은총 때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라니 이 어찌 중세유럽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강력하고도 황홀한 반란이 아니겠는가.
또한 위와 같은 데카르트의 아이디어를 통해 얻어낸 치밀한 연역적 사고 체계와, 그가 주창한 '정신 따로 물질 따로'의 2원적 실체 구분법은 기독교와 큰 마찰을 겪지 않으면서도 서양 근대과학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만들어 주게 된다는 거시다.
이 쯤에서 골이 아파오는 독자 여러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좌절하지 말고 쫓아오기 바란다.
그런데 데카르트로 상징되는 이러한 서구유럽의 근대는 두 가지 지향점이 복선적으로 얽혀 가는 양상을 보이며 발전하게 되는데 그 두 지향점이 서로 모순을 일으키게 된다는 데에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서구 근대의 두 가지 지향점이란 무엇이냐?
우선 서구 근대의 첫 번째 지향점이면서 본질적인 지향점은,
폭력적 권위로부터 해방과 개인의 자유,
그리고 공동체적 평등의 실현이었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하자는 거다.
이를 월러스틴과 같은 학자는 '해방적 근대(성)'라고 규정한다.
다른 한편 서구 근대는, 자연에 대한 합리적 지배와 이를 위한 기술 중심적 세계관을 추구했다. 즉 자연의 한계로부터 벗어나는 슈퍼 원숭이, 인간의 힘을 보여주자는 거다.
이를 월러스틴은 '기술적 근대(성)'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를 거쳐오면서 양넘들은 이 두 가지 성격의 '근대' 지향이 서로 화해할 수 없을 만큼 충돌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슨 말쌈이냐믄,
우선 '기술적 근대'가 추구한 '자연에 대한 합리적 지배'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마저 지배의 대상으로 삼게됨으로써, 근대의 기획이 말짱 도루묵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뭔 소린지 가슴에 잘 와닿지 않는다면,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이미 20세기 초부터 서구근대의 똥침을 찌른 딴지 정신의 선구자, 그 이름도 유명한 채플린과 그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떠올려 보라.
영화 속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상징하듯 거대한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신세가 되고만 근대인들. 중세보다 나아진 게 모냐는 거다. <모던 타임즈>를 좀 무게 있게 번역하면 '근대'다. 알간?
의심스런 눈으로 <근대>를 바라보던 양심있는 양넘들은 20세기 초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이제 양손을 들고 만다. 고삐 풀린 <근대>의 가공할 폭력성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
함 생각해 봐라. 중세를 벗어나면서 <근대>가 선전하던 애초 목표가 뭐였나? 좀더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거 아니었나? 근데 라이언 일병이나 구하고 자빠졌으니..., 이게 모냐고... 씨바.
뿐만이랴.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근대>는 본격적으로 인류의 목을 조르기 시작하게 된다. 이번엔 또 뭐냐고? 환경오염이지, 뭐긴 뭐야. 그게 왜 <근대> 탓이냐고 묻고 싶다면, 쪼 위로 다시 올라가서 복습하고 오도록.
결국 서양 <근대>는 인류 문명의 터전인 자연 그 자체를 황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일부인 인간마저 지배의 대상으로 삼게됨으로써 '권위로부터 해방' 운운하던 애초의 목표를 스스로 망쳐놓고 말았던 거다.
금세기 후반 양넘들의 이러한 곤혹스러운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 소위 '탈근대론', 넓은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지금까지 설명해본 서구 근대의 도정을 도식화시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골치 아프면 기냥 건너 뛰어도 상관 없다.
요컨대 작금의 양식있는 양넘들은 서구의 근대 기획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길래 자체모순을 일으키고 말았는지에 대해서 똥꼬털을 가다듬어가며 처절하게 반성하고 있단 말씀. 그리고 그들은 지금껏 무시해 왔던 동양문명에까지 관심을 보여가며 <근대>를 기획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해방적 근대'의 가능성에 대해서 치열하게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는 거다.
시민 혁명을 이루어내고 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을 실현시켜낸 듯 보이는 양넘들조차도 아무도 그들 자신의 '근대가 성공했다'고 믿지 않는 거다. 사실상 유럽 지성계에서는 '근대는 실패했다'는 단정적 주장이 오히려 지배적이며, '근대는 성공하지 않았지만 아직 진행중이다'는 하버마스의 애절한 호소조차 궁색하게 들릴 정도다.
작금의 앞서가는 지구촌 상황이 이러한데, 양넘들이 극동의 코딱지만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게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원저작권자 양넘들 자신도 실패했다고 하는 <근대>를 대한민국의 한 독재 굼바리가 이미 1970년대에 성공시켰다고 하는 이 곳의 소리를 듣게 된다면 말이다.
박통의 근대화는 <근대>를 기획함에 있어서 필수조건이 되는 '해방적 근대'의 요소, 즉 '권위로부터 해방',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따위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는 짜가 근대였다.
박통의 근대화는 '해방적 근대'라는 근대의 머리 부분은 애초에 단두대에 올려 싹둑 잘라낸 채, '경부 고속도로'로 상징되는 바, '기술적 근대'라는 몸통만을 길러내면서 '노동착취', '인권탄압', '감시와 처벌' 등 각종의 알러지 증상을 피워낸 끔찍한 근대화였다는 거다.
서구 근대의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일으킨 온갖 부작용들. 예컨대 영국 산업혁명 과정의 잔인한 착취, 과격한 산업화로 인한 자연환경 파괴, 물신주의 상업 문화, 심지어 서구근대가 일으킨 최악의 범죄로 일컬어지는 아우슈비츠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온갖 못되먹은 근대적 범죄들을 골라 골라 흉내낸, 서구근대에 대한 엽기적 패러디가 이른바 박통, 그리고 그를 추앙한 굼바리 후계자들의 '근대화'라는 거다.
박통의 근대화 과정에서 달성된 '절대빈곤의 해소' 등의 물질적 성과를 마구 부풀려 선전하는 넘들이 있는데, 씨바야 이제 고마 좀 우겨라.
그렇게 따지면 합리적인 토지조사 해주고 철도 놔주고 공장 지어준 일본 제국주의야말로 우리나라 '근대화의 영웅'이다. '박통 시대가 그립다'고 말하기 전에 '일제 치하가 그립다'고 말하지 왜?
박통, 친일, 좃선... 뭔가 일관된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가.
암만 세련된 척, 리버럴한 척 폼재며 '일본을 제대로 알고 포용하자' 운운하는 넘들이 있어도 우리 민족의 '일제 36년'은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치욕의 역사이자 반성의 대상이다. 좃선을 비롯한 매국적 보수주의자들이 암만 정신나간 소리를 해제끼고 있어도 박통의 근대화는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반성의 대상'인 거다.
오리지날 <근대>의 장본인인 양넘들조차 자신들의 <근대>에 대해 반성하고 있는 마당에, '싸이비 황색 루머 엽기 패러디 근대'를 시도했던 박통의 근대에 맹종했던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반성하고 또 반성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박통 = 근대화를 성공시킨 영웅'?
답. 황당 개그에 가까운 거짓인 명제.
논증 끝. 오케이?
우리 민족의 지난 100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독재의 마수 속에서 <근대>의 외피만을 걸쳐 입은 채, 온 국민이 제정신을 잃은 얼빠진 중세 암흑기였다. 우리 고유의 가치체계를 송두리째 내던진 채 외부로부터 들어온 이해불가능한 잡다한 가치들에 온몸을 집어던져 맹종한 굴욕의 역사인 거다.
공화국 성립 50년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함으로써 뒤늦게나마 새로운 <근대>를 위한 기초토대를 닦은 지금,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또다시 박통의 '근대화'나 다를 바 없는 여러 가지 도깨비 방망이에 놀아나고 있는 상황이다.
'IMF 극복'이나 '세계화' 따위의 내용 없는 말들이 이곳 저곳에서 진리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 없는 말들에 속수무책 당하는 얼빠진 시민들, 이렇듯 퇴행하는 시민의식이 '박통 향수병'을 전염시키고 있는 거다.
지금 우리들의 초상을 보라. 자의식을 거세당한 모래 알갱이 같은 개인들이 로봇처럼 거리를 누비고 있으며, 그 위에 '세계'라는 허울 좋은 시장에 한눈 팔려 결국 '우리'를 잃어버린 천박한 장사꾼 의식만이 헤엄쳐 다니고 있다.
정신 차리자. 이제 21세기가 눈 앞에 왔다.
우리를 얼빠진 중세인으로 머물게 하려는 여러 음모들을 깨고 이제는 제대로 된 진짜 <근대인>이 되기 위해 뛰어갈 때가 됐다는 거다.
21세기 새로운 <근대>를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 작업은 뭐니뭐니 해도 짜가 <근대>, 박통의 밥통같은 <근대>를 청산하는 일이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선동 때문에 이 작업이 좌절되는 한, 21세기에도 우리는 중세인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박통 기념관'을 지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기념관 속에 전태일의 분신, 부마항쟁의 현장이 담겨 있고, 사상의 자유와 인권을 무차별 탄압한 그 살벌한 고문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면 말이다.
궁민의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전쟁을 찬양하기 위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반성하기 위한 것으로서만 '전쟁 기념관'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박통 기념관' 역시 타산지석의 교훈을 위해 건립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한편, 21세기 지구촌 시대의 새로운 근대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우리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
지구촌 시대의 다국적 문화 소통은 창조적 잠재력, 즉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 개인들 사이에서만 진행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당신 같으면 남의 집 생활 방식 베껴먹기나 하는 비굴하고 모자란 이웃집 식구들과 사촌처럼 정답게 대화하고 취미 생활도 나누어가며 살고 싶겠는가.
자기 고유의 문화적 색깔이 없는 국가들, 문화적 정체성을 잃은 국가들은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 21세기 무지개 색 인류 문화교류 마당에 동참할 수조차 없게 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라는 말씀.
정리하건대, 100년에 가까운 시행착오의 세월을 썩은 살 도려내듯 반성적으로 정리해내는 것, 그리고 100년 전 우리 문화적 정체성을 보살펴 비판적으로 이어내는 것, 그리하여 세계화의 물결에 자신감 있게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새로운 <근대>를 목표하는 우리들의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영화 속 주인공 덕삼이는 근대인이 아니었다.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 즉 박통의 얼치기 <근대화>를 따라 맹목적인 행진을 거듭해나가다 보면 조국중흥이 이루어진다는 황당무계한 신앙 아래 박통을 교주로 받든 동키호테 같은 중세인에 불과했다.
덕삼이를 거울 삼아 지금의 우리를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수구언론의 음모에 손쉽게 상식을 저당잡히는 우리, 천편일률 천박한 상업문화에 넋 놓고 조종당하는 우리, 성적순 학벌 지상주의에 헤어나오지 못한 채 건전한 지성을 잃어가는 우리, 아무 거나 경제 문제로 환원시키는 대책 없는 물신주의 속에 눈이 먼 우리들.
우리는 과연 덕삼이보다 현명해졌는가?
우리는 과연 덕삼이보다 더 <근대적>이 된 건가?
굼바리 독재자가 이끄는 전체주의 '근대화'는 애초에 언어도단이었다. 21세기 새로운 <근대>의 성공여부는 결국 공동체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모색하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상식 있는 시민들의 개성 있고 분별력 있는 목소리에 달려 있다.
딴지일보는 여러분과 함께 뛰어갈 것이다.
21세기 새로운 <근대>를 졸라 향하여...
작성자 네스카페
'박정희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정희 시대 경제의 명과 암 (0) | 2008.06.21 |
---|---|
"박정희 개발독재는 시장경제 발전의 암세포" (0) | 2008.06.21 |
경제영웅 박정희의 진실과 허구 (0) | 2008.06.21 |
박정희 경제기적의 허구! (0) | 2008.06.21 |
박정희 시대와 근대성의 명암 (0) | 2008.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