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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주류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연말 두산주류(현 롯데주류BG)를 인수한 롯데그룹의 시장 공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롯데는 오는 28일부터 두산이 아닌 롯데의 이름이 새겨진 소주 ‘처음처럼’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전국에 퍼져 있는 유통망과 풍부한 현금을 최대한 활용해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맞서는 ‘주류지존’ 진로도 겉으로는 느긋해 보이지만 강력한 적수의 출현에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벌써부터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롯데와 진로의 ‘소주대전’, 그 뚜껑을 열어봤다.
지난 2월 초 롯데야구단의 홈구장 부산 야구장에서는 광고판 교체 공사가 있었다. 경남지역 소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무학의 ‘좋은데이’가 철거되고 ‘처음처럼’이 새롭게 설치된 것. 당사자인 무학 측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부산 소주시장의 절대강자 ‘C1’의 대선주조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듯하다. 대선주조 관계자는 “그동안 롯데구단과의 제휴 마케팅이 판매에 큰 도움이 된 게 사실이다. 롯데의 소주 판매로 점유율 하락은 불가피할 듯하다”고 말했다.
롯데의 막강 유통 조직도 시동을 걸었다. 롯데마트 롯데슈퍼 세븐일레븐 등에는 그동안 눈에 잘 띄지도 않던 처음처럼이 진열대 정면에 배치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진로 ‘참이슬’이 차지했던 자리다. 아직 공개된 것은 없지만 롯데는 대대적인 홍보와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주류사업 시너지 효과를 위해 롯데주류를 롯데아사히주류, 롯데칠성음료의 위스키 사업부와 같이 강남의 한 건물에 입주시킬 계획이다.
롯데는 신설된 롯데주류 대표(부사장)에 정통 두산맨 출신인 김영규 전 두산주류 생산부문장을 임명했다. 그동안 롯데가 인수한 기업의 수장 자리에 대부분 그룹 내부 인사를 발탁했던 것에 비추어봤을 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그만큼 롯데가 주류부문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당분간은 예전 두산주류 인력과 영업망을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본다. 상반기 내로 롯데의 장점을 살려 점유율을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처럼 인수를 진두지휘했던 신동빈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롯데주류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롯데의 이러한 파상 공세에 기존 주류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2006년 두산이 처음처럼을 선보일 때와는 또 다른 양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두산과 롯데는 ‘급’이 다르다는 것이다. 소매 유통망이 없던 두산의 타깃은 수도권 시장 1위였던 진로에 맞춰져 있었지만 롯데의 경우 지역 시장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진로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하다. 진로 관계자는 “소주 판매는 유통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고 자신하면서도 “롯데가 어떠한 마케팅을 펼칠지 주시하고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진로는 한때 소주시장에서 수도권 90%, 전국 65%의 점유율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두산 처음처럼이 출시된 이후 점유율은 각각 15%가량 하락한 상태다. 두산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롯데의 주류시장 진출에 진로가 대책 마련에 분주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진로는 올해 상반기 재상장을 앞두고 있다. 당초 진로의 상장은 지난해 11월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주식시장 악화로 연기한 바 있다. 현재 장외에서 진로의 주식은 6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로는 상장을 대비해 실적향상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롯데가 복병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단 진로는 수성을 위해 소비자와의 대면 접촉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오후 7시 이전에 술집을 찾는 손님에게는 지난해 출시한 소주 ‘J’ 한 병을 무료로 제공하는 대규모 판촉전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처음처럼의 텃밭 강원지역 시장점유율이 2007년 52.3%에서 지난해 59%로 올랐다며 홍보에 나섰다.
진로는 ‘맞불작전’도 펼치고 있다. 모기업인 하이트가 위스키 사업 부문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현재 하이트는 계열사 하이스코트를 통해 ‘킹덤’을 판매하고 있는데 시장 점유율은 5% 수준으로 롯데의 스카치블루(18%)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 지난 연말 하이트맥주에서 잔뼈가 굵은 장병선 상무를 영입하며 전열을 재정비한 하이스코트는 지방을 중심으로 영업 활동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또한 12·17·21년산 세 종류만 판매하던 것에서 30년산을 추가해 고급 양주로서의 인지도 확보에도 나설 것이라고 한다.
진로와 롯데의 진검승부를 더욱 흥미롭게 하고 있는 것은 롯데의 오비맥주 인수가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롯데는 지난 2월 18일 벨기에의 AB인베브가 실시한 오비맥주 매각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입찰엔 일본아사히 기린홀딩스를 비롯, 세계적인 사모펀드 블랙스톤 등이 서류를 냈지만 업계에서는 롯데를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고 있다.
롯데가 오비맥주 인수에 성공하면 소주-맥주-위스키-전통주로 이어지는 주류 라인업을 완성하게 된다. 또한 점유율 58%로 맥주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하이트맥주와 치열한 경쟁도 펼칠 전망이다. 이번 소주대전은 그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양측이 그 어느 때보다 기선제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진로와 롯데의 판촉전 등 과열경쟁이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소주 값이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지역의 중소 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말도 들린다. 롯데의 두산주류 인수에 대해 기업결합 승인심사를 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자료 수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심사하고 있다. 문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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