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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출신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이경희330 2009. 4. 10. 00:23

‘메스 든 개혁자’ 그룹 수술대로 콜

 

 

아직도 그를 흰 가운을 걸친 ‘병원장님’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젠 113년의 역사와 자산총액 27조 원, 26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10위(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기준, 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 두산그룹의 ‘회장님’이다. ㈜두산은 지난 3월 27일 주주총회 및 이사회를 열고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을 이사회 의장 겸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오랜 의업을 접고 그룹 경영에 참여한 지 불과 2년여 만에 형제경영 순서에 따라 그룹 사령탑을 맡은 박용현 회장. 그가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지난해 유동성 위기설로 곤욕을 치른 ‘두산호’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재계의 관심이 뜨겁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5년 ‘형제의 난’ 사건으로 커다란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박용오 당시 그룹 회장(현 성지건설 회장)의 두산산업개발 계열분리 요구와 총수일가의 박용오 회장을 향한 회장직 이양 요구가 맞부딪치면서 감정다툼이 격화됐다. 형제간 상호비방전은 결국 총수일가의 회사 돈 유용 논란 등 그룹의 치부를 드러내며 검찰 수사를 불렀고 박용오-용성-용만 형제가 나란히 기소돼 재판을 받는 진풍경까지 낳았다.

이 일로 박용오 회장은 퇴출됐으며 박용성-용만 형제도 그룹 경영에서 일시 물러났다. 이후 두산은 그룹 회장직 폐지와 지주회사제 전환, 전문경영인제 도입을 통한 경영 투명성과 그룹 이미지 제고에 나섰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 두산은 지주회사제 출범을 위한 준비를 마쳤으며 지주사 ㈜두산의 사내 등기이사 7명 중 5명을 오너일가로 채우면서 오너중심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두산가 4남 박용현 회장이 서게 됐다.

박용현 회장의 새 공식 직함은 ㈜두산 회장. 그러나 ㈜두산이 나머지 계열사들을 자회사·손자회사로 거느리게 되는 만큼 ‘두산그룹 회장’으로 불리게 될 전망이다.

박용현 회장이 재벌총수 반열에 올랐지만 재계엔 박 회장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1943년생인 박용현 회장은 1968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때부터 2006년 서울대병원장에서 퇴임할 때까지 줄곧 외과의사와 교수로만 살았다. 의업을 접기 직전인 2005년 11월 두산그룹 계열 학술재단인 연강재단 이사장을 맡으며 가업에 발을 들여놨지만 박 회장이 두산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것은 2007년 2월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 취임 이후 2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박용현 회장이 그룹 간판을 맡게 된 것은 두산 오너일가 전통인 형제경영 순서에 따른 것이었다. 두산가 3세 장손이자 박두병 선대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 2남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 3남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 이어 4남인 박용현 회장에게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경영 경험이 너무 짧다’는 우려에 대해 두산 측은 박 회장의 서울대병원장 시절을 들어 그를 ‘준비된 경영자’로 일컫는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의 병원장 재직 기간 동안 박 회장은 의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조직 통폐합을 통한 강력한 구조조정 작업을 단행, 관료주의에 젖은 병원 이미지를 개선했다. 보직 임기제 등 체질개선 작업을 통해 불친절하기로 유명했던 서울대병원을 브랜드파워 1위로 끌어올렸으며 분당 서울대병원과 강남진료센터 개원을 통한 새 수입원 창출을 주도했다. 박 회장은 병원장 재직 시절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CEO’(최고경영자)라고 수식하며 “병원에서도 현장중심 경영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박 회장이 의사 가운을 벗은 지난 2006년 2월. 정년퇴임 연한 3년을 남기고 물러나면서 “후학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가 흰 가운을 벗게 된 배경은 집안사정과 무관치 않다. ‘형제의 난’ 사건으로 박용오 회장이 퇴출되고 박용성 회장과 5남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기소돼 행동반경에 제약이 따르면서 그 공백을 메우게 된 셈이다.

두산건설 회장 취임 이후 박용현 회장은 러시아 법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지점 설립 등으로 해외진출 확대를 주도했다. 취임 전 15위였던 도급순위를 2008년 11위까지 끌어올렸으며 그룹의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에도 적극 관여했다. 지난해 두산의 중앙대학교 인수를 이끌면서 한때 중앙대 이사장 취임 전망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박용성 회장이 중앙대 이사장을 맡은 데다 지난 2월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돼 그룹 살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게 되면서 그룹 간판 자리를 박용현 회장이 승계하게 된 것이다.

박용현 회장의 서울대병원 개혁과 관련해 박용성 회장은 “동생이 의사지만 장사꾼 기질이 다분하다”고 치켜세운 적도 있다. 총수일가와 그룹에선 ‘준비된 경영인’으로 내세우지만 박용현 회장의 경영자적 역량이 얼마나 크게 발휘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두산은 ‘처음처럼’ 소주를 판매해온 주류부문과 포장용기 제조부문인 테크팩을 처분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했으며 지주회사제 전환 작업도 마쳐 당국의 최종승인을 받는 대로 조만간 지주회사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박용현 회장이 취임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두산의 조용한 변신을 이끌겠다”고 밝힌 점은 당분간 역대 회장들만큼 공격적 경영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낳기도 한다. 일각에선 박용현 회장의 취임이 두산그룹 오너 4세 체제로의 원활한 승계를 위한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박용현 회장이 두산건설에서 지주사 ㈜두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4세 장손 박정원 회장(박용곤 명예회장 장남)이 두산건설 부회장에서 새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 ‘삼촌 회장단’과 직급상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취임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박용현 회장의 후계를 논하는 것은 분명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은 그동안 박용성 회장을 도와 그룹 경영을 주도해온 두산가 5남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향후 입지와도 이어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 만하다.

박용현 회장의 취임과 더불어 박용만 회장 역시 ㈜두산 대표이사로 선임돼 앞으로 박용현 회장과 손발을 맞출 전망이다. 형제경영 순서대로라면 박용현 회장 다음을 이어갈 그룹총수는 5남인 박용만 회장이어야 하지만 재계 일각에선 다른 관측도 제기한다. 지난 2005년 두산이 지주회사제 전환을 선언한 이후 박용현 회장이나 박용만 회장은 지금껏 지주사 ㈜두산 주식을 단 한 주도 사들이지 않았다. 반면 박정원 회장은 지분율을 꾸준히 늘렸다.

현재 박정원 회장의 ㈜두산 지분율은 4.15%. 박용현(2.46%) 박용만(3.33%) 회장은 물론 아버지 박용곤 명예회장(3.48%)마저 앞선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지주사 최대주주 자리는 흔히 총수들의 몫인 만큼 ‘차기 지존’으로 박정원 회장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박용현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는 견해가 뒤따라 나오기도 한다. 이미 ㈜두산 사내 등기이사 명부에 올라 있던 박정원 회장은 이번 주주총회 시즌을 통해 두산건설 회장직 승계뿐만 아니라 두산인프라코어 사내 등기이사로도 신규 선임됐다. 그룹 경영 전반에 관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박용현 회장 체제가 들어서기 직전까지의 그룹 살림은 박용성 회장의 후원을 받은 박용만 회장이 실질적으로 주도해왔다. 향후 ㈜두산에서 박용현 회장을 도와 그룹 경영전반을 살피게 될 박용만 회장은 그동안 그룹의 주요 M&A를 성사시키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룹 내 핵심 임원들 중 상당수가 그의 측근으로 알려질 만큼 신망도 두텁다. 이미 지주사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적통 장손’인 조카 박정원 회장과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온 박용만 회장 사이의 그룹 내 역학관계를 박용현 회장이 어떻게 조율할지도 관심사다.

박용현 회장은 지난 2001년 맞춤양복협회가 선정한 ‘베스트드레서’에 뽑혔을 정도로 패션 감각이 뛰어난 인사다. 박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긴 113년 역사를 자랑하는 두산그룹의 또 다른 100년 역사를 써나가자”며 취임 일성을 밝힌 바 있다. 그의 경영 감각이 과연 패션 감각처럼 그를 ‘베스트 CEO’로 만들어줄지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