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감독 체제 개편 이후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민간금융위원회(위원장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최근 정례회의를 열고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을 중심으로 현행 금융감독 시스템의 유효성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당시 금융감독 체제 개편의 골자는 금융감독 기능을 수행하던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정책 기능을 담당하던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국을 흡수하면서 금융위원회로 확대 개편되는 것이었다.
민간금융위는 새로운 금융감독 시스템이 지난 1년간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효과적인 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지난 1년간 노출됐던 문제점들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금융감독 체제 개편이 다시 한번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민간금융위는 우선 현행 금융감독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지 못한 것은 금융정책과 감독 권한을 쥐고 있는 금융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출범 초기 산업은행 민영화, 금산분리 완화 등 새정부 코드에 맞는 정책 입안에 주력하다 금융위기 대응에는 한발 늦은 대응을 보였다. 산은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추진 과정에서 시장 불안을 야기하기도 했다. 최근 이슈인 기업 구조조정도 민간 자율에 맡기는 등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비판도 많다.
민간금융위는 이같은 문제는 구성원들의 역량 부족보다는 구조적 문제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위기 해소의 최전선에서 활약해야 할 기관이지만, 정작 위기 해소를 위해서는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 금리 조정 권한과 발권력을 가진 한국은행, 국제금융 기능을 가진 기획재정부에 밀려 제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민간금융위는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몇가지 금융감독 체제 개편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국내금융 정책 기능과 국제금융 정책 기능의 통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 기능의 분리가 금융위기 초기 정책 실패의 주된 원인이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는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금융위의 소관업무지만, 정작 위기 대응에 필요한 외환정책 권한을 재정부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금융위는 위기 대응과정에서 주도권을 재정부에 뺏길 수 밖에 없었다"며 "재정부 역시 국내금융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외환정책을 다루다 보니 정책실패가 많았다"고 말했다.
민간금융위는 더 나아가 정부의 재정.경제 정책과 금융정책 기능을 통합해 동일한 부처가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정책 업무는 재정.경제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다, 정부 내 다양한 부처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필상 위원장은 "금융과 재정정책의 분리는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다"며 최근에 열렸던 G-20재무장관회의를 예로 들었다. 이 위원장은 "한국은 G-20회의에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했는데, 금융이 주요 의제인 G-20회의에 금융정책 권한이 없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동원 교수는 "금융정책 기능이 국제금융 정책 기능을 흡수해야 하며, 정부 정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통합된 금융정책 기능을 금융위에서 분리해 재정부에 이관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민간금융위는 또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기능은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금융감독 업무가 정부에 의해 수행됨으로써 과거 관치금융이 재현될 필요가 크고, 금융정책 업무가 정부의 각종 정책 업무와 단절돼 각종 비효율성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민간금융위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이 분리될 경우 정책 기능은 정부가 수행하고 감독 기능은 공적 민간기구가 담당하는 것이 금융감독의 중립성.책임성.전문성 등을 개선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현재 금융감독원의 지위를 강화하고 금융감독원의 내부 의결기관으로 금융감독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편 민간금융위는 금융위가 현재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만큼, 장기적인 금융감독 체제 개편과 관계없이 금융위기를 가능한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남주하 서강대 교수는 "국내 기업과 금융산업의 체질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선제적인 구조조정 정책이 실시돼야 한다"며 "이러한 구조조정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부당국이 주도해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현 기자]
<민간금융위 참여위원>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과 교수, 김용헌 미국 신시내티대 교수, 김정렬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김창수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박경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서정희 매일경제 금융부장, 안동현.오성환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윤기향 플로리다애틀랜틱대 교수,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이종욱.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전선애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석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이상 가나다 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